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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un흔 Jan 17. 2023

17. 두 번째 작별의 이야기

무너져버린 울타리

23년 1월 14일, 마주한 작별

4박 5일간의 제주 출장에서 돌아와 지친 몸으로 잠이 들었는데, 웬일인지 새벽 4시에 눈이 떠졌습니다.


뒤척이는 중에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바로 알았습니다. 무슨 정신인지 검은 옷을 챙겨 입고, 시속도 신경 안 쓰고 달려 도착하고 보니 한 시간 반 걸리던 거리가 40분이면 오더라고요.


그리고 아직 온기가 남아 있던 당신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할머니를 보내드릴 때와 다르게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무너져가는 세상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지나온 세월 때문인가, 예견된 시간이 차오른 시점이어서였을까..

마지막 할아버지의 손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던 덕인가. 무슨 이유 인지 눈물이 말라있었습니다.


‘23년 1월 15일, 작별을 받아들이다.

제일 아끼던 손녀딸 배웅받으려 꾹꾹 참아내다, 출장에서 돌아온 다음날 잠드시듯 떠나신 할아버지. 마지막 온기라도 느끼라는 듯 그렇게 잠드시듯..

식어가는 당신의 손을 계속 잡고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저 가시는 길 외롭지 않으셨으면... 그곳에서는 하고픈 말 다 하고 사셨으면..


슬프지만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참으로 깊은 사랑을 듬뿍 주신 두 분, 그분들의 손녀딸이라는 것이 내 생에 가장 큰 행운이었구나.

그 어떤 복보다도 가장 값진 것이었구나.


그 깊은 사랑 누가 가늠할 수 있을까요.

사랑한다 사랑한다 다독이며 읊조리시던 두 분의 목소리. 아직 귓가에 남아 마음이 시리기도 하고, 마치 소풍 가신 것처럼 금방이라도 다시 사랑한다 속삭여 주실 것만 같습니다.



‘23년 1월 16일, 작별의 인사

나에게 고향은 곧 어머니의 고향인가 봅니다.

할아버지의 뒤를 따르는 이 길이 이 생에 마지막이라는 것이 체감되는 새벽이었습니다.


일주일 전 할아버지 전화를 받을걸.. 부재중 전화가 와있을 때 다시 전화 걸어 인사라도 드릴걸...

”후회하는 일은 만들지 말자 “ 는 신념이 깨지는 유일한 순간이 되었던 날입니다.


전화를 드리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고맙다 하시던 그 목소리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립니다.


가장 넓고 깊은 분들의 손녀로서 자라온 삶은 저에겐 과분할 만큼 영광스러운 일이었어요. 생에 가장 큰 행운이었습니다.

존경합니다,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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