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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un흔 Jun 18. 2020

08. 보험 회사, 꼭 한 번씩 싸운다더라

아프고 나니 반 보험 전문가가 되었다

 드디어 표준치료의 50%를 달성한 시점에 도달했다. 암이라는 단어도 치료도 생활에 익숙해져 버린 탓인지, 또다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외부 자극으로부터 도망치는 법을 잊었다.

 작은 자극만으로도 쉽게 분노하고, 불편한 상황이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이때 스트레스 핵폭탄을 날려 준 것이 바로 "보험"이다. 결국은 해탈하였고, 명확한 답변을 준 마지막 담당자 덕에 반 보험전문가가 된 기분까지 든다.





 명심하세요,

보험금 지급처리는 3 영업일 이내!


 10년간 유지해 온 실손의료비 보험이 있다. 발목을 삐끗하여 정형외과에 가거나,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가면 청구했던 보험이었다.

 금전적으로는 효자노릇을 했다지만, 이번 유방암 청구건으로 참으로 환자를 치졸하고 피폐한 사람으로 보이게끔 만들어주었다. 보험회사 직원들에게 두 달 동안 시달린 지금에서야 조금은 해결이 된 듯하다.


 나는 보험금이 언제 지급되는 게 맞는지 평소에 별 생각이 없었다. 뭐 알아서 주겠지 스타일. 금액도 뭐 알아서 계산했겠지 스타일.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꾸준히 보험료는 꼬박꼬박 빼먹지 않고 성실히 납부해왔으니 말이다.


 항암 치료 전, 수술과 관련하여 어마어마하게 많은 서류를 1차로 접수하였다. 진단서, 진료비 세부내역서, 수술 결과기록지 등등 팩스로는 보낼 수 없는 양이기에 직접 창구에서 접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접수를 한 지 보름 정도쯤에는 '아, 확실히 감기 같은 것과는 다르게 서류 검토가 진짜 힘든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중간에 손해사정사를 통한 처리로 지연된다는 문자를 보내주었을 때에도.

 그렇게 한 달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인 보험 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가벼운 궁금증이 생겨 진행상황을 문의하게 된다.


 담당자인 그녀의 답변은

"아... 고객님, 성형 건이신데 소견서가 있으셔서요. 그것 때문에 심사가 늦어지고 있네요."





 왓? 성형이라니?


 BRCA라는 것이 생소한 직원이 즉석에서 지연 사유를 만들어낸 이유였다. 손해사정사를 통한 처리로 인하여 지연된다는 원래의 지연사유는 기억조차 하지 못한 채 말이다.


 하고 싶어서 한 성형이 아니었다. 암으로 인한 상실감을 극복시켜줄 치료 목적의 복원술을 같은 여자인 직원이 성형으로 치부해버렸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또한 일자별, 목록별로 탭까지 붙여가며 정리한 서류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묵혀놨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거기에 보험 약관을 운운하며 건강보험 납부 서류를 보내지 않으면 청구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협박성 문자.


 한 달 만에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라는 질문에 왜 재촉하느냐 꾸짖듯이 몰아치는 직원의 대응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다음날, 화나고 속상한 것들을 정리하여 고객센터로 불만 접수를 하였다.


 "저는 당장 보험금을 달라는 게 아니에요. 진행상황이 궁금한 것인데, 그동안 타당한 이유 없이 지연하고 계셨던 거였네요."


 고객센터 접수 반나절만에 모든 보험금을 수령했다. 5만 원 정도의 지연보상금과 함께...

 고객센터에 컴플레인이 접수된 후에야 담당자가 BRCA 관련하여, 상부에 처리방법을 물었다고 한다.


 글은 담담하게 적어 내려 가지만, 실제로 일련의 과정은 굉장히 큰 에너지를 쏟게 만들었다. 보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까지 가능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당장 보험금을 수령하려는 고객으로 치부하는 보험사의 대응에 적잖이 실망했다.


 여전히 보험금은 언제 주던 상관없다. 진행되는 과정과 내 청구 건이 정확하게 검토되고 있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반복, 또 반복


 안일하게 대응하는 담당자를 신뢰할 수없어 청구건 담당자 변경을 요청했다.

 많은 서류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 라는 상부 관리자의 말에, 다음 건부터는 서류가 쌓이기 전에 접수하겠다고 응했다.


 바뀐 담당자와도 여전히 전화 한 통 나눈 적 없었다. 세상 좋아졌으니 그저 어플로 서류를 접수하고, 빠르게 청구 건의 보험금을 수령하였다.

 단 한 점의 의심 없이 알아서 해주고 있나 보다 하고 있을 때, 항암 중에도 특약조항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함께 투병 중인 요양병원 언니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항암 두 달 만에 반신반의하며 그동안 특약 건도 보험금 수령을 하고 있던 것인지 문의하게 된다. 돌아오는 담당자의 답변은


"고객님이 서류를 안 주셨네요. 종양내과 영수증만 있어서 항암 중인걸 저는 확인할 수 없고요(????). 저희는 접수된 서류로만 판단합니다. 저희가 따로 고객님께 전화를 드리는 업무를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아 나의 잘못으로 또 넘어가는구나.

 때마침 같은 보험사인 가족의 실비 청구 건도 동일한 지연 문제가 생겼고, 되돌려감기인 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추가로 접수해달라는 진료비 세부내역서는 보냈지만, 업무 처리 과정에서 의아함이 사라지질 않아 보험사에 업무 처리 매뉴얼에 대해 문의하였고, 최종적인 답변을 받게 되었다.






 보험회사의 보험금 청구건 처리 매뉴얼


1. 접수일로부터 주말, 공휴일을 제외한 3 영업일 이내 보험금 지급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


2. 지연의 사유가 있을 경우, 지연사유에 대해 문자 또는 유선으로 통보하고 이는 타당한 사유여야 한다.


3. 청구서류 중 누락된 서류가 있다면 담당자가 검토하여, 고객에게 안내하여 추가적인 서류를 접수하도록 한다.

ex. 누가 봐도 항암 중인, 종양내과 영수증이라면 진료비의 세부내역서를 첨부해주기를 고객에게 안내하여야 한다.


4. 청구건의 담당자는 고객에게 문자발송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청구건에 대하여 문제가 있거나, 설명이 필요할 시에는 유선으로 안내하는 것도 필수 업무 중 하나이다.






 추가적으로 담당자들도 사람이기에 생각 외로 누락하는 내용들이 많다. 번거롭지만 고객도 크로스체크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보험상품설명서 및 약관을 잘 익혀둘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보험 청구 금액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보험사는 환자를 상대로 피곤한 일과 스트레스를 만들어준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미리미리 아프지 않도록 건강검진을 해서 큰 병치레가 없기를 마음 다해 바랄 뿐이다.


 무턱대고 보험사만 믿고 있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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