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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지 Feb 14. 2023

#3 여름, 토스트


게스트하우스에는 총 5명의 사람이 있었다. 비수기에 여름 장마가 시작되던 참이라 손님이 많지 않았다. 여자 도미토리에 세명, 남자 도미토리에 두 명이 있었다. 제주식 집으로 지어진 '숲 게스트하우스'는 안채와 바깥채 그리고 사이에 작은 마당이 있었는데, 저녁에는 손님들의 바비큐파티 공간이 되었다. 만 오천 원을 내면 사장님 부부가 저녁을 준비해 주신다고 하셔서, 바로 먹겠다고 했다. 그렇게 숙소에 있던 5명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저녁이 되자 마당의 평상에 모여 앉았다. 불판을 중심으로 반찬과 쌈 그리고 밥과 국이 나왔다.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던 5명은 모두 혼자서 여행을 온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모두 처음 만났지만 여행이 주는 느슨함과 일탈의 즐거움으로 들뜬 여행자들이었기에 금세 가까워졌다. 각자의 나이와 이름, 지금 하는 일과 왜 혼자 여행을 왔는지, 내일 어디를 갈 건지, 갈치는 왜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한지, 그럼 차라리 잘됐다 “우리 같이 갈치 먹으러 갈래요?”라는 말들이 오갔다. 그곳에 민재가 있었다. 서울에서 온 대학생이었다. 말을 재미나게 해서 금세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반듯하고 속뜻이 없는 건강한 분위기의 사람이었다. 그는 내내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굽고, 이야깃거리가 떨어질 새라 다른 화두를 던졌다. 나는 쾌활하고 사람들 중심에 서 있기를 꺼려하지 않는 이들이 궁금했다. 그 밝음 속에 다른 것도 있을까, 나랑 비슷한 모습이 있을까. 보슬보슬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평상 위의 그릇을 부엌으로 옮기고 안채의 남자 도미토리로 자리를 이동했다. 시골의 할머니집에 온 것 같은 인테리어와 비 오는 날의 자정은 우리를 무서운 이야기의 세계로 이끌었다. 아주 오랜만에 이유 없이 떠들고 웃어댔다. 

다음 날 새벽까지도  내내 비가 내렸다. 나는 6시에 스르르 눈이 뜨였다. 창 밖을 보니 푸르스름한 새벽의 기운이 감돌았다. 간단하게 옷을 갈아입고 마당을 나갔다. 크게 기지개를 켜는데 부엌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 누가 있나 싶어 들어가 보니 민재가 있었다. 민재는 싱크대를 서성이며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식빵 두 장과 계란 한 알 그리고 햄과 치즈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뭐해요?” 나는 그의 정적을 깨고 소리를 냈다. 

“토스트 하려고요. 일찍 일어났네요? 하나 만들어줄까요?”

“좋죠. 같이 만들어요. 거들게요.”

나는 민재의 곁으로 갔다. 프라이팬에 버터를 살짝 녹여 식빵 두 장을 올렸다. 버터의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자주 해 먹는 거예요. 쉽고 간단해서 매일 아침 이렇게 먹는데, 여행 와서도 먹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는 배시시 웃었다. 그런 민재를 나는 몰래 곁눈질로 살짝 보았다. 

“나는 계란을 구울게요"

“저기 찬장 안에 프라이팬 하나 더 있어요. 그거 사용하세요.”

나는 찬장에서 프라이팬을 꺼내 가스레인지의 불을 켜고 기름을 둘렀다. 계란은 데워진 팬 위로 떨어져 치지직 소리를 냈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요?” 계란을 보며 나는 민재에게 말했다.

“저에게는 첫 여행이거든요. 혼자 하는…, 이상하게 눈이 빨리 떠지더라고요? 정민 씨는요?”

“저는…, 이 토스트 먹으려고요.”


나는 재밌지도 않은 농담을 하곤 얼굴이 빨개졌다. 민재는 프라이팬의 식빵을 조심스럽게 뒤집으며 웃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물안개가 가득해 꿈속 같았다. 우리는 토스트를 함께 만들어 먹었다. 

그날 아침은 그가 그곳에 머무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여행을 떠났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과 겨울이 찾아왔다. 그리고 봄을 지나 또다시 여름이 왔다. 빗소리에 아침 일찍 눈이 뜨다. 배가 출출해 냉장고에서 식빵과 계란 한 알, 햄과 치즈를 꺼냈다. 프라이팬 위에 기름을 두를까 하다 문득 남아있는 버터가 떠올랐다. 버터를 한 조각 프라이팬에 올렸다. 그 위에 식빵을 올렸다. 고소한 냄새가 감돌았다. 일 년 전 숲 게스트하우스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민재가 생각났다. 식빵 위에 계란, 햄, 치즈 순으로 올리고 또다시 식빵을 올렸다. 빵칼로 반듯하게 중간을 갈라 두 조각을 내고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한 입 깨물어 먹었다. 


“맛있다.”


나는 핸드폰의 티웨이앱을 켰다. 그리고 내일 바로 떠나는 제주행 티켓을 한 장 구입했다. 





브런치 주간 연재 | 화요일의 초단편 소설 

브런치를 통해 일주일에 한 편씩 초단편 소설과 함께 그림을 발행하는 개인 프로젝트입니다. 

매주 화요일 마다 한 편씩 업데이트됩니다. 


목차

/ 배경에 속한 사람

/ 하루종일 잠만 자는 사람의 이야기

/ 여름 토스트

/ 붉은 꽃 

/ 두더지 

/ 고양이 

*발행 순서는 상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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