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반 뿌리 산업을 떠받치는 소공인을 살리자!
작은 손과 기술로 산업을 떠받쳐온 사람들, 그러나 지금 그 현장에는 조용한 위기가 스며들고 있다.
서울 성수동의 오래된 수제화 공방.
바닥엔 잘 닦인 가죽 냄새가 은은하게 번지고, 한쪽 벽엔 30년 넘게 쓴 다듬이망치가 갈라진 채 걸려 있다. 공방의 주인은 올해 63세다. 그에게 “제자 있느냐”고 물으면 잠시 침묵이 흐른다.
“없어요. 요즘 이 일을 배우겠다는 젊은 친구가 거의 없죠.”
대부분의 소공인 현장이 이런 풍경을 공유하고 있다.
봉제, 인쇄, 목공, 금속가공 등 업종을 막론하고 50대가 현장의 가장 젊은 축이 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평균 50대인 내가 막내”라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통계적 현실이라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인력 고령화는 단순히 ‘노동력 부족’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향후 10년 안에 베테랑 장인의 대규모 은퇴가 도래하며, 해당 공정이 완전히 사라질 위험도 크다. 예를 들어, 동대문 봉제시장에서는 30년 경력의 재단사가 은퇴하면서 그가 하던 공정을 더 이상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발주 자체가 중단된 사례도 있다.
즉, 인력 부족은 산업의 ‘속도’ 문제를 넘어 산업 자체의 존재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인력 고령화는 결국 기술 단절이라는 더 큰 그림을 만든다.
기술은 파일로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몸과 손의 기억으로 남는 지식이다.
이 지식은 매뉴얼 한 장으로 대체되지 못한다.
부산의 한 소규모 주물업체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은퇴를 준비 중인 장인이 손으로 온도를 가늠하며 금속의 상태를 판단한다. 그는 “여기서 3초만 늦으면 금이 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기준은 절대 수치로 기록할 수 없다.
이 장인이 떠나면, 공장도 함께 멈출 가능성이 크다.
수제화 갑피를 만드는 공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숙련된 장인은 신발 모양·피혁의 탄력·주문자의 발 형태를 몇 초 만에 파악한다. 그러나 이 ‘직감의 기술’은 설명도 어렵고 전수도 어렵다. 그 기술을 수십 년간 몸으로 익혀온 장인이 떠나버리면, 그 공정은 다시 복구하기 어려운 ‘잃어버린 기술’이 된다.
문제는 이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청년이 매우 드물다는 점이다.
“왜 배우려는 사람이 없을까?”라는 질문 앞에서 장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배우는 데 오래 걸리고, 초반에는 돈도 많이 못 벌고, 무엇보다도 힘들어요.”
기술 전승의 위기는 결국 경제적 보상·작업환경·사회적 인식이 합쳐진 구조적 문제다.
이 삼중고 앞에서 기술은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어느 금형업체의 대표는 몇 년 전만 해도 10개의 거래처와 꾸준히 일했다.
그러나 지금은 절반도 남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대기업의 해외 공장 이전, 중국·베트남 제품의 가격 공세, 자동화의 빠른 속도 때문이다.
소공인들은 이런 변화를 누구보다 직접적으로 체감한다.
특히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소공인의 장점은 대량생산이 전 세계적으로 확장된 시장에서는 매력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금속가공 소공인은 하루에 한두 개씩 다양한 주문을 소화하는 데 강점이 있었지만, 대량 주문은 자동화된 공정이 더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한다.
이 때문에 소공인의 전통적 비교우위가 약화되고 있다.
또한 설비투자 여력도 부족하다.
3천만 원짜리 자동화 장비 하나를 도입하면 생산성이 두 배로 오를 수 있지만, 영세 사업장에서는 그 투자를 감당할 수 없다.
결국 생산성 격차는 더 벌어지고, 일감은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은 다음과 같다.
“이번 달도 겨우 유지했다.”
“발주량이 줄어서 밤 샜던 경우가 요즘은 없다.”
“수습 직원 뽑았다가 3개월 만에 내보냈다.”
일감 감소는 단순한 매출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생존 문제다.
더는 손끝 기술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
작은 작업장은 열악한 환경을 고치고 싶어도 쉽게 바꿀 수 없다.
서울의 한 봉제 공장은 40년 가까이 된 건물 3층에 있다.
계단은 낡았고, 환풍기는 오래전에 고장이 났다.
여름에는 35도를 넘는 실내에서 다투듯 바느질을 한다.
겨울엔 난방이 약해 손끝이 얼어붙는다.
이런 환경은 젊은 세대를 설득하기 어렵다.
“왜 이 일을 해야 하지?”라는 질문 앞에서, 현장은 매력적이지 않다.
또한 많은 소공인 작업장은 주택가 지하나 골목에 위치해 안전 위험도 높다.
산재보험 가입률도 낮고, 작업환경 개선 비용을 감당할 여력도 없다.
작업환경 문제는 인력 유입 감소와 생산성 저하라는 이중의 타격을 만든다.
실제로 소공인의 주요 애로사항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자금 부족: 40.6%
판로 개척 어려움: 32.3%
인력 부족: 11.9%
이 수치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그들의 하루를 지탱하는 가장 현실적인 벽이다.
네 가지 문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고령화는 기술 전승을 어렵게 만들고, 기술 단절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경쟁력 약화는 일감을 줄이고, 일감 감소는 작업환경 개선 투자를 어렵게 만든다.
악순환 속에서 소공인은 산업 생태계의 가장 약한 고리가 된다.
그러나 위기의 본질은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사라지는 문제, 즉 기술과 손끝의 기억이 함께 사라지는 문제다.
소공인의 문제는 곧 제조업의 문제이며, 더 크게 보면 한국 경제 체력의 문제다.
이제는
‘그들만의 위기’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