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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준영 Sep 16. 2022

'승진'을 대하는 직장인의 자세

직장생활 돌아보기, 퇴사 소감문 22

  '승진'은 직장생활에 꽃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적게는 1~2번에서 많게는 5~6번의 승진을 한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일단 기쁘다. 예전에는 가족 중 누군가 승진을 하면 거하게 가족 외식을 하곤 했다. 요즘도 승진을 하면 기쁜 마음에 친구들 사이에서 승진턱을 쏘기도 한다.


승진을 하면 호칭이 바뀌고 명함도 바뀐다. 괜히 더 나눠주기도 한다. (Photo by Van Tay Media on Unsplash)


  승진을 하면 일단 호칭부터 달라진다. 다른 이들이 지금까지 와 다른 명칭으로 나를 부른다. 명함도 새로 받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새 사원증이 나오기도 한다. 대리에서 과장으로, 과장에서 부장으로 말이다. 한동안은 어색하지만 그와 동시에 뿌듯함도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급여가 오른다. 매년 연봉협상을 통해 인상되는 것과는 다르다. 또 다른 급여 인상 요인(가끔 작은 회사의 경우 급여는 오르지 않고 호칭만 바뀌는 생생내기용 승진을 시켜주기도 한다)이다. 


  물론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승진을 하면 직장이 나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달라진다. 각 조직은 직급별 R&R(Role and Responsibilities)을 다르게 설정해 둔다. 승진을 하면 그 R&R에 맞게 역할이 달라진다. 어깨 위의 부담이 그만큼 커진다. 특정 직급이 되면 부서장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경우(조직에 따라 보직은 승진으로 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도 있다. 부서장은 절대 편한 자리가 아니다.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승진은 내가 그동안 해왔던 일의 성과에 대한 보상이자 앞으로 역할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일을 잘했다는 칭찬이자 앞으로 더 잘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승진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자동 승진과 심사나 시험을 통한 승진이다. 자동 승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음 직급으로 자동으로 올라가는 승진이다. 심사나 시험을 통한 승진은 승진 조건을 갖춘 직원들을 대상으로 심사(보고서 제출, PT 발표를 하기도 한다)나 시험(영어 성적을 요구하기도 한다)을 거쳐 승진자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승진은 인터뷰나 PT를 통한 심사를 거치기도 한다. (Photo by Sebastian Herrmann on Unsplash)


  자동 승진은 보통 낮은 직급에서 이루어진다. 신입직원이 입사 후 2~5년이 지나면 회사 규정에 따라 자동으로 다음 직급으로 승진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가끔 누락되는 사람들이 나온다. 같이 동고동락한 동기들은 모두 대리가 되었는데 나 혼자 아직 사원이라면 그 좌절감은 말할 수 없다. 동기 사이를 서먹하게 만드는 몇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다. 


  회사마다 적정 인력을 관리한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같은 경우에는 직급별 TO도 정해져 있다. 상위 직급의 정원이 꽉 차 있으면 승진은 불가능하다. 인사 적체가 심해 승진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이럴 때 승진 누락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 데 승진에서 자꾸 미끄러진다면? 이직이 답일 수도 있다.


  승진은 빨리하는 게 무조건 좋은 걸까? 이 질문에 대답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대답이 달라진다. 직장에서 임원급이 목표이거나 그 이후 더 높은 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은 빠른 승진을 원한다. 승진은 성공적인 직장생활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남들과 비슷한 시기에 튀지 않게 승진하는 것을 원한다. 오히려 천천히 승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너무 일찍 승진하면 너무 어린 나이부터 막중한 책임에 짓눌릴 수도 있고 일찍 승진한 만큼 일직 회사를 나가야 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빠른 승진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Photo by Nik Shuliahin �� on Unsplash)


  나는 13년의 직장생활 동안 승진을 딱 한번 했다. 다니던 직장은 직급 체계가 3단계(원, 선임, 책임)에 자동 승진이 없는 시스템이었다. 선임 승진부터 심사와 평가를 통해 승진자를 결정한다. 나는 운이 좋게도(?) 승진은 빠른 편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승진을 했다. 그것도 오랜 기간 승진이 되지 않은 선배들이 수두룩한 상황에서(한 동안 그분들 눈치를 봐야 했다) 말이다. 


  직장생활을 더 할 것 같지 않은 데 딱 한 번의 승진이라니... 조금 아쉽다. 직장생활의 꽃인데 말이다. 아 생각해 보니 비슷한 게 있긴 하다.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면서 일병, 상병, 병장으로 세 번의 진급을 했으니 말이다. 잘 몰랐는데 나도 자동 승진도 해 봤구나.


내가 능력이 있다면 버티면 결국 승진한다. (Photo by Helena Lopes on Unsplash)


  승진에 누락되면 누구나 실망한다. 남들 다 할 때 나만 못했다면 화도 나고 짜증도 난다. 그런데 그럴 때일수록 더 냉정해져야 한다. 단지 운이 나빴을 수도, 나와 직장이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다. '더닝-크루거 효과'라는 것이 있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오히려 과소평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 모두 스스로 중간쯤은 되는 줄 안다. 그래서 가끔은 자신을 한번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승진에 누락되었다면 그 이유를 냉철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먼저 승진해서 눈치를 봐야 했던 직장 선배들은 지금 모두 승진했다. 나는 퇴사했지만 말이다. 

  버티는 게 승리다. 버티는 한 언젠가 하는 게 승진이다. 




(표지 Photo by Razvan Chisu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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