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도 스산한 것이 스산한 얘기를 하기에 적합한 것 같다.
재작년 여름의 일이었다.
어느 구청의 민원센터 무료상담일을 하고 있었는데 내 당번날이었다(민원인은 무료이지만 우리는 약5만 원 정도의 교통비 정도를 받고 하는 일이다). 오전 2시간 또는 오후 3시간의 상담을 하는 것인데, 민원인들의 상담토픽 정도가 적힌 자료만 미리 받고 작은 박스 같은 곳에 들어앉아 인당 30분 정도의 상담을 하는 형식이다.
빼빼마르고 까맣게 탄, 키 작은 할머니가 한 분 들어오시더니, 이혼 사건 항소를 하겠다는 것이다.
1심에서 이미 "이혼하라."는 판결을 받으신 분이었는데, 본인은 할아버지와 이혼을 못하겠다는 것이다. 사정을 들어보니 젊은 시절부터 할머니가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모아 집을 한채 장만했는데 명의는 할아버지 이름으로 되어있고, 할아버지가 바람이 나서 동네에서 다른 할머니와 살림을 차렸다는 것이다.
"아이고 선생님, 저는 집도 줄수 없고, 할아버지가 동네에서 다른 할망구 밥해주면서 같이 사는 꼴도 못보겠어요. 난 아직도 남의 집 일을 다니면서 돈을 벌어야하는데 내가 번 돈으로 그렇게 사는 걸 못 보겠어요."
라며 이혼 항소심을 맡기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반드시 항소심에서 이겨야 해요. 약속해 주세요." 라는 것이다. 난감했다.
게다가 소송비용은 가장 낮은 금액으로 해달라고 해서 그러기로 했는데, 부가가치세 만큼 깍아주고 현금으로 받고 세금신고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 그건 좀 곤란하다고 실랑이를 하는 와중에
울며불며 사정얘기를 하던 할머니가, 탁자 위로 배낭가방을 올리더니
"난 이렇게 칼을 가지고 다녀요, 선생님"
라면서 배낭가방에서 "식칼"을 꺼내 드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그것은 "식칼"이었다.
빼빼마르고 작은 할머니가 울다말고 배낭가방에서 신문지로 싼것도 아니고, 칼집도 없는, 식칼을 꺼내들었다. 그 크기는 중도 이상의 칼이었다. 과도가 아니었다.
내 눈을 의심했으나, 아무리 보아도 식칼이 맞았고,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상황에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말을 했다. 내가 그 순간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할머니는 식칼을 꺼내어 제대로 들었고 나를 향해 위협을 한 것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들고 있었다.
순간 혼자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다.
그 상담부스는 아주 작아서, 그 탁자의 크기는 초등학교 때 책상을 두개 가로로 붙여놓은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내 뒤쪽은 벽이고, 드나드는 문은 그 할머니 뒤쪽에 있었다.
내가 그 부스에서 나가려면 할머니를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했고, 소리를 지른다면 난 이미 처리된 상황일 것이었다. 힘으로 제압을 하자면 작고 마른 할머니를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겠지만 상대는 식칼을 든 사람이었고, 부스는 너무 좁고 밀폐되어 밖에서는 우리가 보이지 않았다.
'나 이렇게 무료상담해주다 생을 마감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아무 말이나 떠들어서 할머니를 진정시켜야 한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할머니가 칼을 다시 배낭가방에 집어넣었고 나는 이제 다음 사람이 올 차례니까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고, 제가 100% 승소한다는 약속을 못드리겠으니 능력있는 변호사를 구하시라는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나보니 할머니는 민원센터에서 다른 변호사와의 상담을 다시 잡고 있었다. 나는 그날 상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구청 공무원에게 전화를 해서, 사정을 말했다. 그 할머니가 다른 변호사와 상담을 받는 것을 막아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위 무료상담은 여자변호사들만이 진행하는 것이어서, 다른 여자변호사도 너무 위험할 것 같았다).
그러나 어찌된 것인지 결국 그 할머니에게는 상담한 변호사가 말하더라는 내용까지 다 전달이 되었고, 상담부스에 대한 위험도를 몇 번이나 말했지만 개선되지 않아 연말에 있었던 간담회까지 가서 건의했으나 사실.....부스는 여전히 위험하다.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개선된 박스는 창이 투명해서 다 보여요" 라는데, 다시 가 앉아본 부스는 [칼을 휘두르면 여전히 도망갈 문은 민원인 뒤에 있고, 칼에 맞고 피가 철철 흐르면 확인할 수는 있는] 상황으로 개선되어 있었다. 엄청난 개선이라 두 번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
그날 저녁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와, 체해서 길바닥에서 급토 할뻔 했다.
아마 나도 모르게 엄청나게 긴장을 했었던 것 같다. 그 상황에서 바로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칼을 꺼내드는 사람앞에서는 그 상대가 할머니어도 너무 위협적인 것이다. 그것도 밀폐된 공간이라면 말이다.
내 얘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은 모두들 "그러다 죽으면 개죽음" 이라면서 당장 그만두라고 했다.
무료 변호, 무료 상담. 이와중에 녹음을 하는 사람도 있고, 본인에게 할애된 시간 이상으로 눌러앉아 오만 얘기를 다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은 처음 든 사건이었다. 그 이후로 대면해서 하는 이런식의 무료상담은 하고 싶지 않아졌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너무나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법원이나 검찰청을 드나들때는 가방을 투시하여 검사하는 과정을 거친다. 상담하는 분들은 최소한 가방이라도 두고 들어오시도록 해달라고 하는데도 그 구청을 그런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본인이 그런 일을 겪었어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이해할 수가 없다.
무료 상담. 가끔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 이런 무서운 상황은 두번다시 겪고 싶지 않다.
난 그 할머니가 했던 말이 자꾸 떠오른다. "난 이 나이에도 남의 집에서 일을 해요."
아마도 일용직 도우미일을 한다는 것인데, 그 집의 사모님들은 그 할머니가 배낭가방에 "그 무엇에도 싸여있지도 않은 식칼"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을 알까?
난 이날 이후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져서 빼빼마른 할머니도 유심히 살피게 되었다. 이순신 장군처럼 훌륭한 업적을 남기고 죽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날 무료 상담을 하다 개죽음을 당한 변호사로는 기억되고 싶지 않다.
비오는데, 갑자기 떠올려보니 여전히 섬뜩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