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것이 더 두려웠다.
며칠 전 한국에 있는 누나에게 문자를 보내고 결국 술기운에 말을 다 해 버렸다. 요즘 들어 나이 먹고 무~직장 무덤덤의 날들을 보낸다는 티를 내느라, 반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연락을 최근 한 달 사이에 두 번이나 했었다. 다행히도 나이 사십 줄에 들어선 남매지간의 농담이나 대화도 그리 어색하지만은 않다.
인생 중반기를 지나면서 깨닫고 있는 사실들이 가끔은 후회로 가끔은 도전으로 다가오기에 그걸 혼자 소화하기에는 무엇인가 힘이 부침을 느끼고 있었다. 아내와 대화를 해 보아도 약간의 아쉬움이랄까? 분명 따뜻하고 도움이 되는 대화임에도 같이 자란 형제에게 듣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나 보다.
그날은 아껴둬 온 술을 혼자 홀짝 거리며, 밤에 일기를 쓰고 있다가 내 누이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문자는 곧 전화로 이어졌고 전화 대화는 이내 나도 모를 서러움으로 볻받쳐 결국 아껴 놓았던 그 술도 다 마셔 버렸다.
누이에게 말했다.
요즘 시간도 많아지고 무엇을 해봐야 할지도 몰라서 이리저리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들과, 좋은 강연이라고 올라와 있는 비디오나 책들을 보다가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자의든 아니면 타의든 그들은 살면서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실패로 오는 자책감이나 무력 감등을 밟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만큼의 의지력이 강했고 그 의지는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위기의 순간에 더 강하게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난 실패에 대한 자책감이 너무나도 무서웠고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몰랐다. 그저 실패하면 일생일대의 큰일이 나는 줄 알았기에 늘 누군가의 조언에 따라, 정해진 길을 걸으려 했고 그럭저럭 여기까지 죽지 않고 살아왔다. 늘 나는 모자라고 부족하다고 믿었기에 그것을 빨리 채우고 성공했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항상 만약을 대비하는 계획과 누군가가 정해 준 길을 가는 것이 맞았다. 어린 시절에는 중간에 조금 잘 못 되어도 다행히 물어볼 사람이 주변에 있었다. 그렇게 누군가가 있었고 그럭저럭 그들의 말이 들어맞았다. 그러나 내 주변에 대단해 보이던 그 조언자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어느새 난 혼자 걸어가고 있었고, 이젠 아무도 내게 삶의 큰 그림이나 지금 당장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해 주지 않는다. 그 모른다는 것이, 내 삶에 대한 무지가 자책감이나 무기력보다 더 두렵다.
두려움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왜 악화되었는지 불행히도 알고 있었고, 그 앎은 늘 같은 자리에만 머문 채 내 마음속의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실패들이 다시 딛고 일어날 수 없는 아픈 기억으로 남아야만 했던 이유는 내 가족과 부모님의 마음을 알기에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고 어쩌다 들어간 대학에서는 일 년 내내 큰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건 이것저것 해봐도 딱히 하고 싶은 것을 못 찾았기에 IMF 직전에 지원해 군대에 들어갔다. 입대 직후 군 입대 신청률이 3대 1이 었다는 얘기를 훈련소에서 듣고 난 운이 좋은 줄만 알았다. 하지만, 내 20대의 시간을 다 바쳐도 치료되기 힘들었던 상처를 받게 된 계기가 될 줄은 몰랐다. 거기에서는 난 눈치가 없어 어리바리하고 혼날까 봐 주눅 들어 말도 못 하는 바보에 체력은 저질인 고문관이 되어 있었다. 세상 살며 들을 욕은 그때 다 먹은 것 같고, 일부러 싸우지 않는 이상, 누군가에게 맞아도 그렇게 맞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혼날수록 욕을 먹을수록 난 더 못난이가 되어 갔다. 전투화 발에 차일 수록 난 더 무기력해져 갔다. 무엇인가를 바꿔야 할 용기도 없었고 말이라도 따뜻이 해 주던 선임들은 이내 다른 이들의 말에 넘어가 나를 같이 욕하기 시작했다. 철저히 혼자였고 보급품 조차 맘 착한 후임들이 챙겨줘야 가질 수 있었다. 난 실패할수록 무서웠고 난 무서울수록 외면하기만 했다.
다만, 그 시간들을 버티게 해 준 건 복무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 하나였다. 나 하나만 힘들면 되고 죽지만 않는다면 끝이 있는 시련은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도 나에게 어떻게 다시 일어서면 되는지 알려 주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도 알려 줄 수 없으니 혼자 일어서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치기에는 난 이미 지쳐 있었나 보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 생각하고 내가 못나서 그렇다고 자책하면 그만 이었다. 그런 내 모습은 사회에 나와 더 악화되었고 어느새, 낮아진 자존심(자존감?)을 타인에 대한 무시와 거대한 EGO로 단단히 포장한 채 그 사실을 인정조차 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지금 당신을 힘들게 하거나 참 못나 보이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의 상급자들과 주의 사람들을 다시 봐주기 바란다. 그들 중 누군가는 자신의 상처를 이기지 못해 아직 남은 자존심과 습득된 자기 방어적 행동으로, 약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발버둥 치는 어쩌면 불쌍한 사람들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들을 욕해도 된다. 그리고 그들을 멀리하자. 당신의 소중한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그 어떤 사람이나 일도 굳이 받아들이며 살기에는 삶은 너무 짧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단 한 번만이라도 연민의 눈으로 그들을 봐줄 수 있다면, 당신은 나보다 훨씬 강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누나가 그런다. 그럼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뭔가 해봐. 약간이라도 관심이 가는 것들을 취미로라도 시작해봐. 왜 그러고 있니. 괜찮아.
그리고 이내 난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내일 눈 뜨면 변기를 부여잡고 술 마신 걸 후회하겠지... 일자리를 찾아서 인터넷을 뒤적거리고 이력서를 열심히 치장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그리고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용기를 내는 방법도 인터넷을 뒤적이면 누군가가 열심히 설명 해 놓았을 것이다.
힘들었던 시간과 역경 사람을 더욱 강하게 해 준다고 한다. 정말 힘들고 어려웠다고 느끼거나 믿는 기억들에 비교하며 에이, 난 옛날에 그런 것도 버텼는데, 이 정도쯤이야...라고 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버텨나갈 수 있는 힘의 바탕과 기준이 옛 기억이라는 것에 머물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삶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과 힘들어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견디고 싶다. 그리고 아마도 난 단단해진 것이 아니라 그 동안 무뎌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날 밤 내가 전화를 끊고 서럽게 우는 걸 아무도 보지 못해서 다행이다.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몰라도 괜찮다는 것을 이젠 알 것 같다. 아무것도 몰랐으니 이젠 배울 것이다. 조금씩 내 어두운 기억에 기댄 비교가 아닌, 내가 긍정적이고 용기가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법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