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화정이 sbs 개국과 동시에 27년간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최화정의 파워타임'에서 하차했다. 얼마 전, 김창완의 아침창이 폐지되면서 김창완이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를 언뜻 본 것 같다. 거기다, mbc의 싱글벙글쇼까지 폐지.
라디오. 이제는 아무에게도 관심을 끌지 못하는 매체가 된 것일까. 맛깔나는 이야기와 신나는 음악을 전해주던 전설의 DJ가 하차하고, 인기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폐지되는 지금. 라디오는 그야말로 '추억'의 다리를 건너고 있는 건 아닐까.
1996년. 나에게 나만의 라디오가 생겼었다. 라디오가 생생하게 잡히는 신형 CD플레이어를 동네 마트 경품행사에서 받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라디오를 침대 옆 빨간 스탠드 아래에 고이 모셔두고, 라디오 속 이야기와 음악에 빠져들었다. 때는 바야흐로, 이제는 전설로 남은 DJ 이문세가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하던 때였다.
1990년대의 나에게 라디오는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처음 접할 수 있는 정보의 보고였고,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주크박스였다. 핸드폰으로 원하는 정보를 다 찾아볼 수 있고, 음악 재생 앱을 통해 전 세계의 모든 음악을 쉽게 들을 수 있고, 유튜브로 정보와 음악 그 밖의 모든 것들을 볼 수 있는 지금. 이젠 내게도, 라디오가 주는 의미는 '추억' 그게 전부다.
1985년부터 1996년까지 10년 넘게 '별이 빛나는 밤에'의 별밤지기였던 이문세는 마지막 방송에서 '꺼이꺼이'라는 표현이 알맞을 정도의 눈물을 흘렸었고, 나도 눈물을 흘렸던 추억이라면 추억인 기억이 있다. 이문세가 없는 별밤이 더 이상 별밤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던 것처럼, 최화정이 없는 파워타임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나이를 가늠기 어려운 새침한 말투와 센스, 에너지 가득한 하이톤의 목소리가 축 처진 오후에 비타민 드링크 같았던 최화정. 27년 동안 한자리를 지켰다는, 동안의 대명사 최화정의 얼굴에서, 문득 지나온 세월만큼의 나이가 보였다.
볼 수 있는 영상이 넘쳐나는 시대, 듣기만 할 수 있는 라디오는 나이 든 사람들이 운전하면서 나 듣는 매체가 돼버린 지 오래. 놀랍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추억이 설자리는 이렇게 하나둘씩 사라진다.
그간, 한낮의 상큼한 목소리로 에너지를 전달해 주었던 그녀가 쌓아온 시간에 고마움을 전하며. 다시금 작은 방안,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유일한 매체가 라디오였던 나의 과거를 추억해 본다. 오늘도, 잠깐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