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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Feb 02. 2024

#18 인종차별 아님

1월 마지막 주 짧은 글

인종차별 아님

밴드에서 약간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내가 혼자 동양인이라서?'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 9월부터 같이 일주일에도 몇 번씩 합주를 했고 나는 11월에서야 교수님이 좀 도와줄 수 있겠냐고 메일 주셔서 합류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학사 3년 동안 서로 겹치는 수업도 있었을 거다. 나 혼자 '동양인'이라서가 아니라, 나 혼자 석사생이고 뒤늦게 합류했기 때문인 거다. 급하게 친해질 필요 있나. 지금도 충분하다.



한국 영화 상영회

케이팝 커뮤니티에서 진행된 한국 영화 무료 상영회에 한국인은 설마 진짜로 나 혼자 올 줄이야. 가끔은 다들 나와 웃는 포인트도, 우는 포인트도 달랐다. 대~한민국 떼창이 시작되자 나는 무슨 고국 떠난 지 40년인 사람처럼 끅끅 울기 시작했다. "우리가 대한민국 대푠데!" 하는 대사를 한국 영화관에서 들었으면 '뭐 이런 뻔한 신파극이 다 있어'라며 속으로 욕 했을 텐데 여기서는 욕하면서도 눈물이 계속 났다. 살다 살다 영화에서 애국가 한 소절 듣고 울기도 하고 난리다. 난 진짜 한국 별로 안 가고 싶다니까.


한국 영화 발전을 위해 든 생각이 있다면, 한국 영화를 한국인만 알아들을 수 있게 만드면 '기생충' 같은 영화가 나오기 어렵다. 사투리로 웃기고, '어머님은 축구공이 싫다고 하셨어'와 같이 한국인만 알아듣는 대사로 웃기면 나 밖에 안 웃는다.



라면 뚜껑

다 같이 신라면 먹는데 혼자 자연스럽게 뚜껑 반으로 두 번 접어서 그릇으로 쓰는 모습에 나도 웃음이 났다. '얘네들 컵라면 먹을 줄 모르는군' 하며 갑자기 한국인 자부심이라도 들었는지 옆 친구한테 알려줬더니 옆옆, 옆옆옆까지 다 따라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2학기 시작

정신 안 차리면 그냥 바로 졸업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걸 2학기 첫째 주에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처음 와서는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보이는 대로 다 나가서 하더니, 그런 모험심도 점점 줄었었다. 점차 익숙한 데만 가고, 익숙한 사람 위주로 만나게 되었다. 11월 초까지만 해도 일주일이 이주처럼, 한 달이 두 달처럼 느껴졌는데 12월부터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갔다. 나이가 들면 세월이 빠르게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랬다.


졸업 공연은 9월이지만, 강의는 6월이면 끝난다. 익숙한 대로 살면 금방 봄 되고, 여름 될 거다. 영국에 처음 도착한 것처럼 2학기 시작을 해보겠다. 가자 초심으로.



귀여워...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는데 정말 너무 귀엽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보다 어리다고 해서 다 귀엽지 않다. 그런데 이 친구는 옷도 귀엽고, 머리핀도 귀엽고, 하는 말도 귀엽고, 그냥 다 귀엽다. 이 친구를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 친구는 영어가 조금 부족해서 내가 중국말로 전부 얘기하는 게 의사소통이 더 편하다. 최근 들어 영어가 부족한 중국인 친구들은 친한 친구 되기 어렵다고 찡찡댔었는데 상관없을 정도로 그냥 너무 귀엽다. 이 친구가 애인이 생긴다면 정말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어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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