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나의 순정만화] 책을 내며

-옛날 순정만화 -

by 해말가

습작을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는 건 성형전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내가 그린 옛날 순정만화들이 그렇다. 그런 데다가 세월도 너무 많이 먹은 작품들이라서 내용도 너무 구닥다리다. 그래서 솔직히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것이 매우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들을 책으로 묶은 이유는, 그 시절의 나의 노력과 열정이 완전히 녹아들어가 있는 만화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가치를 높이 사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열정의 순정만화만을 모아서 따끈한 책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사실 [오줌싸개 어른] ~ [심장마비]까지는 1997년에 자비로 만든 책[채찍]에 명랑만화와 함께 실려있다. - [채찍}은, 가난한 만화가 생활에 지쳐 만화를 포기하게 될까 봐 나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위해 만들었고, 두 번 째는 포트폴리오 개념으로 출판사마다 돌리기 위해 만들었다. 아직도 20권이 남아있다. 죽을 때 가져가야겠다. -


채찍.jpg 1997년 작품 모음집


순정만화는 명랑만화보다는 기술적 노력이 10배 이상 소요된다. 원고료도 차이가 난다. 엉덩이에 종기가 나도록 앉아서 그려야 한다. 나는 안타깝게도 그림에도 소질이 없었고 끈기도 부족했기에 순정만화를 그리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예쁘게, 멋있게, 개성 있게, 실감 나게 그려야 하는데 많이 부족했다. 그렇지만 지금, 그 시절의 내 순정만화를 보면 '정말 열심히 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컴퓨터로 사진을 응용해서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는 것들을 사진 찍어오고 인화하고 하나하나 손으로 그리고 먹칠하고 지우개질 하고 스크린톤 붙이고... 지금 이렇게 하라면 못한다.

그래서다. 그래서 나의 어설프지만 열정 가득한 내 순정만화를 [옛날 나의 순정만화]라는 이름의 브런치 북을 내게 된 것이다. [채찍]은 나를 채찍질하기 위해 만든 책이었다면 [옛날 나의 순정만화]는 내 옛날 작품을 위로해주기 위해 만든 책이다.


이렇게 나름의 거창한 이유가 있으면 좀 더 정성을 다해서, 손봐서, 보기 불편하지 않게 내놨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휴대폰으로 촬영해서 초점이 맞지 않고, 흐릿한 부분이 꽤 많다. 긁적긁적.... 스캐너를 고쳤어야 했는데....

기술적인 문제와 내용적인 문제, 철자법, 오타... 모두, 보시는 분들의 양해를 부탁드릴 수밖에 없겠다.


책을 발행하게 돼서 일단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