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의미란 순간적인 것이 아니다. 의미는 관계를 짓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존 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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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다. 학창시절과 군생활에서 모두 고만고만 중간을 유지했다. 반장은 해본 적없고 무엇을 대표해 이끌기보다는 누군가를 조력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왕관의 무게를 버텨야 하는 자리, 어쩔 수 없이 책임감을 져야 하는 자리와 상황은 애써 피하며 살아왔다.
늦깍이 스물 다섯에 다시 들어간 대학은 예술대학답게 사방천지 재밌는 일이 넘쳐났고 방송, 연기, 음악, 글, 디자인, 광고 이른 바 ‘예술’ 이라는 것을 하고 싶어 모여든 끼 많은 또라이들이 즐비했다. 예술대학 중 네임밸류가 높은 편이라 각 학과에 입학하기 위해 재수는 물론 삼수도 흔했고, 심지어 우리 과에는 8수까지 한 친구도 있었다. 살아있는 전설처럼 여덞번 문을 두드린 그는 나와 함께 입학해 동기가 되었고, 알고보니 나이도 동갑이었다. 내가 교수였대도 그 열정은 높게 살수밖에 없을것이다. 성적순으로 줄 세워 들어오는 곳이 아니라 꼭 이 학과를 와야만 하는 사연 많은 친구들이 모였고, 그만큼 오고 싶었기에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열정적인 학교생활을 했다. 그 열정적이면서도 깐데없는 자유로움이 학교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고, 그게 우리 만의 문화였다.
학교와 학과에 대한 애정은 가득차다 못해 넘칠 정도였다. 예비역이라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입학때부터 선배들의 관심을 받았고, 애정이 큰 만큼 학과임원이 되어 선배를 따라 학과운영을 같이 했다. 전에 다니던 대학은 선배가 누군지도 모르고, 이 후배가 우리과인지도 모를 정도로 재미없고 지루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목표일 수 있겠지만 모두가 취업을 하기 위해 각자도생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암, 나는 절대 그렇게 지내지는 못한다. 그렇게 시시한 1년을 보내봤기에 우리 과 학우들의 즐겁고 신나는 청춘, 그 한 페이지를 멋지게 채워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다른 학교에서 1년 굴러본 경험이 스물 살 갓 입학한 친구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술 마시다 막차를 놓쳐 동기집에서 몇 일을 잘 정도로 신나게 놀고, 이성의 기숙사에 몰래 들어가 하룻밤을 보낼 용기를 가지고 뜨겁게 사랑하며, 공부는 마음가는대로 또 최선을 다하는 것, 교수님의 뒷통수를 후려칠 기깔난 아이디어를 짜내고, 수업에 참여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통찰력을 가지도록 새로운 관점을 키워나가는 것. 나부터 그 시간을 잘 쌓아 보내고 싶었고, 좋아하는 우리 학우들도 그랬으면 싶었다.
중간/기말고사, 체육대회, 동아리 발대식, 졸업 워크샵, 졸업 전시회 등 굵직한 일들로 1년이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2학년이 되며 차기 학과회장을 뽑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임 학회장은 내가 학회장을 했으면 한다며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나서는 자리에 대한 고민에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총회날, 학회장 선거를 했다. 먼저 자발적으로 입후보 하고 싶은 학생의 의견을 받았는데 8수생 내 동기가 자신있게 손을 들었다. 나 못지 않게 열정있는 친구였음은 물론이다. 다만 그 친구가 학과를 이끌어 갈 깜냥이 있는지는 개인적으로 의문이 들었다. 의문은 그 친구가 거수하자마자 확신으로 다가왔다. ‘친구가 하는것 보다 내가 하는게 더 나을 것 같다’는 근거없는 이유로 나 역시 입후보를 했다. 최종 2명의 후보로 압축되었고 투표에 앞서 공약을 말하는, 앞으로의 포부를 간단히 말하는 스피치를 했다. 임원을 경험하며 느꼈던 것들, 개선이 필요한 것들, 학과생들이 필요한 것들에 대해 신경쓰겠다는 말을 한 것 같다. 내가 적임자인지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자리였기에 학과생들이 꽉 찬 강의실은 면접장 같이 느껴졌다.
친구는 대부분 선배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고, 나는 후배와 동기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둘 다 학과를 사랑하고 좋아함은 물론이었고, 친하게 지내던 동기이기도 했다. 8수생과 첫 도전자의 매치 그 뚜껑을 열어보니 박빙의 결과, 빅매치가 되었고 10표차 정도로 내가 차기 학회장에 뽑혔다. 학과에 대한 진심을 알아준 여러 학우들에게 고마웠다. 그 뒤로 학과 교수님들을 만나 인사하고 임원들을 꾸려 학과회장 역할을 수행했다.
학기말이 끝날때쯤 내년 입시설명회를 진행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전체 행사 이후 학과별로 작은 설명회를 또 열었다. 강의실 하나를 빌린 공간에 학과 지원에 관심있는 분들이 빼곡하게 자리했다. 그 시간, 그 공간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뜨겁게 타올랐다. 하나라도 정보를 알고 싶어하는 그들의 눈빛은 맑고 반짝였다. 대학 입시가 삶의 방향을 결정하기도 하기에, 보이지 않는 미래라도 확인하고 싶은 열망과 열정은 고스란히 느껴졌다. 자식의 진로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부모님들의 모습은 든든해보였고, 예비수험생들의 똘망똘망한 모습을 보니 나의 입시때가 스쳐 지나갔다. 아무것도 모르고 수험성적표 하나 가지고 웹상에서 정보를 찾아 헤매기 부지기수였다. 다음 입시카페를 찾아 정보를 얻고 수험생들과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그때 입시설명회를 한 번 가보았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학교, 학과의 분위기를 직접 느껴보는 것은 가상의 목표를 설정하는것보다 구체적인 목적의식을 만들어주었을테니까.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학과장 교수님을 모셔 이야기를 들었다. 입시에 대한 정보보다는 광고의 중요성, 졸업 후 진로, 주요 교과 커리큘럼, 교수진 소개등을 하며 이야기를 마쳤다. 짧은 시간으로 인해서인지, 겉핥기 밖에 될 수 없는 이야기에 청중들은 조금 따분해 보였다. ‘그들이 원하는 건 그런 정보가 아닙니다' 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교수님이 나가고 난 뒤 비로소 본격적인 우리의 이야기를 풀었다.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PPT로 가볍게 정리한 자료를 띄워놓고 눈에 띄는 이미지와 수치로 그들의 이목을 끌었다. 수시와 정시 전형별로 다른 사항, 내신 성적, 수능 성적, 면접과 실기 등으로 구성되는 반영율을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큰 곁가지의 이야기는 짧게 마치고, 질의 응답 시간을 최대한 길게 구성했다. 앞에 있는 우리 임원들이 바로 입시의 유경험자들이니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는게 그들이 가장 원하는 내용일거라 생각했다. 바로 작년, 이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들의 정보를 모두 뽑아 전해주고 싶었다. 수시합격자의 내신성적은 몇 등급인지, 평균적인 수능 성적은 어느정도인지, 실기고사에서 평가 주안점은 무엇인지, 면접에서 교수들의 평가기준은 어떠한지, 정보들을 미리 정리해놓고 설명해주었다.
광고의 중요성보다는 기업이나 기관에서 마케팅, 광고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는지 알려주며 학과의 전문성을 높이고자 했고, 졸업 후 진로보다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문선배들을 이야기하며 끌어주고 이어주는 선후배간의 커넥션을 말하고자 했다. 교과 커리큘럼보다 학생들 작품의 결과물을 보여주며, 광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자 했고, 교수진 소개에 현업에서 초청되는 유명 광고인들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국내 인하우스 현직 종사자를 만난다는 것이 학생에겐 가장 열의를 불태워준다고 생각했기에.
수시, 정시 입시 기간 면접대기장에서 입시설명회 때 우리를 봤었다고 말한 수험생수는 제법 되었다. 그들의 그 말이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었다. 우리는 초면이 아니라 구면이고, 너와 우리가 함께 같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고 느꼈기에 우리 역시 덩달아 설레었고, 초심을 찾는 만남이었다. ‘우리가 다음 올 사람들의 길 안내는 잘 하였나보다' 라고 느낄 수 있었기에 감사했다. 수험생들에게는 관심을 계속 가지고 입시에 응해주어 고마웠고, 꼭 좋은 결과가 있기를 다른 수험생보다 더 간절하게 응원했다.
나 포함 학생회 임원들이 대내외적인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음은 물론이다. 그 고됨과 일련의 과정들을 세세하게 쓰지는 않겠다.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잘해도 본전 못하면 욕 먹는 그 시험대에서, 오직 학과에 대한 애정 하나 만으로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친구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때의 우리 모두에게 고맙고 감사함을 이제서야 전한다. 개인 과제가 아닌 학회 회의로 밤을 새어도 행복할 수 있던것은 모두 우리 임원들,학우들 덕분이다.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즐거운 표정, 교수님의 여러 칭찬, 외부강사의 학과에 대한 좋은 평가를 들을 때면 그 고됨은 어느새 기억나지 않기도 했다.
아이디어가 생명이자 무기인 우리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 낸 여러 행동과 말, 분위기들이 학우들게에 많은 즐거움과 영감을 주었기를 바랄 뿐이다. 무엇을 위해 최선을 다해 마음을 쓴다는 것, 그 소중함의 위력을 몸과 마음에 켜켜이 쌓아 기억하고 있다. 젊은 날 캠퍼스가 그립다. 다시 학교 다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