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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Beluga 고래아가씨 May 22. 2020

코로나 이후 미국, 무엇을 먹고살 것인가

<미국의 한국 여자 이렇게들 삽니다 6> 삼시세끼의 고단함이 빚어낸 그것

장보기 = 사냥


먹고살기 힘듭니다.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서비스되는 홀푸드 식료품 배송 대기를 신청한 지 3주 만에 겨우 한 번 성공했습니다. 한인 배송업체의 주력품목은 저장성 있는 캔이며 라면 따위... 기다리던 삼겹살, 상추, 풋고추는 상태가 안 좋다... 물량이 없다... 는 이유로 누락됐습니다. 주변 농장에서 농산물을 직배송해주는 업체도 대기자가 넘치니 한 달 이상 기다리랍니다. 하릴없이 장 보러 나서는데, 열대우림 아나콘다 마냥 길게 늘어선 줄에 장보기 전부터 지칩니다. 주변에 도사린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피하려면, 마스크와 장갑 같은 전투 장비도 제대로 갖춰야 합니다. 육식의 나라 미국에서 코스트코는 인당 구매 가능 육류를 팩 3개로 제한했습니다. 장보기가 사냥과 다를 바 없는 시대입니다.



     식당 = 곰,   배달앱 = 왕서방


본의 아니게 집에 갇힌 식구들이 삼식이가 됐으니  설거지하고 돌아서면 다시 밥 차릴 때입니다. 허리가 휩니다. 반복된 집안일에 말 그대로 허리 통증이 생겨 밥을 못해서 우버 잇츠로 햄버거를 배달시켰습니다. 햄버거 둘, 셰이크 하나, 고구마튀김 하나, 수수료에 배달부 팁까지 $36, 가게에 가서 직접 포장해 왔다면 $22입니다. 서비스를 이용했다면, 당연히 사용료를 내야죠. 하지만, $10짜리 햄버거 먹는데 인당 $7을 더 지불해야 하는 건 가당찮은 폭리입니다. 도어 대시, 포스트 메이츠 등 다른 배달앱들도 비슷합니다. 최근 한국에서 가맹점 수수료 인상 문제로 논란이 됐던 배달의 민족은 적어도 미국 소비자 시점에서는 양반입니다. 배달비 2-3천 원만 부담하면 되니까요. 한국 배달앱을 몰랐다면 모를까, 미국에서 배달앱으로 음식 시켜먹고 싶은 생각은 아주 사라졌습니다.


(좌)우버이츠 영수증 (우)가게에서 발행한 영수증. 우버잇츠는 가맹점과 고객 양측에 수수료를 물립니다. 이에 비하면 ‘배달의 민족'은 소비자 입장에선 더할나위 없이 좋은 앱입니다.


그래도 배달앱을 쓸 사람은 쓰겠죠. 식당 입장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손님을 못 받으니 배달앱 가맹이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인건비에 월세 대기도 벅찬데 배달앱 수수료까지 내려니 어쩔 수 없이 배달앱에선 음식값을 올립니다. 요새는 픽업하는 음식에도 포장비 등의 명목으로 비용을 물리는 식당까지 생겼습니다. 그만큼 어렵단 얘기겠죠. 어쩌면 머지않아 음식을 주문해 먹을 식당이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조사 결과, 미국 식당 네 곳 중 한 곳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계기로 폐업을 고려 중이랍니다. 저렴하고 맛있는 식당들이 멸종 위기에 몰린 북극곰 신세가 된 겁니다.  운영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드는 클라우드 키친은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코비드-19 때문에 잘 될 것 같지만, 클라우드 키친이 활발하게 운영되던 인도에서도 인력 감축을 발표한 것을 보면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을 피해 갈 수 없는 듯합니다.




     반조리식 = 가뭄 속 단비, 누군가에겐 도약판 


전쟁 중에도 아이가 태어나듯 이런 혼란 속에서도 스타트업은 설립되고 누군가는 성공합니다. 곧 50대에 접어드는 J 씨는 미국에 있는 한국 엄마의 고민을 사업 아이템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두 달 전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시작될 무렵, 그녀는 한국인이 많은 산호세 지역을 중심으로 메뉴 고민과 장보기 고충, 요리 과정, 배달앱 수수료 부담까지 한 방에 해결해주는 반조리 한식 배송을 시작했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입니다. 이제 막 시작한 작은 업체라 배달 권역이 좁고 예약제인데, 거의 모든 메뉴가 매진되는 기록을 세우고 있습니다. 투자 제의까지 받았습니다. 손질/포장된 재료에 동봉된 양념을 넣고 비비거나 가열하면 먹을 수 있는 편리함에다, 위생적으로 포장 배송되고 맛도 좋아 비교적 높은 가격에도 충분히 지불할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업계 선두주자인 블루 에이프런 Blue Apron의 경우, 개별 포장된 재료를 직접 손질해야 하기 때문에 요리를 완성하는데 보통 30-40분이 소요됩니다. 다양한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세계 각국의 음식이 마련되는데 한국인의 입맛에는 안 맞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비해 그녀는 식재료 준비 단계를 간소화하고, 무엇보다 한식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요리법으로 이 지역의 틈새시장을 잘 파고들었습니다. 블루 에이프런이 이런저런 불편함과 경영상 드러난 문제점 등으로 한 때 주식이 $2까지 떨어졌다가 팬데믹으로 다시 각광받으며 지난 두 달간 370%나 급등했는데 (5월 15일 기준), 이걸 보면 그녀의 사업 아이템이 얼마나 적절한 타이밍을 만났는지 가늠이 됩니다. 원래 중소규모 파티를 겨냥한 고급 박스 케이터링 론칭에 주력하고 있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터지자 세컨드 아이템이었던 반조리 음식을 전면에 내세운 거죠. 그녀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역시 사업을 하려면 유연한 사고는 물론, 플랜 B도 있어야 한다는 점을 새삼 깨닫습니다.


원래 그녀가 무얼 했었냐고요? 한국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했지만 그건 이미 옛날 옛적 이야기, 미국에 사는 여느 한국 여자들처럼 육아와 살림에 집중하느라 오랜 기간 경력이 단절됐습니다. 이젠 아이들이 장성하고 해야 할 일이 줄었죠. 백세 인생 시대에 어떻게 늙어갈지 고민이 시작됐고, 이 고민이 회사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준비과정은 길고 힘들었습니다. 요식업에 뛰어들기 전, 작은 카페에서 토스트 만들면서 미국 시장을 배우고, 다양한 기법을 전수받으려 전문가들을 좇아다니며 무급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상대로 작은 요리 강습을 꾸준히 열면서 인맥을 넓힌 것도 사업에 큰 밑거름이 됐습니다. 육아와 살림에 집중하면서도, 그것만 하지 않았기에 남들이 말하는 늦은 나이에도 창업이 가능했습니다. 그녀의 반조리 한식 스타트업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로 가보시길 바랍니다. 배달 지역에서 벗어나 있어 주문할 수 없을 경우, 각종 레시피가 업로드돼 있으니 요리책으로 활용하셔도 되고요.



많은 사업 아이템들이 우리가 집에서 일상으로 해오던 잡일 속에서 탄생하는데, 이를 생산활동으로 연결시키려면 관찰력과 실행력, 그리고 무엇보다 자금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한국 여자들 다수가 이곳에서 직장을 갖고 일한 경험이 없다 보니 신용도가 낮아 대출을 받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당면하는데, 이게 창업의 큰 걸림돌입니다. 아이들이 한창 클 나이에는 돈 들어갈 곳이 많으니, 저축도 쉽지 않죠. 그래서 여성들의 경우, 창업 연령이 늦어질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그녀는 그동안 소소하게 해온 경제 활동과 남편의 도움으로 창업이 가능했다고 하네요.  남편 찬스를 쓰기 힘든 분들은 미국 중소기업청에서 소수계, 여성들을 위한 대출을 고려해보시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ps. 실리콘밸리의 많은 한국 여자들에게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그녀의 반조리 음식은 사실 제겐 그림의 떡입니다. 배달 지역에서 벗어난 곳에 살거든요. 장보기도 힘들고 우버 이츠는 쓰기 싫고, 반조리 음식 배달도 못 시키면 뭐 먹고 사냐고요? 제겐 마법의 가루가 아주 많습니다. 이 가루들이 채소 고기 같은 많은 재료를 사지 않아도 국물 맛, 양념 맛을 끝내주게 내더군요. 하핫. 오늘 점심은 냉동 새우랑 냉동 가리비를 넣은 (가루) 짬뽕입니다!  


   

협찬이 아닌 고향 친구가 보내준 사랑입니다. 못 먹어본 게 많아서 다 평가할 수는 없지만, 짬뽕 시즈닝은 정말 제대로된 중국집 짬뽕맛을 내주더군요.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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