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따라 변한 아메리칸드림, 아직도 실현 가능한가요?
‘천조국’. 국방 예산이 천조 원이라는 뜻으로, 미국의 엄청난 경제력을 부러워하며 네티즌들이 붙인 별명입니다. 국방비 세계 최고, 국방력도 세계 최강일 정도니까 ‘헬조선’보다는 살기 좋겠지?라고 막연하게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별칭도 붙은 거겠죠. 그래서 한국이 세계 최고 선진국 중 하나로 발돋움한 지금도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미국 이민을 계획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메리칸드림은 무엇일까요?
1세대 아메리칸드림 ‘50년짜리 장기 프로젝트’
저희 시부모님은 1974년에 도미하셨습니다. 한국에서 직업군인을 하시던 시아버님이 누님의 초청을 받아 교사 생활을 하시던 시어머님과 함께 이민하셨습니다. 미국에 먼저 자리 잡은 가족이 있긴 했지만, 영어도 잘 안되고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어서 검색을 할 수도 없는 시절, 그 고생은 어느 정도였을지 가늠이 채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어찌어찌 다우 케미컬 (우리에겐 미국 주가 다우 지수로 알려진 바로 그 회사) 등 직장 생활을 했지만, 세월이 지나 자식이 셋으로 늘어 월급만으로는 살림 꾸리기가 버겁게 됐습니다. 가족 친지들의 돈까지 끌어모아 세탁소를 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네 부모님들이 그러셨듯, 성실함과 청결함을 무기로, 또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에게는 무료로 군복을 세탁해주는 봉사까지 하시며 동네 건너편 세탁소가 망할 때도 꿋꿋하게 버텨냅니다. 결국, 주변 사람들이 자식들의 약물 복용과 범죄 행위로 감옥을 들락날락하며 속을 썩을 때, 시부모님은 자식 셋을 건강하게 교사, 의사로 길러내고 2년여 전 칠순을 훨씬 넘겨서야 은퇴를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꿈꾸는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이룩하는데 무려 50년 가까운 세월이 걸린 겁니다.
물론, 그 시절에도 서울대나 의대 등을 졸업하고 지식 기술이 있는 분들은 당대에 아메리칸드림을 실현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60년대에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S 어르신은 화약 전문가로 각종 폭파와 터널 뚫기에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주정부에서 활약한 이 어르신은 서울 남산 외인 아파트 철거, 붕괴된 성수대교 철거를 위해 활동하기도 했죠.
그러나 전형적인 한국인 1세대 이민자들은 세탁업으로 대표되는 자영업을 기반으로 당신들의 못다 한 꿈들을 자식들을 통해서야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아메리칸드림은 한국에 계신 우리 부모님들의 꿈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http://ny.koreatimes.com/article/20170215/1040378
1.5세대 ‘IT붐 타고 20년 만에 빌리어네어로’
70-80년대 부모님을 따라온 어린 자녀들은 당신들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학업에 매진합니다. 50대 중반의 P 씨는 고등학교 때 미국에 와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명문대에 진학했고 컨설팅 회사를 거쳐 지금은 실리콘밸리에서 VC(벤처캐피털리스트)계의 큰 손으로 유명합니다. 마찬가지로 50대 중반의 D 씨는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됐다가, IT 붐을 타고 VC로 활동하며 부를 얻었습니다. (벤처캐피털리스트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는데, 한국계 미국인 가운데도 꽤 있습니다.)
높은 교육 수준과 지식 기술, 젊은 시절 경험과 어느 정도 기틀이 잡힌 종잣돈을 발판으로 2000년대 미국 IT 기업들의 파고를 잘 타고 넘어 앞 세대에서 40-50년 걸린 아메리칸드림 실현을 20-30년으로 절반이나 단축했을 뿐만 아니라 부의 규모도 전 세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미국 연예뉴스에나 볼 수 있는 수영장, 테니스 코트, 영화관이 딸린 대저택에다가 각지에 수백만 달러짜리 별장도 갖고 있습니다.
https://mnews.joins.com/article/20214065#home
2-3세대 및 Neo 1세대 ‘전문직, 스타트업’
1세대와 1.5세대들의 자제들인 2-3세대는 미국에서 태어나 교육받았기 때문에 한국식 사고방식을 가진 윗세대들과 다릅니다. 교육열이 높은 한국인 부모들 슬하에서 자랐다는 점이 다른 민족보다 월등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때문에 보통 좋은 학교에 진학해 전통적으로 안정된 직업인 의사, 변호사, 회계사가 되는 경우가 많고, 미국 주류 산업이 IT로 재편되면서 엔지니어로 많이 진출합니다. 그러나 급격히 경제가 팽창하는 시기는 지났기 때문에 시대를 잘 타고난 전 세대들처럼 부자가 되기는 힘듭니다. 지금의 변호사, 의사는 70년대에 같은 직업군의 선배들 만큼 못 법니다. 그러나 전 세계를 시장으로 하고 있는 미국의 특성상, 각 분야에서 성공하는 비율은 비좁고 경쟁률 높은 한국보다는 여전히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26/2019082600279.html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미국에서 일정기간 공부하고 경험을 쌓은 뒤, 미국 주류 업체에 취업하거나 직접 스타트업을 설립하는 한국인도 꽤 있습니다. 저는 이들을 ‘네오 1세대’로 칭합니다. 과거의 1세대와는 다른 배경을 갖고 시작도 미국 주류 산업,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서울대를 졸업한 뒤 직장생활을 하다 20대 후반에 미국 대학원에 진학한 J 씨는 미국 주류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경험을 쌓았습니다. 3년 전 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을 설립하고 손익분기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역시 40대 초반의 A 씨는 한국에서 공부했고, 구글에서 엔지니어를 하다 스타트업을 설립해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 밸리에 40명의 직원을 두고, 한국 지사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더 어린 ‘네오 1세대’도 있습니다. 인 서울 중위권 대학서 학업을 마치고, 미국서 일을 한 경험이 없어 한국계 IT업체에서 인턴으로 일을 시작한 20대 엔지니어 S 씨. 업무 강도는 센 편이지만 한국보다는 수평적인 회사 분위기에 처우도 나은 편이라고 합니다. 회사에서 인정받으면 미국 체류 비자나 영주권도 지원해줍니다. 앞선 사례들 만큼은 아니지만, 20대 초반 사회 진출 시기에 나름의 ‘아메리칸드림’은 실현했다며 만족한다고 말합니다.
할머니 말씀 틀린 거 없다. “지술(기술)을 배워야지, 지술을!”
아메리칸드림은 이처럼 세대별로 실현 기간과 방법이 변해 왔지만, 아직도 실현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여기엔 두 가지 공통된 필요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교육’과 ‘기술’입니다.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굳이 골라야 한다면 ‘기술’이 더 중요합니다. 저는 ‘문송’ (문과 출신이라 죄송합니다... 의 약자)인 데다, 미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어 미국 취업에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시간은 속절없이 가고... 머리카락은 자라니 정리는 해야겠고 그래서 미용실을 가면 쥐 파먹은 듯 잘라놓고 75불을 달라고 합니다. 게다가 팁은 별도입니다. 한국 미용사들이 발로 잘라도 그것보단 나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미용실 갈 때마다 생각합니다. 미용 기술을 배웠어야 했는데... 실리콘 밸리에 살고 있으니 주요 업체들 지나갈 때마다 생각합니다. 코딩을 하면 좋았을 텐데.. (코딩은 배웠지만, 제 문과 머리에는 도대체 입력이 잘 되지 않아서 포기했습니다.) 손재주가 좋은 분들은 이곳에서 장기를 살려 요리 스타트업을 시작하고, 수공예품 제작, 교육 사업을 작게나마 시작하기도 합니다.
할머니 말씀 틀린 거 없다. “지술(기술)을 배워야지, 지술을!”
나이가 들수록 과거 귀에 딱지 앉게 들었던 어른들 잔소리가 사실을, 삶의 진리를 담고 있었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반이민정책을 추구하는 트럼프 때문에 미국 투자 이민도 100만 불 이상으로 최소 투자금이 상향됐고, 취업 비자 따기도 무척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여러분, 미국 이민을 생각하고 계신다면 자신이 무슨 기술이 있나 먼저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만약 기술이 없다면, 미국서 공부할 의지가 있는지,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할 능력이 있는지를 먼저 고려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역만리 말 안 통하고 의지할 데 없는 곳에서 맨땅에 맨손으로 일어서는 거, 상상만 해도 너무 버겁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