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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비전 경영

살림을 잘 하는 자! 경영도 잘 한다

살림을 잘 한다는 말의 경영학적 깊이

by 김용진

친한 후배가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제 아내가 세상에서 제일 대단한 경영자라고 생각해요.”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묻자, 후배는 잠시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집안 살림을 보면 딱 보여요. 저건 ‘집안일’이 아니라 ‘운영(運營)’이지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우리가 너무 일상적으로 쓰는 ‘살림’이라는 단어 속에,
사람의 ‘운영관리(運營管理)’ 역량이 고스란히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 집은 가장 작은 기업?


집안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업의 운영 구조와 닮아 있다.
냉장고는 ‘재고창고’, 장보기는 ‘구매조달(Procurement)’,
가족들은 ‘고객’, 집의 분위기는 ‘조직문화(組織文化)’이다.


어느 날 우리는 반찬을 꺼내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다가
안쪽에서 오래되어 갈색빛으로 변한 시금치를 발견했다.
곧바로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은 이것이었다.
“아… 이건 ‘재고관리 실패’다.”


그 순간 내 옆에서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평소에 있는 재료를 먼저 쓰는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니까.”

"이게 바로 선입선출법!"


바로 이것이 ‘프로세스 관리’였다.


살림이란 단순히 집안일이 아니라,
시간·돈·노력이라는 제한된 자원을 분배하는 ‘자원배분(資源配分)’의 기술이라는 사실을
그날 새삼 깨달았다.


2. 살림을 잘 한다는 건 결국 “운영을 잘한다”는 말


후배의 말처럼, 살림을 잘 하는 사람을 자세히 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다.
그들은 늘 상황을 예측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실행하고, 보완한다.


어느 날 저녁, 나는 한 후배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와이프는 어떻게 그렇게 살림을 체계적으로 해? 비결이 있는 거야?”


그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살림이라는 건 결국 ‘작은 프로젝트 관리죠"

다음 주에 뭐 먹을지, 뭘 사야 할지, 언제 청소할지.
이건 매일 반복되는 ‘운영(運營)’이라고 생각해요.”


그 말은 정말 틀림이 없었다.


살림을 잘 하는 사람은 사실
• 계획능력(計劃能力)
• 품질관리(品質管理)
• 리스크 관리(危機管理)
• 관계관리(關係管理)


이 네 가지 핵심 역량을 몸으로 익힌 사람이다.
이는 기업에서 말하는 ‘운영관리’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3. 살림은 린(Lean·精益) 경영과 닮아 있다


살림을 잘 하는 사람들의 하루를 보면 ‘낭비가 거의 없다’.
기업에서 말하는 ‘린(Lean·精益)’ 경영의 원리와 똑같다.


며칠 전 나는 한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가 부엌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정리가 너무 잘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말했다.
“와… 이렇게 정리된 주방은 처음 본다. 살림 진짜 잘 한다.”


그러자 친구는 싱긋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정리 잘 하는 게 아니고 ‘동선 낭비 줄이는 구조’를 만든 거야.
와이프가 요리할 때 불필요하게 오른쪽 왔다 갔다 하는 거 너무 싫거든.”


이건 완전히 ‘공정 최적화(Process Optimization)’의 언어였다.
그 친구는 요리를 하며 자연스럽게 ‘린 경영의 7대 낭비’를 제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참 흥미로운 사실이다.
살림을 잘 한다는 건 본능적으로 ‘낭비 제거’를 실천하고 있다는 뜻이다.


4. 살림은 작은 규모의 조직을 매일 운영하는 일


집은 작지만 의외로 조직적이다.
가족 구성원의 기호를 파악해야 하
식재료 재고를 관리해야 하고,

예산’도 잡아야 하고,

집안 분위기라는 ‘조직문화’까지 관리해야 한다.


어느 날 가족회의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아이가 “나는 저녁에 국이 너무 자주 나와서 싫어”라고 말하자

부모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일주일 메뉴를 우리가 같이 정해 볼까?
너희 의견도 넣어서 구성해 보자.”


이건 전형적인 ‘고객 니즈 반영(Customer Voice)’이자
‘관계관리(關係管理)’였다.


살림은 이처럼 사람·돈·시간·자원을 다루는
종합적인 운영행위이다.

이걸 잘 한다는 건 어느 조직에서도 생산성과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셈이다.


5. 결국, 살림을 잘 한다는 말은, 그 사람이 가진 ‘운영 신뢰도’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살림형 인재가 회사에 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답은 아주 명확하다.
그 사람은 반복되는 일을 시스템화하고,
낭비를 줄이고,
자원을 정교하게 배분해
조직 전체의 ‘운영 신뢰도(Operational Reliability)’를 끌어올리는 사람이다.


회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역량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운영 품질을 꾸준히 유지하는 힘!


살림을 잘 한다는 사람은 바로 그 힘을 일상 속에서 이미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다.


6. 마지막으로 남는 생각


살림은 작아 보이지만, 그 속에는 ‘경영학의 모든 요소’가 들어 있다.

살림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서 대단하지 않게 느껴지지만
한 발만 물러서서 보면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집이라는 작은 조직을 매일 돌보고,
자원을 관리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을 만족시키는 일


이것은 결코 단순한 집안 일이 아니라
‘가장 작은 단위의 경영(經營)’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 말은 사실 매우 높은 찬사다.


“당신은 정말 살림을 잘 하는 사람이네.”

그 말은 곧,
“당신은 아주 뛰어난 운영관리자이다.”
라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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