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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카머 Jul 18. 2022

달리면서 이해하는것들

(2)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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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다섯시 반, 눈을 뜨자마자 도복을 입고 태권도장으로 향했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몸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느꼈다. 아파트 뒤 아스팔트 공터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축구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싸우기도 하면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저녁 시간만 되면 엄마는 어김없이 공터에 대고 큰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게 저녁을 먹으라는 신호였고, 이제 그만 놀고 들어오라는 우리의 약속이었다. 중 고등학교 때, 여러 학교에서 진학해 데면데면한 친구들과는 별 다른 것을 하지 않고 축구를 하면서 가장 빨리 친해졌다. 공을 주고 받으면서 같은 목표를 두고 함께 땀 흘리는 고,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함으로써 친구를 사귀는 방식을 가장 좋아하고 편해했다. 물론 그때도 지금도, 방식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만든 팀, 고등학교 클럽 팀에서 함께 즐거움을 나누었던 친구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연락을 하는 친구들 보다 끊어진 친구들이 더 많지만, 그 때 우리 함께 나누었던 땀흘리는 시간들은 너무도 행복했다. 점심시간 밥도 안 먹고 뛰쳐나가 40분 축구를 하고, 10분 만에 점심을 먹은 후 오후 수업을 듣는 일상으로 6년을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주말에 모여서 또 공을 찼고, 군대, 대학에서도 공을 찼다. 남자들이 모인 운동장 위에서 축구를 잘하면 선임에게 사랑받으며 군생활은 편해졌고, 학교 선배들에게는 이쁨을 받았다. 어느 집단을 가던지 남자들과 공을 차고 운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었다.


입대전 아빠 회사에서 몇 달 간 일할때는 아빠 회사 동료들과 함께 축구를 했다. 현대미포조선 축구회라고 해서 ‘미포축구회’라고 부르던 팀에는 내가 어렸을적부터 봐온 아빠 동료들이 모두 속해있었다. 회사 야유회, 하계 휴양지에서 만나 용돈을 건네주시던 어른들과 이제는 함께 축구를 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 때 아빠와도 처음 공을 주고 받으며 호흡을 맞추었다. 골대를 많이 맞춰 ‘전골대’라는 별명으로 불린다는 이야기, ‘볼 잘찬다’는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었는데 같이 볼을 차보니 실력은 기대했던 그 이상이었다.


아빠의 플레이 스타일은 주로 중앙에 위치해 경기 전체를 읽으며 팀의 흐름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스타일이었다. 한쪽으로 몰려 꽉 막힌 흐름에서 공을 이어받아 반대로 쉽게 전환해주고, 무리한 전진보다는 함께 올라갈 수 있도록 템포와 박자 조절에 매우 능했다. 공격이 필요하면 공격진으로도 올라가고, 수비가 필요하면 아래까지 내려와 공을 받아주는 살림꾼으로 현대 축구로 치자면 모드리치, 피를로의 중간 스타일 쯤으로 보였다. 넓은 필드에서 숫자로 땅따먹기를 하는 축구에서 어렵지않게 힘을 풀고 쉽게 쉽게, 영리하게 공간을 전환하고, 공간에서 이점을 살릴 줄 아는 야전사령관 같은 아빠의 플레이 스타일을 유심히 지켜보며 반하고 말았다.


내가 추구하는 개인의 플레이와 팀이 보여주는 축구의 방향성을 아빠는 쉽게도 보여주었다. 몇몇 개인의 능력치에 의존하지 않고, 원팀이 되어 톱니바퀴처럼 잘 돌아가는, 무리한 공격이 아니라 쉽고 부드럽게 흘러가는 축구를 지향하는 내 스타일 또한 아빠를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느꼈다. 필드 위에서 패스를 주고 받으며 은연중 내 나이 때의 아빠의 모습이 스쳤다. 스물 셋, 고향을 떠나 아무것도 가진것 없이 회사에 입사해 가족을 꾸리고 따뜻한 울타리를 만들어 준 사람. 몇 번의 패스로 교감하면서 그를 이해하려 했다. ‘그에게 삶의 낙은 무엇인가?’, ‘그는 왜 평생 일만 하다 이렇게나 늙어버렸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서 그 단초라도 찾고 싶었다. 그날 동료분이 찍어준 운동장에서 아빠와 나의 사진에 20대 초반의 나와 50대 초반의 아빠가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 서로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나는 느꼈다. 아빠도 물론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광고회사에서는 면접 때 “축구 잘하는가?”라는 질문을 대표에게 받았다. “광고 좋아하나?”가 아닌 “축구 잘하냐?” 는 또 뭔가. 입사하고 보니 GS계열의 회사였다. 당시 FC서울의 모기업이 GS였고 노령의 회장님은 대한축구협회 회장에 출마할 만큼 엄청난 축구광이라는 말과 함께 광고회사, 광고주, 협력사들이 모여 친목 도모를 위한 축구 리그 AD-CUP에서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는 특이한 지침을 들었다. 프로모션 부서로 입사한 나와 카피라이터로 입사한 A는 축구를 못한다하면 붙여주지 않을 것 같은 기세에 눌려 축구를 잘한다고 당당히 말했다. 입사 후 인턴 주제에 눈치 보이도록 매주 수요일 오후 5시마다 근처 중학교에서 축구를 했다. 카피라이터 A의 실력은 단 한 경기만에 들통 났고, 더 이상 축구에 나오지 않았다.

부서에는 눈치 보였지만 실력을 알아보고는 필요이상으로 나를 챙겨주던 선배도 있었다. 선배와 나는 짧은 시간 호흡을 맞추었는데도 불구하고, 척하면 척 할 정도로 잘 맞았다. 작고 빠른 윙어 스타일인 선배의 속도를 살려줄 수 있는 쓰루패스 하나면 끝이었다. 선배의 강점인 스피드가 죽지 않게, 들어가는 한 번의 타이밍에 전달하는 그 패스에 광고업계에서 날고 긴다는 제일기획, 이노션, 대홍기획, HSAD 회사들은 필드 위에서 나가떨어졌다. 2:1 리턴 패스, 빈 사이드 공간을 질러주는 오픈 패스 등으로 선배와 항상 호흡을 맞추었고 회사 팀원들과도 매우 빠르게 친해졌다. 함께 운동으로 땀 흘리고 ‘한추’에서 맥주 한잔하고 끝나는 주말 오전 일과는 회사생활의 연장선이기도 했지만 너무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작년 겨울부터 나가게 된 정훈의 팀 연우는, 경기도 광주를 연고로 모인 축구 클럽으로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부터 다양하게 모인 팀이다. 1시간 걸리는 먼 거리에도 초청선수로 자주 참여하면서 그들의 체계와 플레이 스타일, 친목 등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함께 게임을 뛰어보면 어떤 팀 컬러를 가지고 있는지, 어느 정도 실력을 평균적으로 가지고 있는지,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다치지 않게 운동하는지 대번에 알게 된다. 경기전 모두 모여 몸을 풀고, 게임후에도 가볍게 스트레칭 하는게 인상 깊었다. 아마추어 동호회 축구에서 가장 간과하는 부분이 몸풀기와 부상이다. 주말 하루 운동하러 나왔다가 몇 개월 동안 일상생활이 불편해지는 경우를 허다하게 봤다.


하루 25-35명 정도가 나오는데 그들과 친분이 없지만 우리는 공으로, 플레이로 대화하고 소통한다. ‘앞으로 공을 끌고 나와라’. ‘상대팀 선수가 주변에 없으니 몸을 돌려라’, ‘너무 막혀있으니 반대로 전환해라’ 나이를 불문하고 이름을 부르면서 공을 달라고 요청하고, 주변 상황을 계속 말해준다. 수 없이 요청하고 응답하고 말하면서 하나가 되어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이게 바로 호흡이고 구력이고, 경력이다. 아무리 젊고 어린 친구들로 구성된 팀이라도 2-30년 발을 맞춘 아저씨네 팀을 이기기는 어렵다. 그들에게는 이미 수 많은 약속의 데이터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누가 있고,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은지가 저장되어 있기에 그것만 반복해도 플레이는 자연스레 살아난다.


새로운 팀에서도 나는 사람들과 공을 주고 받으면서 피지컬과 주력, 패스와 킥 정확도, 장점과 주로 쓰는 스킬, 드리블과 오프 더 볼 움직임 등을 체크하기 바빴다. 그걸 빨리 캐치해야 편하면서도 무리하지 않고 재미있게 볼을 찰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축구란, 11명이 모여 계속 볼을 주고 받으며 호흡을 맞추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만 잘하면 된다’ 보다는 ‘팀에 잘 녹아드는 것’이 중요하고, ‘골을 많이 넣는 것’보다 ‘문전 앞 찬스에서도 더 좋은 기회를 가진 선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기적인 것보다 이타적인 플레이를 좋아하고, 스포트라이트 받는 스타선수보다 팀을 위해 묵묵히 굳은 플레이를 도맡아 하는 ‘언성히어로’에 더 정이 간다. 그래서 ‘팀보다 위대한 선수(개인)는 없다’는 말을 자주 되새기고, 메시, 호날두, 네이마르 같은 선수보다 데로시, 피를로, 모드리치, 비에이라, 마케렐레, 구티, 토니 크로스 같이 2선, 3선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선수들을 좋아한다. 축구 얘기를 이렇게나 쏟아내니까 몸이 근질근질하다. 이 글을 보는 당신과도 필드에서 호흡을 맞출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공 하나로 우리는 그 누구보다 친해질 수 있기 때문에. 축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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