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세상이 틀렸다
중학교 때의 일화다.
당시 유명한 체인 영어학원을 다녔었다.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정기적으로 그 학원에서는 영어 시험을 봤었고, 언젠가 나는 시험 커트라인을 넘지 못해 주말에 학원에 나와 재시험을 치러야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물론 어떤 문제를 틀렸는지, 심지어 내가 몇점인지에 대한 피드백은 전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네가 통과를 못했으니 주말에 나와 재시험을 봐야한다"는 식의 통보가 다였다. 그래서 나는 주말에 학원에 나와 시험지를 받았고 문제를 풀다가 내가 뭘 틀린지도 모르는 시험을 다시 치르는게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지?라는 생각에 사로 잡혔다.
그래서 나는 문제를 풀다 멈추고 재시험 용지에 나의 생각과 이 시험의 부당함을 썼다. 틀린 부분은 어디인지 내가 몇점인지도 몰랐기 때문에 재시험의 의미는 없다는 식의 내용이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됐을까?
학원 관계자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까지 이런 학생은 없었다고. 자세한 내용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장렬하게 학원을 그만뒀다.
그 사건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왜 이 에피소드가 생각 났을까?
To 엄마.
난 학원을 가기 싫었던게 아니야.
말도 안되는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군말 없이 따르는 사람들이 싫었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