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애미 May 30. 2024

백자 같은 내 동생

백자 같은 내 동생


대전 동생집에 놀러 갔다. 얼마 전 축구를 보겠냐는 동생의 전화에 갈까 말까 하다 아이들의 성화에 가게 되었다. 사실 내가 가고 싶었던 거지만... 아침 여섯 시 출발하여 동생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아침 8시였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출발한다!"

"언제 도착하는데?"

"8시!"

"장난하지 말고!"

"지금 너네 집 앞이다."

"진짜? 진짜?!"


동생은 믿을 수 없다는 재차 묻는다. 참으로 엉뚱한 방문 시간이다.  집 문턱을 넘자마자 아이들이 조카와 소란스럽게 놀기 시작한다.  여섯 살 조카의 얼굴에도 반가워하는 듯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우리는 점심에 손말이 김밥을 만들어 먹기로 하고 장으로 보러 나섰는데, 나는  길이 복잡하니 걸어가자는 동생의 의견에도 굳이 차를 끌고 나섰다 결국은 주차할 데를 못 찾아 동생의 아파트로 돌아가 차를 주차했다. 십 년이 넘도록 운전을 해도 초보운전을 못 벗어났다. 그렇게 재잘거리는 아이들에 둘러싸여 이번에는 터벅터벅 마트로 걸어갔다. 내 손을 잡은 어린 조카의 작은 손이 앙증맞다. 마트로 향하는 길은 오월의 따스한 햇살로 가득했다. 미세먼지 없는 상쾌한 공기까지... 수많은 날들 중에 오늘은 가장 반짝이는 하루 중의 하나가 될 것 같다.


문득 십 년도 지난 옛날일 생각이 났다. 결혼하기 전, 친구가 없던  늘 외롭고 적적했다. 그래서 종종 대전 동생의 자취집에 내려가 타지생활의 적적함을 달래곤 했다. 그리고 그때도 지금처럼 음식을 함께 해 먹곤 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동생에게 허황되기만 한 나의 꿈을 떠벌렸다. 지금도 그때처럼 내가 어떤 꿈을 말해도 동생은 그저 담담히 들어주고 있다. 동생에게 꿈을 말할 때면 마치 지금 당장 꿈이 이루어질 것만 같다.


장을 보고 와서  나의 진두아래 점심을 준비해서 먹었다. 반으로 자른 김에 밥을 깔고 당근, 계란, 오이, 파프리카, 참치, 돼지 불고기를 자기 취향대로 넣어먹는다. 동생과 아이들이 잘 먹는 모습에 흐뭇했다.

 나도 재료를 가득 넣어 입이 터지도록 먹었다. 그렇게 뒷정리를 하고 설거지하는 동생 옆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아까부터 나의 긴 손톱이 신경 쓰여 말을 꺼냈다.


"손톱이 길어서 불편하다. 손톱 깎아야겠다."


"언니도 네일아트 해보지 그래?"


"귀찮아. 그러고 보니까 우리 식구들은 남들 다하는 그런 것도 안 한다. 그렇지?"

사실은 돈 들어갈 일은 별로 하고 싶지 않기에 댄 궁색한 변명이었다.


"우린 자매들은 꾸밀 줄을 몰라!"

동생이 말했다.

사실 그렇다. 동생이나 나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수수하기만 한 우리 자매를 생각하는 문득 이런 단어가 생각났고 그대로 뱉었다.


"민무늬 토기 같다."


갑자기 이런 단어는 왜 생각났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모습에 알맞은 비유 같았다.


"빗살무늬 토기도 못 되는 민무늬 토기?"


동생의 되물음에 아차 싶었다. 하필이면 민무늬 토기라니 무르고 약한 깨어진 예쁘지도 않은 그 토기라니


"아니 생각해 보니 조선 시대 선비들이 은은한 여백의 아름다움을 칭송했다는 백자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너스레를 떨며 백자비유를 외쳤다.


"달항아리 백자? 막내는 꾸밀 줄 아는데?"

"그럼 걘 청화백자!"


왠지 어색해진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는 동생의 등을 바라보며 긴 식탁 의자 한 모퉁이에 걸터앉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빈말이 아니라 정말  동생은 단단한 백자였다. 딸만 넷 인 집에 셋째로 태어나 말썽도 부리지 않고 조용했던 동생이었다.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고등학교 수학여행 출발 전 배에서 내려야만  동생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다니며 돈을 벌어 대학에 들어갔던  동생이었다. 지금도 독박육아하느라 직장 다니라 그 작은 몸에 어떤 힘이 나서 살아가는지... 마치 1250도 의 가마의 열기 같은 아픔 끝에 단단하게 빚어진 동생이었다. 그런 동생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괜스레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참으로 청승맞다.  요즘 제부와 부부싸움을 해서 열흘 째 말도 안 하고 있다고 해서 더욱 안타깝다.   


그렇게 집에 돌아왔는데 얼마 후 동생이 입원했다고 전화가 왔다. 머리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갔더니 뇌수막염이라고 한다. 다행히 바이러스성이라서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정확한 결과는 며칠이 지나 봐야 안다고 한다. 그 후로 매일매일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말에 먹을 것을 챙겨 남편과 병문안을 갔더니 원인은 대상포진으로 인한 뇌수막염이라고 했다. 모든 게 면역력 문제이다 보니 해줄 것도 없다. 그저 건강 챙기라는 잔소리 밖에는... 이번 일을 계기로 동생부부가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고 좀 더 이해하고 서로 도우며 행복하게 살아가길을 바라본다. 동생이 아프게 되어 서로 말도 트게 되었다니 그나마 다행인 걸까? 앞으로는 홀로 단단하기만 했던 동생의 삶이 하얀 백자의 표면의 은은하고 영롱한 빛 같은 행복을 더해 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동생아 조금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도 좋아. 혼자 너무 씩씩한 척하지 말고 참지만 말고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힘내자 우리!'


작가의 이전글 개똥 같은 내 인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