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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관 중독자 Jul 02. 2020

강해서 아름다운  

유디트의 여러 모습

아르테미지아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1620-21, 우피치 갤러리, 피렌체




미켈란젤로 메리지(카라바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1598-99, 팔라초 바르베리니, 로마 



#1.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이 자신의 손에 걸려 있었다. 유디트는 아름답게 꾸미고 아시리아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찾아갔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밤새 마신 술에 취한 장군은 침대에 골아떨어졌고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의 칼을 뽑아 그의 머리를 두 번 내리쳐 베었다. 머리 없는 몸을 침대에서 굴려 떨어뜨린 다음 적장의 머리를 하녀에게 건네주고, 유디트와 하녀는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왔다.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는 높이 매달렸고, 아시리아 군대는 혼비백산, 승리는 이스라엘의 것이 되었다. 


#2. 

아르테미지아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황금빛 드레스의 소매를 걷어붙였다. 적장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큰 칼을 쥔 손과 팔뚝은 강하다. 미간을 약간 찌푸렸지만 그건 적장의 목을 자르려 집중해서일 것이다. 반 정도 잘려나간 목에서 피가 솟구쳐 흰 침대보를 적시고 드레스와 그녀의 윗가슴에도 피가 튀지만 괘념치 않는다. 홀로페르네스의 마지막 저항은 하녀의 제압으로 쓸모없어진다. 하녀 역시 유디트처럼 젊고 강하다. 두 여인은 거침없다. 


한편 카라바조의 유디트는 훨씬 여리다. 이 아가씨는 어찌어찌 적장의 칼을 쥐고 머리를 베고 있지만 이 끔찍한 순간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것 같다. 옆엔 늙은 하녀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담아갈 자루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이 늙은 하녀는 유디트가 더 젊고 아름다워 보이게 도와줄 뿐, 육체적인 도움을 주진 않는다. 


난 카라바조를 사랑한다. 카라바조처럼 내 가슴을 뛰게 하는 화가도 드물다. 그러나 유디트에서만은, 아르테미지아가 훨씬 강렬하다. 아르테미지아도 당시의 많은 화가들처럼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두 여인의 강인한 팔과 선명한 눈썹 사이의 미간 주름으로 게임 끝이다. 


#3. 

아르테미지아 젠틸레스키는 화가였던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에게 교육을 받고 십대부터 화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는데, 스무살이 되기 전, 아고스티노 타씨라는 자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아르테미지아는 그와 결혼하게 될 줄 알았으나 거부당했고 이후 재판 과정에서 분명 엄청난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곧 아르테미지아 젠틸레스키다. (그녀는 1970년대 이후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보는 미술사 연구에서 자주 거론된 화가이다) 적장을 해치우는 유디트와 하녀의 얼굴은 닮아 있다. 어쩌면 젠틸레스키는 두 사람 몫의 힘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4. 

아르테미지아의 유디트가 생각난 것은 카라바조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2019년에 읽고서다. 2014년 프랑스 툴루즈 근처 어느 저택에서 빗물이 새는 바람에 집을 수리하던 중 다락방에서 상태가 꽤 좋은 그림이 발견되었다는 것. 5년 넘는 시간 동안 전문가들이 연구한 결과, 카라바조와 거의 동시대에 활동하고 영향받은 플랑드르 화가 Louis Finson의 작품이거나, 아님 정말 카라바조의 작품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작품이 발견된 장소인 프랑스의 전문가는 카라바조의 작품이라고 하고, 카라바조의 나라인 이탈리아에서는 아니라고 한다. (하찮은 내 의견을 얘기하자면, 바르베리니에 있는 유디트보다 나중에 그려졌다면서 별로 후기 작품의 느낌이 안 난다. 바르베리니 것보다 이전 작품이라면 믿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2019년 6월 런던에서 경매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경매가 열리기 며칠 전에 판매되었고, 구매자의 신원은 밝혀져 있지 않다. 언젠가 어디엔가 미술관에 이 작품이 전시되어, 가까이서 이 유디트를 볼 수 있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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