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비정기 인사발령
인사발령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불렀네. 잠깐 앉지.
때는 4월 24일.
일본회사의 정기 인사이동 시기인 4월은 벌써 다 지나간 지금 발령이라니? 우선 당황한 표정을 추스르고 법인장 앞에 앉아 자연스럽게 손깍지를 낀 후, 경청하는 듯 상반신을 앞으로 기울였다. 의외의 시기에 불쑥 나온 이야기인 만큼 나에게 좋은 일이 아님은 분명했다.
"지금 담당하고 있는 마케팅 업무는 오는 5월 말까지 인계를 마쳐주었으면 하네. 동시에 우리 회사에서 큰 매출을 내고 있는 최 팀장 밑에 가서 업무인계를 받도록 하게"
"정확한 발표 시기는 언제인가요?"
"5월 8일이 될 걸세. 일본 본사에서도 발령 2주 전에는 개별적으로 알린 후에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는데, 한국 지사에서도 줄곧 이렇게 해왔는지는 내가 잘 몰라서..."
사장은 약 2개월 전에 한국으로 정식 부임하였다. 한국은 출장과 주재원 경험이 많았다고는 하나, 실무자가 아닌 사장으로서 해외 거점을 책임진다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다. 이렇게 불쑥 발령을 통보하는 데에도 무언가 배경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은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 대개의 사람은 본인이 내린 결정에 대해 정당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반대의견을 낸다면 거꾸로 안 좋은 결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순발력을 앞세워 자리를 지키려는 방어적 자세보다, 나중에 내 의견을 더 논리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상황파악이 우선이다. 한 가지, 답을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 입을 열었다.
"제 후임은 재직 중인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가 오게 되는 건가요?"
"새로운 사람을 데려 올 생각이네.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으니 5월 8일까지는 이대로 기다려주게"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뒤 돌아 조용한 응접실을 나가는 내 등 뒤로, 사장이 당황한 듯 한 마디를 더 꺼냈다.
"자네 팀장, 그리고 함께 일하고 있는 주재원 이치무라 상을 포함해서 누구에게도 이 발령 내용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네, 잘 알겠습니다"
몇 분 정도 걸어 내 자리로 돌아오는 길에 당장 필요한 일을 몇 가지 생각했고, 바로 한 가지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주재원 이치무라를 조용히 불러 함께 탕비실로 향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