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un흔 Jun 22. 2020

09. 어떤 어른

나는 그냥 철없는 어른이가 되기로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정의된 "어른"은 크게 5가지 의미로 나뉜다.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결혼을 한 사람.

4. 한 집안이나 마을 따위의 집단에서 나이가 많고 경륜이 많아 존경을 받는 사람.

5. 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



 2번부터 5번까지는 간단하게 나이와 문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므로, 일반적으로 많은 이가 지향하는 "좋은" 어른의 정의는 1번 중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자기 일에 "현명하게" 책임을 질 수 있는, 그리고 그 모습이 누군가에게 귀감이 되는 그런 사람.





 # episode 01. 어른들 일


20대 때까지는 어떤 이슈가 있을 때, 내 의견을 표현할 때면 가끔 듣던 말이 있다.


"어른들 일에 참견하지 말아라. 네가 나설 일이 아니다."


 아직도 이해가지 않는 말일뿐만 아니라, 언젠가 비슷한 일이 있을 때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는 말 중 하나이다.

 어른들의 일과 아이들의 일의 경계는 무엇인가. 마치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는 특유의 꼰대 마인드에서 비롯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시간이 지나 보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이 맞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때의 어른들이 모든 일을 현명하게 해결한 것은 아니다.


 브런치 작가님 중 뜻밖의 상황에 어린 조카에게서 현명한 답을 얻은 일화를 읽은 적이 있다. 나이가 들며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누군가에게 귀감이 되는 '좋은 어른'이 되고픈 마음에 표현을 억누르는 '말로만 어른'이 되어간다. 동시에 백지처럼 순수하진 않지만, 기준과 경계에 갇혀있는 꼰대는 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존경할 만한 이력과 연륜에 감탄하게 되는 윗사람을 만날 일도 많았지만, 반면에 '나는 왜 저 나이 때에 저런 멋있는 모습을 가지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아랫사람을 만난 일이 현저히 더 많았다.

 같은 나이였던 때의 '나'는 해결하지 못했던 일들을, 도전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이미 나이를 떠나 현명한 사람이구나 감탄할 수밖에 없다.  


 언제든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와 이슈는 발생하고, 그것이 소위 말하는 "어른들"에게만 일어나라는 법은 없다.

 '라떼'는 못했던 일을, '라떼'를 살고 있는 누군가가 당신보다 훨-씬 유연한 사고를 지니고 해결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 episode 02. 짜릿하다.


 치료를 시작하고 가발을 구매하는 데에 소비 요정을 풀어놓느라 제대로 된 옷 한 벌을 산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어김없이 가발 스토어에 들렀다 한 빈티지 샵에 이끌려 들어갔다. 평소 독특한 옷을 좋아하는 나를 위한 샵이었던 걸까, 취향 저격하는 옷들이 즐비했다. 한 손에 들려있는 가발 가게 쇼핑백을 보고 이모님이 말을 건네셨다.


"어머, 여기 가발 괜찮아? 나도 젊으면 가발 써보고 싶네~"


 쓸데없이 당당한 나는 상대의 당황스러움은 고려하지 않은 채, 평소와 다름없이 치료 중이라 답했다. 독특하고 화려한 옷들을 보며 신나서 함박웃음이 떠나질 않는 표정과 함께... 이모님은 그런 나에게 조심스레 혹시 어떤 치료인지 물어도 되냐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방실방실) 아 괜찮아요! 저는 유방암이고, 조금 전이돼서 항암 치료하고 있어요!"


 돌아오는 이모님의 답은 "나 방금 너무 멋있어서 짜릿해." 였다.

 옷을 보러 들어갔다 이게 무슨 일인가. 그저 옷을 보고 해맑게 웃었을 뿐이고, 내 치료 상황을 솔직하게 말했을 뿐인데 말이다. 그에 대해 이모님은 추가적으로 설명하셨다.

 본인의 딸에게 항상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런 어른으로 살고 있는 젊은이를 만나서 기분이 짜릿하다고.

 부끄럽지만 누군가에게 이런 영광스러운 평을 듣다니, 기록으로 남길 수밖에 없는 날이었다. 자랑 아닌 자랑이랄까!


 그녀에게 비친 나의 모습은 어느 정도 오해는 있었겠지만 아마도 당당하고 밝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가게를 나설 때에 이모님은 꼭 옷 때문이 아니라, 가게 앞을 지날 일이 있다면 언제든 들러서 커피 한 잔이라도 하고 가 달라고 하셨다. 나의 안부가 궁금할 것 같다고.

 정작 엄마에게 이 일화를 전하니, 무뚝뚝하고 시크한 엄마의 답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보나 마나 영업일 거야. 그런데 옷은 예쁘네"


 치료 전에는 엄마의 이런 시크함도 은연중에 스트레스였는데, 지금은 표현에 서투른 엄마를 받아들였다. 여전히 내가 더 표현하면 되고, 가끔은 엄마의 이런 퉁명스러운 표현이 귀엽기도 하다.


게다가 영업이면 또 뭐 어때, 이렇게 기분 좋은 말이 어디에 있는가.

오히려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준 그녀는 굉장히 호탕하고 멋진 어른이었다. 꼰대와는 거리가 먼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도 귀를 기울여 줄 수 있는, 누군가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복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딸에게는 어떤 엄마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 episode 03. 어떤 어른이 되고 싶어?


 나는 철들고 싶지 않다.

 그래서 살아가는 동안은 사람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배우는 철없는 어른이가 되고자 한다.

 나는 누군가의 귀감이 되고 싶은 욕심도 없고, 나의 방식을 강요하고 싶을 만큼 나 스스로가 항상 옳다고 자신할 수 없다. 드라마 제목처럼 '이번 생은 처음이라', 내 경험과 내 세상 속에서만 해답을 찾을 뿐이다.

 

 아직 꼰대로 가는 열차에 탑승하기 전이라면, 일반적인 어른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말자.

 결국 서류상 어른이라 칭할 수 있는 당신도 처음 직면하는 일 앞에서는 첫걸음마를 뗄 때처럼 두려움을 안고 있다. 사회적인 책임이 늘어갈수록, 이 두려움을 숨기기 급급하여 '나는 어른이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한걸음 씩 떼는 것이다.

 결국 어떠한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고 말고는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일 뿐, 이것을 좋은 어른의 기준으로 삼기엔 부족하다.



 나에게 '좋은 어른'의 기준은 따뜻함이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좋은 어른'에게서 시 한 편을 선물로 받았다. 마음속에 고래를 키우는 나를 응원하고 기록하는 자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말과 함께 온기를 전달받았다. 그리고 그 잔잔한 따뜻함은 생각보다 오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좋은 어른은 곧 따뜻한 잔상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고래를 위하여"  < 정호승 >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올라

별을 바라본다

나도 가끔 내 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

밤하늘의 별들을 바다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08. 보험 회사, 꼭 한 번씩 싸운다더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