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라보라 Jan 25. 2021

하늘과 바다의 별

별 보러 갈래?

[하늘과 바다의 별]     

 해가 빠르게 지는 겨울에는 제주의 밤이 더욱 길다는 것을 체감한다. 제주의 많은 가게들은 이르면 6시 늦어도 8시면 닫는다. (물론 제주시내의 가게들은 늦게 까지 여는 가게도 많다.) 동네는 더욱 어둠이 빠르게 드리워지고 적막하고 고요해진다. 올빼미 체질인 나는 제주에서 긴긴 겨울밤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오늘도 여느 날과 같이 무민군과 나는 저녁을 먹고 배들 두들기며 기나긴 밤을 티브이로 무료하게 보내고 있다. 딱히 찾아보는 프로가 없는 우리는 시선을 사로잡는 채널이 나올 때까지 리모컨 버튼 무한 누르기를 반복 중이다. 아 재미있는 거 없나? 마침 ‘나 혼자 산 다’에 화사 씨가 나오고 있었다. 매력을 여실히 뿜어내는 그녀가 늦은 밤 어디론가 향하는 중이었다. 그 새벽에 그녀는 어디를 설레어하며 가는 걸까. 궁금증은 채널을 멈추게 했고 답은 금방 알게 되었다. 별이었다. 별. 깜깜하고 이 긴 밤에 별구경 이야말로 딱 알맞은 놀이었다. 우리도 당장 가자! 무민군과 나는 산책 가자는 말을 들은 강아지 마냥 보이지 않는 꼬리를 세차게 흔들면서 나갈 채비를 했다. 별이 보이는 곳은 아주 추울 거야. 패딩을 꺼내서 단단히 여민 후 인터넷이 알려준 제주의 별이 잘 보인다는 ‘1100 고지 휴게소’로 출발했다. 

     

 여러분은 1100 고지 올라가는 길을 지나가 보셨을지 모르겠다. 제주에서는 아주 유명한 길인데, 한라산을 끼고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아주 험난하고 높은 길이다. 산길로 굽이굽이 올라가야 해서 밤길은 특히 위험하고 겨울에는 길이 많이 미끄러워 주민들도 기피하는 길이다. 눈이 오는 날이면 자주 통제되는 곳이다. 1100 고지 휴게소는 그 지점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엄마와 한번 제주 여행 중 이 길을 지나가 본 적이 있는데 한겨울이었고 해가 빨리 지면서 숙소로 향하는 최단거리를 내비게이션에 찍고 가다 보니 이 곳을 맞닥뜨리게 된 것. 그날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 주님, 제발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무사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벌벌 떨며 가로등이 있는 큰 길이 나올 때까지 울먹거리며 기도를 했던 기억이 있다.    

  

 어두운 산길을 천천히 올라 1100 고지에 도착해 보니 이곳은 이미 꽤 많은 이들이 찾는 유명한 곳이더라. 모두들 불빛 하나 없는 곳에서 옹기 종기 모여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도 아무 자리에 우뚝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와! 우와! 왜 그동안 제주에 와서 별을 볼 생각을 못했을까. 까마득한 하늘에 무수히 빛나는 별들과 더 밝은 달이 선명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별은 보면 볼수록 더 많은 별들이 보이고 잘 알지는 못하는 무수한 별자리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멋지게 뽐내고 있었다. 하늘이 드넓어 내 두 눈에 한 번에 담지 못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최대한을 담아보려고 했다. 아, 행복해라. 너무 행복한 순간에는 함께하고 싶은 이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 사람들과 또 와야지. 오늘의 기쁨을 획득하고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너무 늦어지기 전에 등을 돌렸다.      


 산길의 내리막은 더욱이 조심해가며 내려가야 한다. 커브 길에서 속도가 조금만 높아도 다른 차선을 넘어가 버리기 일 쑤다. 조금만 천천히, 천천히 운전해. 겁먹은 내가 자꾸만 속사포로 무민군에게 요청하기를 몇 번인가. 어? 무민군 바다에 배들이 잔뜩 떠있어! 나무 사이 넘어 얼핏 보이는 캄캄한 바다에 무수한 고깃배들이 은하수처럼 띠를 지어 눈부시게 밝은 빛을 내며 떠있었다. 바다의 별이었다. 쌩쌩 운전하던 무민군도 속도를 줄여 바라보았다. 제주에 와 늘 상 스쳐 지나가듯 보았던 고깃배들이 나의 향하는 시선이 바뀌었을 뿐인데 바다를 더욱이 예쁘게 빛냈다. 늦은 밤 수많은 배들이 제주를 감싸며 파도가 허락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늘 저 자리를 지키고 계셨을 텐데. 지금 저 배 위에 계시는 분들은 아실까? 자신들이 지금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하늘의 별도 바다의 배도 자연도 사람도 항상 그곳에서 빛나고 있었지만 세심히 들여다보거나 시선을 달리하지 않으면 식상해지거나 잘 보이지 않아 무심히 지나칠 때가 많다. 그리고 곧 잘 잊어버린다.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나 자신도 내가 얼마나 멋진 제주에 살고 있는지를 금방 잊는다. 그것이 내 집에서만 갇혀 좁다란 시선으로만 바라보았던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하늘과 바다의 별을 빌어 제주를 다시금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제주도민들만 아는 맛집이 어디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