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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May 01. 2023

군대, 회사 생활의 튜토리얼

지하철에서 군인을 봤다. 상병. 신형 디지털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귀에는 에어팟. 손에는 아이폰. 고개를 숙이고 잠을 청하는 남자. 그에게 있어 군대는 어떤 곳일까. 나에게는 어떤 곳이었나.


대한민국의 청년 대부분은 20대 초반, 아직 본인의 진로를 결정하기에는 한참 이른 나이에 군대에 간다.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혹은 카투사. 군종별로 입대 지원을 한다. 누군가는 운전면허 취득을 하고, 토익점수를 만들고, 타 병과에 지원하는 등 입대를 준비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고 별 다른 준비 없이 훈련소로 향한다. 


별 준비 없는 사람들에게 있어 군대라는 곳은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하기에, 준비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냐며 자기 합리화를 하고, 준비를 포기해 버린다. 


군대에서의 생활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군종을 가느냐 어떤 주특기를 부여받느냐 어떤 부대에 가느냐 어떤 선임을 만나고 어떤 간부를 만나느냐에 따라 가능한 경우의 수가 수만 가지 나뉜다. 힘든 부대에서도 즐거운 추억을 가득 안고 사회로 돌아오는 사람이 있고, 여유로운 부대에서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을 안고 나오기도 한다.


어떤 어려운 환경에 떨어지더라도 대부분은 참고 군생활을 한다. 이 년이 채 안 되는 시간만 버티면 사회로 나간다는 마지노선이 있는 것이 하나의 이유다. 그리고 무엇보다 참고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없기도 하다. 나를 괴롭히는 선임이 어딘가로 쫓겨나도, 정말 쉬운 보직으로 인사이동이 되더라도 전역 날짜가 앞당겨지지 않는 것은 매 한 가지다. 군생활 자체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생각해 보면 사회생활도 군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취업과 입대 그리고 사회에서의 업무와 군대에서의 일과. 과정도 비슷하다. 먹고는 살아야겠고, 그러려면 어디든 취업해서 일은 해야겠으니 여기저기 입사 지원해서 불러주는 곳을 간다. 정말 어떤 직무가 꼭 하고 싶다거나 특정한 회사에 입사하고픈 강한 의지가 있는 취준생은 카투사를 준비하거나 공군을 준비하는 예비 입대자와 비슷하다. 꼭 어디에 취직해야겠다는 목표가 불분명한 대다수는 여기저기 그럴듯한 회사에 자소서를 밀어 넣고 연락 오는 곳 중 연봉이 가장 많다거나 네임밸류가 그나마 낫다거나 하는 곳에 취업한다.


그렇게 입사해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도 군대에서 보직받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회사에서 사람을 뽑을 땐 어느 정도 직군을 정해져 뽑기에 군대만큼 무작위성이 강하지는 않다. 하지만 채용 공고에 나온 업무를 보고 상상한 업무와 실제 하게 될 업무는 완전히 다르다. 실무를 해보지 않은 입장에서 어떤 일이 나한테 맞는지 내가 잘하는 일인지 알지도 못하고 인사팀에서도 알 방도가 없다. 그래서 적당히 전공과 연관 있는 것 같은, 적성검사 결과와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군대생활과 마찬가지로 회사생활에서의 직무도 나와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군대에서는 버텨야 할 시간이 정해져 있기에 잘 맞지 않더라도 그냥 한다. 물론 맞지 않는다고 해서 어떻게 다른 걸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없기도 하다. 하지만 회사는 다르다. 일이 맞지 않으면 그만 두면 그만이다. 군대와 다르게 언제든 그만둬도 된다. 


그렇지만 막상 그만두기가 참 힘들다. 그만둬도 된다는 선택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선택지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하는 일에 아무 보람을 못 느끼고, 상사에게서는 아무 배울 것이 없고, 회사의 비전마저도 없지만 그냥 다닌다. 그냥 지금 먹고살 수는 있으니까. 아주 못해먹겠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로, 남들도 다 그러고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군대에 순순히 가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남들도 다 가니까.이다. 가지 않는 사람의 비율이 보다 높았다면 (예컨대 10% 이상), 나도 저 무리에 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을 것이고, 그렇게 되기 위해 준비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누가 봐도 신체에 큰 결함이 있는 사람을 제외한 절대다수가 군대에 간다. 그래서 다들 그냥 간다. 다들 가는 거니까. 원래 그런 거니까.


회사생활도 그렇다. 회사가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거지 같지만 먹고살려고 다닌다. 그만둔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도 딱히 없다. 막연하게 카페나 하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아 주식으로 단타 쳐서 돈 벌면 행복하겠다. 나도 유튜브나 해볼까. 정도의 생각이 전부이기에 용기를 내려고 해도 낼 수도 없다. 회사에 다니는 비슷비슷한 친구들을 만나도,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료를 만나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회사 다니기는 싫지만 딱히 뭔가 시도하고 싶은 일이 없다. 그런 일이 있더라도 그 일에 대해, 나에 대한 확신이 없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군필자를 우대하는 이유가 군대와 회사생활이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남들 다 하는 군생활 2년. 어차피 언젠가는 사회로 나오게 될 것, 그 안에서 발생하는 온갖 부조리한 일들 대부분에는 눈을 감는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견디고 만다. 군대에 말뚝 박을 것 아니니까. 내가 여기서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바뀌지 않을 거니까. 


그렇게 군대를 거치며 길들여진 사람들은 사회로 나오고, 대다수는 회사로 들어간다. 회사에서 군생활의 연장을 이어나간다. 군대 생활과 달리 끝이 정해지지 않은 회사생활을 이어 나간다. 남들도 다 그러고 있으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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