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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열리 Aug 20. 2023

익숙한데 어색한 것

[열리는 삶#005]

정말, 정말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알던 사람들 말고 초면인 사람들을 만나고, 언어적, 비언어적 소통을 포함한 일종의 상호작용을 하고, 처음 보이는 내 모습에 스스로 어지러운 날이었다.


나는 일대일 대화를 훨씬 선호하는 편이다.

상대에게 맞춰 반응을 적절히 조절해야 하는데, 갑자기 두 명 이상이 되어버리면 어디에 맞춰야 할지 몰라 그냥 말이 없어진다. 그러면 재미없고 집에 가고 싶어 진다. 물론 일대일로 만나도 집에는 가고 싶지만.


5명. 다수였다. 정말 다수였다. 일종의 모임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는데, 심지어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참여한 상황이었다.

낯설었다. 누굴 처음 만나는 게 처음인 것도 아닌데, 익숙한데 생경한 느낌에 속이 울렁거렸다.

말을 한마디라도 할라치면 손이 떨리고 배가 저린 느낌이 났다. 스릴러가 따로 없었다.


대충 모임이 끝난 후 사회성을 소진한 나는 두통에 시달렸다. 썰물처럼 사회성이 빠져나간 자리를 신경성 두통이 날카롭게 파고드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렇게나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의 수보다 앞으로 만날 사람의 수가 더 많을 텐데. 참으로 아득하다. 수없이 거친 경험이라 익숙한 것이면서도 늘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대하는 것은 낯설고 어색하다. 물론 어느 정도 낯을 가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나는 개선이 필요한 상황인 것 같다.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했을 때,

그냥, 그냥 둬보기로 했다.

예전처럼 붙임성 좋은 사람인 양 연기하려고 시동 걸지 않고, 어색한 나를 그렇게 머쓱하고 어색하게 두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자기소개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조금 어렵습니다.

나는 그렇게 친화력이 좋은 사람은 아닙니다.


문장으로 소리 내어 전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내 진짜 모습이 소개되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처음이었다. 그렇게 뚝딱거리고 난처해하는 내 모습을 그냥 그렇게 방관한 것은.


생각보다 괜찮고 편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실시간으로 집에는 가고 싶었지만.

앞으로도 그냥 나는 가만히 나를 지켜보고 싶다. 내가 보이고 싶은 이미지로 비치기 위해 노력하고 연기하는 것은 그만두고, 사람들에게 솔직히 나를 보여주는 경험들이 쌓이면, 언젠가는 익숙함이 그저 익숙함으로 남고, 어색함은 기분 좋은 새로움으로 바뀌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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