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힘을 과시하는 도시
권력은 힘을 과시하고자 한다. 고대 도시의 권력 표출은 왕이 살아서 거주하는 왕궁과 왕이 죽어서 거주하는 무덤이다. 바빌론의 대표적인 초고층 건축물이며 공중정원으로 유명한 지구라트는 왕비를 위해 건축되었다고 한다. 이 거대한 토목사업은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표적인 고대 건축물로 남아있다. 왕이 사후에 거주하는 무덤은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대표적이다. 신의 대리자로 이집트 왕은 살아서보다 죽은 후에 더 강력한 권력의지를 과시함으로 신과 동격이 되고자 했다.
지구라트는 중동 메소포타미야 지역에서 건설된 왕이 거주하는 초고층 궁전도시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지구라트가 존재했던 것으로 파악되며 신전과 왕궁, 주거의 기능까지 복합된 복합건축물 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수메르의 도시는 이미 수만명의 주민이 집중되어 있었고, 도시는 성벽이나 해자로 둘러싸여 외부의 적으로부터 방어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지구라트는 일반 거주지와 달리 높이 솟아있고 구별되어 도시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이집트 피라미드는 지구라트와 달리 건축으로써 주거의 기능은 없지만 죽은 권력의 역설적 위대함을 표현하는 절대권력의 궁극적 상징이다. 권력자 빌런이 주변 도시와 지역을 석권하고, 권력의 최고 정점에 달했을 때에 그는 다음에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바로 죽어서도 그 권력의 영속성을 표현함으로 피지배자들에 의해 경외받는 것이다. 신이 되고자 함이다.
영화 ‘십계’를 보면 최고 권력자 파라오가 모세와 람세스에게 차기 권력을 두고 각자 미션을 부여한다. 람세스에게는 유대인 반란의 수괴를 잡으라 하고 모세에게는 부진한 피라미드 건설을 재촉한다. 당연히 능력있는 모세는 피라미드 건설을 차질없이 진행시켜 파라오에게 큰 기쁨을 주게된다. 이미 모든 것을 가진 파라오는 자신이 죽어서 들어갈 무덤과 자신의 권력을 이을 후계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진정한 권력자의 모습이다. 태초 최초의 빌런이 그랬듯이 신이 될 수 없지만, 신이 되고자 했으나 에덴의 동쪽으로 쫒겨난 빌런은 죽어 피라미드에 들어감으로 진정한 신이 되고자 했다. 그들은 결국 신이 되지 못했지만 피라미드라는 위대한 유산을 남김으로 인류의 기억에 남았다.
피라미드가 오랜기간 위대한 건축물로 남은 것은 베일에 쌓인 축조과정 뿐만 아니라 건축물이 가진 건축적 기능이 단순하고 영속적이며, 단순한 조형으로 미적으로 완전무결하기 때문이다. 피라미드의 이미지는 강한 권력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현대에서도 많이 차용되고 있다. 지구라트보다 피라미드가 이미지 상징성이 큰 이유는 조형적 단순미와 신이 되길 염원했던 빌런의 영원한 집으로써 경외감이 주는 강렬함일 것이다.
영화 ‘블레이드러너2049’에서 주인공 리플리컨트 ‘K’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 보고하는 정부기관의 건축형태가 피라미드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SF 영화의 어둔운 미래도시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이 피라미드임을 알 수 있다. 도시 중심에 도시를 통제하고 감시하는 정부를 상징하는 피라미드 형태의 건축물로 영화는 암울한 미래도시의 억눌린 이미지를 표현한다. 미래도시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어두운 권력의 강력한 통제가 표현되는 영화가 아주 많다.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이 만든 새로운 인간종 ‘리플리컨트’와 노예화를 통한 폭력적 통제, 차별을 보여주고 있다. 1편은 인간의 악행과 고통을 리플리컨트에게 전가함으로 스스로 각성하게 되는 리플리컨트의 저항을 보여준다면, 블레이드러너 2049는 통제에서 벗어난 리플리컨트를 추적하는 임무를 리플리컨트 ‘K’에게 부여함으로써 피지배인을 피지배인인 지배하는 ‘Rule & Divide’ 기법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미래도시의 강력한 힘을 가진 정부와 자본은 피라미드라는 상징성을 표현함으로써 힘에 대한 위압감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