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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식당 이야기

고양이 없는 고양이 식당

by 닥애미


무슨 고양이도 없는데 고양이 식당이라고?


나의 채널 '고양이 식당 이야기'의 고양이는 바로 나다.

창피한 일이라 밝힐 순 없지만 뭐라도 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그런 때가 있었다.

그때 돈을 벌 수 있다는 내용의 유튜브에서 본 대로 무작정 인스타툰을 시작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난 현실을 몰랐다.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지도 모르면서 겁도 없이 뭘 하겠다고 설쳐댔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 웃기다.

클럽스튜디오를 독학해가면서 그림을 그렸다.

나의 결과물의 수준은 처참했다.

현재 인스타에 올렸던 나의 그림들은 대부분 비공개로 설정두었다.


그 실패 가운데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딸의 낙서 속 눈이 반쯤 감긴 고양이그림.

그 고양이를 슬쩍 가져와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 시절 입던 목이 잔뜩 늘어난 티셔츠의 색을 따와

그야말로 무기력한 고양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때 내가 그린 인스타툰을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는데

너무 조회수가 나오지 않아 요리영상을 올렸다.

그런데 아주 미세하게 사람들의 반응이 느껴졌다.

댓글 하나, 좋아요 하나

그게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누군가의 흔적 같았다.

어느새 단순한 요리영상이 아닌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브런치도 병행하면서 영상도, 글도 하나씩 쌓여갔다.

나도 모르는 사이 점점 나만의 세계관이 확장되고 있었다.


유튜브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조회수 좀 올려보겠다고 "바퀴벌레 남편"이라는 어그로 썸네일을 올렸다가 장문의 악플도 받았고,

반말 영상을 보고 따라 했다가 "왜 반말하냐!"욕도 먹었다.

정성껏 녹음한 더빙에는 "오글거리고 느끼하다"는 댓글도 달렸다. 그땐, 좀 많이 슬펐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나는 웬만하면 구독을 잘 안 하는데, 당신 채널을 구독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네."

그 말에 나는 괜히 용기가 났다.

지금까지도 이 말은 내가 유튜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조회수 100회, 좋아요 3개의 영상이 대부분이지만 계속 영상을 올리는 이유는

나의 영상을 보고 구독해 주시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혹시... 구독 버튼을 실수로 누르신건 아닌지 싶다.)


그래도 지금은 조금, 나만의 색깔을 찾은 것 같다.

오글거림, 어그로, 투박함... 어쩌면 이게 나만의 감성인지도 모르겠다.

반말은, 나도 아니었다.


이 작은 채널에서 나는 큰 꿈을 꾼다.

언젠가는 내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고향에 돌아가 나만의 작업실을 만들고,

그곳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나는 직장인이자 유튜버이자 작가지망생으로 꾸준히 '고양이 식당'을 이어간다.


무기력한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냐고?

고양이는 더 이상 자신의 무기력함을 고치려 하지 않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 들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깨달았다.

'하늘색'은 참 예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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