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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열리 Aug 13. 2023

내향형 인간의 미숙함

[#002고시촌 사람들]


이걸 뭐라고 설명하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부족했던 거다.

일단 나는 내향형 인간이다. 그러니까 사람들과 만나고 함께있고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무조건 싫다는 건 아닌데, 그게 나한테는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오늘의 인물은 고시촌에서 알게 된 대학 동기 히지. 물론 가명이다ㅋㅋㅋ

히지는 대문자 E다. 파워 외향형 인간이라는 뜻이다.휴.

그 애는 참 똑똑하고 사려깊었다. 똑부러지는 말투에 추진력있는 성격. 얘는 뭔가.. 뭐가 돼도 될 것 같은.. 구런 애....

히지와 나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고시에 진입했다. 뉴비인 둘이서 끔뻑거리며 고시촌을 더듬거리며 함께라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ㅋㅋㅋㅋㅋ


자습시간도 비대면으로 같이 하고(그대들은 구루미를 아는가. 좋은 앱이다..), 자료나 정보 공유도 하면서 나름 친해졌다.

음, 히지도 나로 인해 도움을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애는 정말 사람과 친밀해지는 걸 좋아하는 애였다. 그리고 나는 그게 좀 불편했다.


그러니까 나는 ‘공부’라는 영역에서만 히지랑 생활을 공유하고 싶었다. 히지는 생활 자체를 공유하면서, 함께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처음 친해질 때는 슈퍼파워코로나절대외출금지 시절이어서, 실제로 만나는 게 지나치게 큰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라 둘 다 시도 안했다.


내 내면의 균열은 히지가 내 오피스텔 주변으로 이사를 오면서였다. 히지는 나와 운동도 산책도 식사도 스터디도 수다도 같이 하기를 원했다.

강조하자면, 그 애가 절대 극성인 게 아니라 매일 (화면상으로나마) 같이 공부하는 사이인데다, 같은 학교에 같은 나이 등 히지가 나를 가깝게 느낄 이유는 많았다.


그 어떤 1차 시험이 끝나던 날, 나는 정말 피곤했다.

예상보다 썩 잘 풀리지 않았던 터라, 기분도 별로...ㅠ

진입한 지 얼마 안 된 히지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완전히 정반대인... ㅎ


난 그냥 카톡으로 고생했다는 인사나 하고 방에 틀어박혀서 조용히 쉬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의 맑고 밝고 명랑한 히지는 그 스트레스를 수다로.. 풀고 싶어했다.... 후.

히지가 쏟아내는 말들을 들으며 실시간으로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그래도 최대한 예의를 갖추려 노력하다 통화가 마무리됐다.


위의 세 문단 내용이 반복됐고, 회피형이고 내향형인 나는 히지를 그냥.. 피하기 시작했다... 이해는 가지만 참 못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히지가 좋았다. 대화도 잘 통하고, 열심히 살면서 자극을 주고, 늘 도와주고 들어주려 노력하는 친구였으니까.


나는 전했어야 했다. 나는 사실 통화 싫어한다고. 운동도 혼자 하는 거 좋아한다고. 너와 친해진 게 참 좋지만 나는 같이하는 것보다 혼자할 때 더 편아놔게 느끼는 것들이 있다고.


그랬다면 히지는 이해하고 받아들여줬을거다.

비겁한 내가 무작정 뒤돌아서 어떤 대답도 주지 않았고, 히지와는 그렇게 멀어졌다.


요즘은 사람들이 서로의 성격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 것 같다. 역시나오늘도어쩔수없이등장하는 엠비티아이가 유행하면서 자신의 성향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배웠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내향형이라는 성향 뒤에 숨어서 사실 회피해버린 거다. 외향형 사람들이 친구 만나고 싶다고 무작정 집에 쳐들어가지 않듯이, 내향형인 나도 최소한 설명이나 대답은 해야했던 거다.

그리고 이걸 고시를 그만두고서야 깨달았다.


뉴비시절을 떠올리니 유독 히지 생각이 많이 났다.

친구에게 힘차게 다가갔는데 훌쩍 사라져버리는 상대를 보며 상처받기도 했을 외향형들.

애정하는 마음이 못내 다 표현되지 않아 안타깝지만 노력에 한계가 있는 내향형들.

사실은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격은 극복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연단의 대상이 아닐까. 내가 하고싶은 대로, 무작정 나만 편한 방법을 취하지 않고, 다른 이들이 나에게 그러하듯 나도 참고, 기다리고, 견디고, 받아들여야 하는 때도 있는 것이다.

물론 늘 그래야 한다는 게 아니고, 그런 순간들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튼 오랜만에 떠오른 히지는 나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아직 다시 연락할 마음이 나지는 않지만,

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을거다.

내가 지금보다 더욱 성숙해져서 꺼려짐보다 사과의 필요가 커지는 그때에, 히지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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