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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애미 Jun 08. 2024

숲의 초대장


  사흘 전부터 나는 점심시간에 근처 숲을 산책하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산책이었다.

작년부터  점심시간을 반납하고 산책을 정도로 산책에 푹 빠져 있었다.

사무실 뒷문으로 조용히 나와 홀로 떠나는 차원여행 같았다.

답답한 사무실, 잔뜩 쌓여있는 업무, 사람들을 떠나서 나만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9월부터 12월까지 그동안 나는 행복해지는 법을 배웠다.

행복은 늘 내 곁에 있다는 것을...

그 가을과 겨울에 내가 걷던 개울가는

잔잔한 날에는 개울 표면은 하늘과 주변의 풍경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을 걷는 '나'를 품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 물결이 일렁대면 햇빛이 반사되어 일어나는 윤슬에 눈이 부셨다.

서로 부대끼는 갈대들의 소리도 귓가에 머물다 사라졌다.

비가 오는 날에는 초록색 우산을 쓰고 '토닥토닥'거리는 빗방울 소리에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나에게 신발과 길표면이 마찰되어 나는 '착착' 거리는 소리가

내가 여기에 단단히 살아 있음을 대신 말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세상이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저 포근하게 지친 나를 감싸 앉아 주었다. 개울길 따라 다다른 호숫가에 겨울 한철을 나던 철새들처럼 다시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어느 날은 그 개울가에서 물총새를 보기도 했는데 멀리서 반짝이던 파란 머릿깃 그새는

마치 파랑새 이야기의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찾던 파랑새 같았다.


인생의 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기에 나는 겨우 행복의 입문과정 중에 있다.

나의 이십 대는 몸은 컸지만 마음은 어른이 되지 못했다.

뭐가 그렇게 우울하고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기억조차 나지 않던 삼십 대는 모든 생각을 닫고 살았다.

그래야만 살 수 있었다.

나의 이십 대와 삼십 대는 그야말로 어둠 그 자체였다.

말하기에도 민망하기만 한 나의 이십 대, 그리고 기억하기조차 두려운 삼십 대

제발 다시 웃게 해 달라며 통곡하던 이십 대의 나에게

불행할 이유만 찾고 있던 삼십 대의 나에게

이제 행복을 찾았다고 외치고 싶다.

행복은 늘 내 옆에 있었다고!


이랬던 내가 산책을 그만두게 것은

승진으로 인사이동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승진했다는 기쁨도 잠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컸던 것일까? 

스스로를 사무실이 꽁꽁 매여 놓았다. 그래야 마음이 놓였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마음을 펼칠 겨를 없이 바짝 긴장했던 나는

늘 물과 기름 같이 섞이지 못하고 어색한 자리에 있었다.

팀장으로서 부족하기만 한 내가 팀원들을 이끈다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이곳에는 나의 자리가 없는 듯,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것 같았다.

이미 곳은 사람들로 가득 차 내가 가야 할 곳을 잃어버렸다.



참, 오뉴월의 날씨란!  

날씨가 너무너무 좋아

도무지 사무실에 갇혀 있을 수가 없다.

팀원들을 따라 야트막한 산에 올라갔다.

그다음 날은 혼자 숲으로 갔다.

그날 숲에 들어가자마자 그만 홀딱 숲에 빠져 들었다.




숲이 보낸 초대장


이유도 알 수 없이 답답하다면

숲으로 와

말없이 가만히 너를 감싸 안아줄게


태양빛에 네 맘 검게 그을렸다면

숲으로 와

초록빛 고운 천으로 널 가려줄게


까치 발치에 떨어진 나뭇잎 소리에

놀란 너의 눈망울에 하늘이 고인다면

넌 초록으로 물들겠지

까맣게 탄 네 맘이

이제 미소로 물들 수 있겠네


산내음 가득하고

초록빛 커튼이 살랑거리는

숲으로 와


언제든지 널 기다릴게



그렇게 다시 나의 차원여행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숲이다.

사무실 문을 조용히 열고 나온 나의 발걸음이 가볍다.

'숲이 보낸 초록색 초대장은 잘 챙겼지?'


이곳에서는 무엇을 만나게 될까?

얼마나 더 단단해지고 더 사랑하게 될 것인가?

그 가을과 겨울을 함께해 주었던 개울에게 그때 하지 못한 작별인사를 하고

'그동안 고마웠어 개울아!'

숲에게 첫인사를 했다.

"안녕 숲아! 내게 손 내밀어줘서 고마워!"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저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작은 바람뿐

내 맘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애달파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나 만의 숲을 찾았으니까.


여담이지만

그 뒤로 고양이는 장장 5개월이 지나 겨우 물과 기름 같았던 사무실분위기에 섞이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시간이라는 유화제 덕분인가? 서로를 인정하며 같이 달려 나갈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거라 믿으며

부족한 고양이를 믿어 따라주시는 지점장님과 팀원분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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