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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열리 Aug 19. 2023

뭐라고요?

[고시촌사람들#004]

나는 어릴 적부터 표준어를 쓰는 지역, 즉 서울말을 쓰는 지역에서 컸다. 물론 지역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교류도 있었고, 미디어를 통해 접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서울에 올라와 약간 표투리화된.. 그런 어투를 사용하는 사람과는 대화해 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이 사람을 만나기 전까진.


고시를 하면서는 그룹 스터디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식 공유의 측면은 물론이고, 동기부여나 일종의 강제성 부여를 통해 어떻게든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이다.

나 또한 여러 스터디를 했는데, 나를 포함하여 4명으로 구성되었고, 아주 이른 오전 시간에 시작하여 점심 즈음에 끝나는 일정이었다.


추운 겨울, 한 독서실 스터디룸에서 처음 모이기로 했고, 발이 시려 발가락을 모았다 폈다 하던 것이 기억난다.


아, 미리 말하자면, 나는 낯을 많이 가린다. 물론 처음 보는 사람과 어느 정도 대화도 가능하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도 있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것은 아직 불편하고,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근데 스터디하려고 모인 네 명이 다 그랬다..

아뿔싸...^^


오늘의 주인공은 배추씨. 그는 대구에서 태어나 쮹 그곳에서 자랐다. 서울로 와서 지낸 것은 고시에 진입하면서라고 했다. 그는 덩치가 좀 크고 매서운 눈을 가졌다. 때가 코로나가 창궐한 때라 마스크를 써서 더 그래보였다.


솔직히 무서웠다. 온몸으로 무뚝뚝함을 표현하고 있었고, 다른 스터디원이 필요 이상의 말을 하는 경우 일절 리액션을 하지 않는, ‘먹금’을 시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나에게 (정말 순도 100% 필요에 의해) 무언가 질문을 했고, 당황한 내가 움찔거리며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도 어리둥절 했을 것 같다. 본인은 그냥 뭐 물어본건데 별안간 겁을 먹은 상황ㅋㅋ

내 대답 뒤에 그는 내 말끝을 잘라먹으며 내뱉었다.


“뭐라고요?”


아... 이 미묘한 차이를 어떻게 설명한담. 녹음해서 올리고 싶다.

내가 사용해온 어투에 기반하면, 뭐라고요?는 약간 (빡침)(안경벗고)(눈에 힘 빡 주고) 뭐라고요? 이건데...

그래서 나는 내가 뭘 잘못했나.. 왜 따지지.. 왜 화내지... 하고 더욱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와는 다시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왜냐면 무서우닉가...


그의 시선에서 보자면, 나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온몸으로 낯을 가리는 중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이 말할 때 본인을 쳐다보지 않아서 배추씨는 못내 서운했다고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본인은요? ㅠㅋㅋㅋㅋㅋ

여튼 그리고 문제의 뭐라고요.


그는 그저 사투리 톤의 뭐라고?에 -요를 붙였을 뿐인거였다.. 정말 그는 내가 뭐라고 했는지 몰라서...

내가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해서인지 배추씨에게 내 대답이 온전히 닿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정말로 못들어서 나에게 되물었을 뿐인데 내가 너무 움츠러들기에 본인하고 얘기하는 게 그렇게 불쾌한가 싶어 더이상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그렇게 서로 몇 달간 내외했다.....


그는 알고보니 대단히 부드러운 말씨를 쓰는 다정한 배추였다ㅋㅋㅋㅋ 고시촌에서 만난 사람 중 제일 사람같았다ㅎㅎㅎㅎ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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