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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Beluga 고래아가씨 Mar 27. 2020

영어로 자기소개, 얼마큼 해 봤니

마음먹고 보니 ‘산 넘어 산’ (미국의 한국 여자 이렇게들 삽니다 5편)

<응답하라 1994>에서 <아이엠 그라운드 자기소개 하기>중인 삼천포. 단순한 규칙인데도 실수를 연발하고 등짝 맞기 벌칙을 피할 수 없었죠.


미국 와서 새로운 사람을 대할 때면 이 게임이 떠오릅니다. 모국어를 두고 영어로 내 소개를 하면 버퍼링 걸린 듯,  <아이엠 그라운드>에서 어버버... 하던 그때와 다를 바 없습니다. 먼저 다가온 미국 사람이 몇 마디 나눠보더니 흥미가 떨어졌는지 어느새 내 앞에서 스윽 빠져나가 다른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걸 멀뚱멀뚱 바라본 것도 수차례,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내 자신을 소개하는 게 이다지도 힘든 일이라니요. 하물며 일상에서도 이럴진대, 미국 회사에서 “나 뽑아 주고 월급 주세요” 말하는 건 얼마나 부담이 큽니까.

앞선 글에서 언급한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일자리를 찾는 것도 우여곡절,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먹기조차 힘들었는데, 그다음 준비 과정의 첫걸음인 이력서/커버레터 작성과 자기소개는 ‘마운틴 애프터 마운틴’, 산너머 산처럼 다가옵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니까, 일단 걸어온 길을 연도별로 반추하기 시작하면 ‘내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하며 잘 버텨왔구나’, ‘대견하다’ 싶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다른 지원자들보다 더 적합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을까, 내 영어가 우습게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고, 금세 위축됩니다.  윤회가 있다면, 저는 다음 생은 영어권 국가에서, 아니면 아예 개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어쨌든 이번 생은 망했습니다.




랜선 모임 <자기소개 방>을 방문하다


현실적인 대안을 찾다 보니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찾는 ‘랜선 모임’이 눈에 띕니다. 이름하여 <자기소개 부트 캠프>.  이런 수업이 마련되는 걸 보니 자기소개가 어려운 사람이 적지 않구나 싶어 우선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아직 수업받을 사람들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오리엔테이션이 마련됐었는데,  일부 참석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A : 미국 생활 40년/ 재직 중
B : 10년 간 외국계 회사 다니다 도미, 미국 생활 8년간 전업주부/육아, 스타트업 인턴십 시작.
C : 미국 이민 7년, 직장 다니다 건강 문제로 재충전 중
D : 미국 이민 3년, 자선단체 파트타임 시작
E : 미국 이민 2년, 미디어 업계 출신이나 메디컬 필드로 경력 변경하려고 육아하면서 미국 학교서 2년 공부하고 최근 병원 취직


운영진이 랜선 모임에 참석한 이유를 묻자 이민 대선배 A 씨는 괜찮은 단어로, 간결하고 세련되게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고 합니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셔서 경외감이 드는 한편, 이민 40년이 되어도 맘대로 안 되는 게 영어구나 싶어 현실의 무게에 눌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육아를 하며 무려 메디컬 필드로 경력 변경에 성공한 E 씨는 한국에서부터 이민 후 해야 될 것들을 꾸준히 탐색해서 이 모임을 찾아낸 열혈 여성입니다. “한국 학생 거의 안 보이는 미국 학교도 열심히 다니면 되고, 자격증 시험도 준비해서 치면 되고”라며 그간의 뼈 깎는 노력들을 가볍게 술술 말하는 인상적인 분이었는데, 그런 분이 영어로 자기소개하고 말하는 게 어색하다며 상대방이 우습게 볼까 걱정이 된다는 겁니다. 그간 꾸준히 일을 했지만 지금은 쉬고 있다는 D 씨는 아픈 와중에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분으로, 향후 자기소개 부트 캠프까지 참석할 의지를 내보였습니다. 특이한 건, 이 모임에서 영어로 자기소개 하기 수업이 필요할 것 같은 분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산 지 오래됐거나, 미국서 일하고 있거나, 이미 일을 한 적이 있어 영어에 노출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아 하나같이 자기소개가 자연스러울 것 같은 분들밖에 없습니다.




예외 없는 파레토의 법칙


‘2 대 8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파레토 법칙.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전 세계 부의 80%를 상위 20%의 부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현실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영어 자기소개 오리엔테이션도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해당 수업이 절실한 80%가 아닌, 상위 20%가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참여한 거죠. 정보격차 때문에 몰라서 참석 못한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보도 부와 다를 바 없어서 재빠른 20%에 의해 선점될 테니까요.  다행인 건, 오리엔테이션은 하루로 끝났지만, 4주간 이뤄지는 실제 수업은 아직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2020년 3월 30일 마감) 해당 수업의 목표는 ‘2분 동안 영어로 자연스럽게 나를 소개하기’입니다.




고용주 - “자기소개 들어보면 대충 답 나옵니다”


성공가도에 올라탄 한 고용주에게 직원 선발 시 자기소개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냐고 물어봤습니다. 자기소개가 그리 신선하지 않더라도 자신감 있게 표현하는 사람에게는 가산점을 준답니다. 또, 영어를 잘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자신감보다 영어 실력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랍니다.  또한, 자기소개는 번드르르 잘했지만, 업무 능력은 엉망인 사람들도 겪어 봤기 때문에 자기소개에 큰 비중을 두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직무에 따라 자기소개에 두는 가중치가 다르긴 합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 기술이 우선인 직군의 경우, 자기소개에는 무게 중심을 두지 않는 편이며, 심지어 자기소개 없이 일을 시작한 경우도 있으니까요. 메디컬 필드에서도 행정, 보조 등의 직무에서는 지시 사항 잘 알아듣고 이행하는데 문제없으면 사실 알아듣기 힘든 발음, 억양을 갖고 있고 문법적 오류를 저질러도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제한적입니다. 포트폴리오를 제출할 수 있거나 자격증을 소지하는 등의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직무에 지원한다면, 자기소개에 큰 가중치가 부여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마케팅 직무일 경우에는 달변이면서도 인간적인 매력을 폴폴 풍기는 자기소개가 필수입니다. 자기 브랜드도 제대로 못 파는 사람에게 회사 브랜드 마케팅을 맡기지는 않을 테니까요.



너를 보여줘 - 송하예

늦었다 생각하지 마 시작하면 그만이야
그 누가 너를 막겠어, 용감하게 저질러봐
어릴 적 꿈꾸었던 세상은 현실과 너무 달라
때로는 넘어지고 아파도
you are the super , in your life
도도한 너의 방식대로
you are the super , in your life
세상에 너를 보여줘
한때는 나도 꿈 많던 소녀로 살았는데
이제는 나의 이름도 맘대로 듣지 못해
어릴 적 꿈꾸었던 세상은 현실과 너무 달라
때로는 넘어지고 아파도
you are the super , in your life
도도한 너의 방식대로
you are the super , in your life
세상에 너를 보여줘


이 외, 자기소개 건너뛰고 취업하는 방법도 있긴 합니다. 평소 관심 있는 분야의 사람들과 인간적으로 꾸준히 교류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슬쩍슬쩍 보여주다 보면, 직접 일을 제의 받거나 ‘레퍼런스’, 지인 추천을 통해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이는 언제 떨어질지 모를 감을 기다리며 감나무 아래 누워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취업을 위해서가 아니라도, 자기소개 스킬은 장착하는 것이 좋습니다. 미국에서는 각종 모임에서 새로운 사람들 만나 자기소개해야 할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일단 통성명하고 나면, “What do you do? 너 무슨 일하니?”부터 묻고 가지를 뻗어나가듯 대화하는 문화니까요. 모두들 즐겁게 네트워킹 하는 가운데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지 않으려면, 미국 사람들 구미에 맞게 자기소개를 연출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기를 권합니다.




 라떼는 말이야... 한국말로는 30초 만에도 면접관들 휘어잡았는데 말이야...  

자기소개를 가지고 씨름하다 보니, 17년 전 면접이 떠오릅니다. 사장. 임원 최종 면접에서 30분 내내 기싸움 같은 실랑이를 벌이다 마지막 30초 하고 싶은 말을 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딱 한 문장으로 말했습니다. “눈가림하지 않고, 앞가림 잘하는 김가림이 되겠습니다.” 30분간 밉상이었던 지원자가 단 5초 만에 면접관들의 얼굴을 풀리게 하고 너털웃음을 뽑아냈습니다. 면접장을 나오니 인사과 선배님이 “붙으시겠네요.” 하더군요. 붙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영어로 말하라 했다면 제 인생은 어떻게 풀렸을까요? 상상하기 싫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미국에 왔으니, 17년 전 그 한 문장만큼이나 임팩트 있는 자기소개를 만들어야만 합니다. 아직 영어로는 제 인생, 비전을 보여줄 대표 문장, 짧고 굵은 슬로건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오늘 글은 이만 써야겠습니다. <2분간 영어로 자기소개 하기> 부트 캠프 신청하러 가야 합니다. 선착순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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