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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as Sep 28. 2022

이방인의 삶을 살아낸다는 것

내 고향은 어디에?


멕시코 사람들은 대체로 참 친절하다. 상황이 곤란해 보이면 도와줄까? 먼저 물어봐주고 인사해주고 웃어준다. 그래서 길을 잘못 가르쳐줘도, 말도 안 되는 정보를 알려줘도 그냥 신경 써준다는 거 자체가 고맙다. 친구와 장 보러 시내로 가는 택시 안에서 맛있는 타코 집 추천을 받았다. 


아니, 여기 찐이잖아? 또르띠야 전용 화덕을 보고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코 3개, 소페 2개, 퀘사디아 1개를 주문했다. 역시나 바싹하게 구워진 또르띠야의 향과 갓 꾸운 속재료. 신선한 양파와 고수, 라임즙을 쫘악 뿌리고 살사를 곁들이면 멕시코 타코는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설거지한 것처럼 깨끗하게 먹고 얼마냐고 물어봤다. 대부분의 타코 집은 메뉴판이 없다. 그래서 타코 집주인이 부르는 게 값이다. 열심히 계산을 하더니 내가 먹은 메뉴가 적혀있는 종이 한쪽에 750이라는 숫자를 적어줬다. 음? 750 페소면 한화로 4만 5천 원 정도다. 비싼 해변가 레스토랑에서 랍스터 구이가 500페소인데? 음? 이게 맞나?


참고로 타코 하나에 15~35페소 정도 하는 멕시코에서 750 페소면 4명 이서도 배 터지게 타코를 즐길 수 있다. 나는 각각 가격이 얼만지 물어봤고 퀘사디아가 500, 타코가 50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응? 그 정도의 맛은 아니었는데...? 당황한 내가 어버버하고 있는 사이 같이 간 친구가 다시 각각 얼만지 물어봤다. 나에게 750을 적어준 타코 집 딸은 어딘가로 가버렸고 결국 자주 오는 손님의 도움을 받아 계산할 수 있었다. 퀘사디아가 50, 타코가 15페소로 총 115페소였다. 숫자 정도는 스페인어로 이해할 줄 아는 나는 한 번도 계산할 때 버벅거려 본 적이 없었는데. 하, 내가 잘 못 들었던 건가? cuarenta(50)이랑 quince(15)를 헷갈렸나? 아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나는 정확히 들었고 종이에 750이라는 숫자를 써준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나에게 사기를 친 것이다. 


나한테 왜 그런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한 걸까? 혼란스러웠다. 나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어딜 가든 눈을 마주치고 웃으며 인사를 한다. 말이 잘 안 통하는 나를 좀 잘 봐달라는 일종의 전략이다. 그래서 더 충격이 컸다. 친구는 그냥 잊어버리라고 하는데 감탄하면서 먹었던 타코들의 맛이 잊혔다. 속상했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작은 타격에 오늘도 내 마음은 찍- 상처를 입었다. 아,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 거지?








아늑함, 내가 돌아갈 곳, 나의 집, 내가 가면 언제든 따뜻하게 맞아줄 사람들. '고향'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서울 사람이다. 어렸을 때 난 내가 서울 사람인 게 싫었다. 지금은 뭐 그냥 내가 잠시 머물고 떠나는 지구 곳곳이 내 고향이지, 생각하지만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비수도권 출신의 사람들이 조금은 부러웠다.


'오, 부산 사람이에요? 부산 어디?'

'어! 내 옆동네네. 진짜 반가워요'

은근한 소외감을 느꼈다. 아- 멀리서도 느껴지는 그 소속감, 그게 내가 생각했던 고향이다.


타코 사기 미수 사건의 영향도 있었지만 새로운 자극이 없는 바다 마을에서의 생활에 현타가 찾아왔다. 일도 잘 되지 않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로컬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 내가 지금 서울이 아니라 왜 멕시코에 있는 걸까? 시차가 15시간이나 나서 서울에서의 업무 시간에 맞추느라 새벽까지 일을 하기도 했다. 일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아졌다. 슬럼프가 찾아왔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날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나기도 한다고.

그런 사람들은 비록 우연에 의해 엉뚱한 환경에 던져지긴 하였지만 늘 어딘지 모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산다.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 바로 그러한 느낌 때문에 그들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뭔가 영원한 것을 찾아 멀리 사방을 헤매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가 때로 어떤 사람은 정말 신비스럽게도 바로 여기가 내가 살 곳이라 느껴지는 장소를 우연히 발견하기도 한다. 그곳이 바로 그처럼 애타게 찾아 헤맸던 고향인 것이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찰스 스트릭랜드처럼 나도 서울이, 한국이 내 고향이 아닐 수도 있잖아? 이렇게 멕시코든 어디든 떠돌아다니면서 내 영혼의 고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태어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도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참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스스로 이방인이 되는 여행이라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좇았다. 오히려 낯선 곳에서 평온함을 느끼기도, 그렇게 헤매다 스트릭랜드처럼 바로 이곳이야! 하는 무언가를 발견하기를 기다리면서.


먼저 정착해 잘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며 나도 이곳에 정착해서 사업을 해볼까? 하는 상상을 농담 삼아하곤 했다. 집을 구하거나 이사를 갈 때, 가게를 낼 때, 소통의 문제 등 숱한 어려움과 불편함을 직면하게 될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기꺼이 이방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지울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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