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운 일, Decent Work를 다시 묻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by 김용진

Decent Work는 직역하면 ‘일다운 일’, ‘존엄한 일’이다.
단순히 일자리가 있다는 상태가 아니라, 사람이 인간답게 일하고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일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시한 개념으로, 임금이나 고용 여부를 넘어 일의 질과 의미를 핵심으로 본다.


Decent Work를 꿈꾸면서 작은 생각은 적어본다.


I. 일다운 일,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조직 안에서 가장 흔하게 오가는 말은 “요즘 일이 많다”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 문장을 곱씹어 보면 묘한 공백이 남는다. 정말 일이 많아서 힘든 것인지, 아니면 일처럼 보이는 활동이 늘어난 것인지 쉽게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다운 일(Decent Work)’이라는 개념은 복지나 근무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훨씬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일은 단순한 활동이 아니다.


일은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결과로 가치가 이동하는 과정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대상이 있고, 변화가 있으며, 책임이 따른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업무일 수는 있어도 ‘일다운 일’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컨설팅 현장에서 임원들에게 이 정의를 제시하면 종종 이런 반응이 나온다.

“그렇게 정의하면, 우리 조직의 일 중 절반은 다시 봐야겠네요.”


바로 이 지점이 출발점이다.

일다운 일은 더 열심히 하자는 구호가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활동을 다시 구분하자는 제안이다.


II. 진짜 일과 가짜 일의 차이


조직 안에는 늘 두 가지 일이 공존한다.

진짜 일과 가짜 일이다.


이 구분은 개인의 성실성이나 태도 문제가 아니다. 일의 구조와 설계 문제에 가깝다.


진짜 일의 특징은 분명하다.

- 일이 끝난 뒤 이전과 다른 상태를 설명할 수 있다

- 해결하려는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명확하다

-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주체가 분명하다

- 다음 의사결정에 참고할 만한 축적이 남는다


반대로 가짜 일은 이렇게 나타난다.

- 많은 시간이 투입되었지만 달라진 점을 말하기 어렵다

- 왜 이 일을 했는지 목적이 흐릿하다

- 과정은 공유되지만 결과의 주인은 없다

-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현장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회의도 했고, 보고도 했는데 왜 똑같은 문제가 다시 나올까요?”


이는 실행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짜 일은 조직을 바쁘게 만들지만, 조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는 않는다.


III. 일을 하는 척하지 말고, 진짜 일을 하라


많은 조직이 무의식적으로 ‘일을 하는 척’에 익숙해져 있다.

일정이 잡혀 있고, 회의가 열리고, 산출물이 만들어지면 일했다고 느낀다.


그러나 일다운 일은 외형이 아니라 기능으로 판단해야 한다.


컨설팅 중 한 팀장이 이렇게 말했다.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는데, 퇴근하면서 오늘 뭘 해결했는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때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 오늘 내가 한 일은 어떤 문제를 줄였는가?

- 이 일이 없었다면 조직은 무엇을 잃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면, 그 일은 재설계가 필요하다. 진짜 일은 설명할 수 있다.

고객의 불편이 줄었는지, 리스크가 낮아졌는지, 판단의 질이 높아졌는지로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진짜 일을 하는 조직은 ‘열심히’보다 ‘명확함’을 먼저 요구한다.

무엇을 해결하려는지, 언제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지, 그 기준이 분명하다.


IV. 진정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일다운 일은 개인의 의지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구조적 조건이 필요하다.


다음 네 가지는 조직에서 진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최소 조건이다.


- 일이 해결하려는 문제가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다

- 목적이 달성되었는지 판단할 기준이 존재한다

-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

- 과정이 아니라 결과를 중심으로 대화한다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일은 쉽게 형식으로 변한다.


특히 책임이 사라진 일은 가장 빠르게 가짜 일이 된다.

모두가 관여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한 임원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일을 많이 하는 조직이지, 책임을 많이 지는 조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일다운 일은 책임을 전제로 한다.

책임이 있다는 것은 위험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조직에서는 진짜 일이 자라나기 어렵다.


V. 일의 성격과 유형을 구분하지 않으면


모든 일을 같은 방식으로 관리하려는 순간, 일은 왜곡된다. 일에는 분명 성격의 차이가 있다.


- 반복과 숙련이 중요한 일

- 판단과 선택이 핵심인 일

- 정답이 존재하는 일

- 해답을 만들어야 하는 일


문제는 이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일에 동일한 보고 방식과 동일한 관리 잣대를 적용할 때 발생한다.

판단이 필요한 일에 절차를 요구하고, 탐색이 필요한 일에 속도를 강요하면 일은 급격히 얕아진다.


실무자들이 흔히 이렇게 말한다.


“이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일인데, 보고 일정부터 먼저 정해집니다.”

일다운 일은 관리 이전에 분류가 필요하다.


어떤 종류의 일인지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VI.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뀔 때


같은 일을 두고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일을 바라보는 관점 때문이다.


- 일을 지시받은 과업으로 볼 것인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볼 것인가?

- 일을 시간 투입으로 볼 것인가, 가치 이동으로 볼 것인가?

- 일을 과정 관리로 볼 것인가, 결과 책임으로 볼 것인가?


이 관점의 차이는 개인의 태도 차이가 아니라 조직 문화의 차이다.

어떤 질문이 허용되는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지가 관점을 만든다.


한 대표의 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제는 얼마나 했느냐보다, 무엇이 달라졌느냐를 묻고 싶습니다.”


이 질문이 조직에 자리 잡는 순간, 일의 밀도는 달라진다.


VII. 일다운 일을 만들어 가는 방법


일다운 일을 만들기 위해 조직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일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가짜 일을 줄이는 것이다.

- 회의를 없애기보다 회의의 목적을 하나로 만든다

- 보고서를 줄이기보다 보고의 이유를 묻는다

- 업무를 쪼개기보다 문제를 명확히 정의한다


그리고 관리자는 끊임없이 다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일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일은 잠시 멈춰도 된다.

일다운 일은 바쁨 속에서 생기지 않는다. 명확한 문제의식 위에서 만들어진다.


VIII. 다시, 일다운 일을 이야기하는 이유


일은 원래 쉽지 않다. 그러나 진짜 일은 사람을 소모시키기만 하지는 않는다.

의미가 남고, 경험이 축적되며, 다음 선택을 더 나아지게 만든다.


우리가 다시 일다운 일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을 다시 제대로 하기 위해서이다.

Decent Work는 좋은 일을 하자는 선언이 아니라, 가짜 일을 줄이자는 현실적인 제안이다.


조직이 이 질문을 피하지 않을 때, 비로소 일은 다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