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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i aber Einsam May 27. 2020

"변호사님, 특별히 잘 좀 부탁드립니다." "왜요?"

최근,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일단 목디스크가 심해져서 입원을 하고 mri(대문자로 쓰자니 너무 무서워서 소문자로 써본다) 및 오만 검사를 다 마치고 나서, 의사선생님께서 "이정도로 심하면 시술을 해야합니다. 시술은 고주파를 쬐어서 쪼그라들게....." 그 말 이후는 들리지 않았다.

문과생의 머리로 이해하기로는 나의 어딘가를 대략 오징어를 굽는 것처럼 열로 쪼그라뜨린다는 것 같았다.


듣기만 해도 꽥 스러워서 일단은 도수치료와 물리치료,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데, 재활치료는 하다가 잠이 들것처럼 지루해서 그건 스킵하고 싶은 심정이다. 암튼 디스크가 심한 상황에서 진행하는 사건은 많은데 차마 브런치에 글까지 쓸 여유가 없어서 오래 쉬게되었다. 이젠 국선변호를 그만 두었으니 좀 한가해질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어려운 말도 있지 않은가.

국선하다 디스크 심해져서 오징어처럼 구워진다면 큰일아닌가.   


이런 일이 있던 중에 디스크를 가속화시키는 열폭 사건도 있었다.  

형사재판을 하다 "세상의 모든 공손을 다 끌어모아" 검사에게 전화를 했는데 듣게된 답변과 그 태도에 열폭을 해서, 평소의 나와 다르게 "네 알겠습니다."라고 곱게 끊고는(평소에는 바로 화를 낸다. 오해는 금물이다), 작전을 치밀하게 짠 후 다음날 법정에서 벌떡 일어나 준비된 긴긴 대사를 읊으며 법정드라마를 찍어서 검사가 뒷목을 부여잡게 하고 판사가 뭔가 말리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으나 눈치 못 챈 척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피고인의 누나는 뭐가 문제인지도 잘 모르면서 거의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이 사건은 언젠가 썰을 풀 날이 있을 것이다).

이 사건은 국선사건이었다. 남들은 국선이면 살살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대부분은 엄청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나같이 승질머리 더러운 변호사의 경우는 꽂히는 사건은 사선사건보다 더 열심히 한다. 큰일이다.


위 사건과 다르게, 변호인의 눈으로 봐도 인정사정 봐주기 싫고 국선변호인으로서 기본적인 변호 업무만 해주고 싶은 경우가 있다.  


몇 달 전의 일이다. 대략 15년(정확치 않다) 만에 필리핀에서 붙잡혀 들어온 사기 피의자를 영장실질심사에서 만났다. 굴지의 회사를 다니던 사람이었는데, 도박과 주식등으로 돈을 날리고 회사동료, 후배들로부터 수 억을 빌리고는 갚지못하고 해외로 도피한 사람이었다. 그 중 가장 큰 피해자는 결혼식 축의금 전부를 포함 약 2억원을 빌려주고 못 받았다. 그러던중 어찌어찌 필리핀서 붙잡혀서 15여년 만에 한국으로 온 것이다.


영장실질심사를 하기 직전 그는 말했다.

"변호사님 특별히 잘 좀 부탁드립니다."

"왜요?"


마음씨 고운 일반적인 변호사라면, "네" 가 모범답안이었을 것이다.

피의자는 놀라는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답이었을것이다. 근데, 또 말하는 것이다.

"변호사님 특별히 잘 좀 부탁드립니다."

"특별히 잘 봐드릴 사정이 없는데 다른 피의자분들과 똑같이 대해드리면 될 것 같은데요."

그래. 나 못됫다.

당연히 구속되었고, 구치소에서 만났다.

"저 벌금이나 집행유예로 나갈 수 있겠죠?" 

"네? 합의보실 건가요? "

"저 돈은 없습니다. 근데 제일 많이 빌려준 피해자랑은 합의를 봤습니다."

"그 오랜 세월 필리핀에서 돈 한 푼 못 모았는데 어떻게 합의 보셨어요?"

"제가 다시 필리핀 돌아가면 월 100만원 씩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이쯤되면 정말 그 피해자를 쫒아가 말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몇 억의 피해가 한푼도 피해회복이 안되었으니 실형이 나올 것 같습니다." 라고 했더니,


"저 꼭 집유로 빼주십시오. 변호사님 특별히 잘 좀 부탁드립니다."

아 무슨 돌림노래 내지는 주술을 읊는 것 같았다.

"왜요? (나도 돌림노래나 주술에는 일가견이 있다)

제가 특별히 OOO씨를 위해 뭔가를 더 해드려야하는 이유가 있나요? 피해회복도 안 되시는 거고, 사실 그 합의라는 것도 본인도 아시겠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약속을 하시고 받은 거자나요. 제가 변호인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그 다음날 사선변호사를 선임했다.

15년 이상 빌려간 남의 돈을 갚을 돈은 한푼도 없지만, 변호사 선임할 돈은 있었다. 사선변호사에게 "특별히 잘" 부탁을 하셨을 거라 믿는다. 사선변호사님께서도 많은 돈을 받고 "특별히 친절히" 대해 드렸을 것이나 형량은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사건을 대할때, 화도 내지 말고 감정이입도 하지말고 객관적으로 대해야 한다. 안다. 근데 나는 쉽지가 않더라.

아뭏튼 작년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1년간 100건이 넘는 영장실질심사에 참여해서 영장이 발부된 사건 중(구속) 사선을 선임하지 않은 많은 형사 사건들을 했고, 일부는 아직도 재판이 진행중이다.

나에게 많은 경험과 감정을 겪게 했던 국선변호. 마지막 순간에는 병도 얻었지만 ㅎㅎ


좋은 추억으로 남길 바란다.

내가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열심히 변호해줬던 피고인들에게도, 떼쓰고 난리쳐서 형량을 포기하고 원하는 대로 다 해드렸던 피고인들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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