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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직 Nov 25. 2023

욕망이여, 입을 벌려라!

우리는 비열한 거리에 서 있다. 그러나 당신은 동의하지 않는다.


무슨 헛소리! 하루 세 끼 빠짐없이 챙겨 먹고, 아침이면 가야 할 일터가 있으며, 겨울 노을이 잠깐 사이 퍼질 즈음 편히 쉴 집으로 향하는 걸음도 흐르는 시간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는데, 비열한 거리라니! <네 놈은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고 떠벌리는 거냐!> 호통칠 수도 있다. 눈알까지 험상궂게 굴려 가며.


쩝, 그렇게 믿어 일 년 넘도록 살아왔다면 앞으로도 신념이 꺾일 가능성은 없다. 우리가 당신의 신념에 똥칠해도 귓등으로 넘기지 않는가. 당신은 고집이 세서 외통수로 나간다. 사과할 줄 모른다.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뒤로 물러서서 <그래, 네 똥 굵다!> 속으로 자위하는 넉넉함도 다. 오히려 두 눈 부릅뜨고 어퍼컷을 날리며 제멋에 취해 우리를 굴복시킨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환경을 엉망으로 뒤집어엎는다.


날마다 이틀 치의 노동을 끝낸 뒤 집으로 가는 막차 차창에 텅 빈 머리통을 기대고, 누군가 게워놓은 구토물을 덮은 얼룩진 티슈를 보면서 우리는 무슨 생각 했을까? 월말이면 어김없이 우편함에 차곡차곡 쌓여 급여통장을 비워내는 고지서가 두려웠던 걸까? 혹은 여전히 분탕질하는 당신을 원망했을까? 아니면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뿐이라, 일상의 무거운 노동이 짓누르는 어깨가 버거워 흐르는 눈물을 남몰래 훔쳤을까?


우리는 집으로 뻗은 좁은 골목길에 쌓인 땅거미를 꾸역꾸역 헤쳐가며 걸을 때마다 내일이 얼마나 두려웠나?


나를 포함해 우리들은 그런 하루를 가까스로 등 뒤로 넘기며 산다. 어쩌면 아주 잠깐씩 웃는 일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소한 기쁨조차 어김없이 슬픔으로 지워진다. 당신은 아니지만, 우리는 비열한 거리에 서 있기 때문이다. 무자년 명박산성도 그래서, 경자년 촛불 광장도 그래서 있지 않았나. 하물며 오늘이라고 다를까.


그러니, 욕망이여, 입을 벌려라! 비열한 거리에서 당신을 향해 불끈 주먹 쥔 손을 하늘 높이 쳐드는 것이 어찌 당당하지 않겠나?


동학년 곰나루의 아우성처럼 욕망이여, 입을 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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