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더불어민주당은 대한민국 21대 총선에서 176석이라는 압도적인 의석수를 차지하며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정부와 여당은 국정 운영의 동력을 얻음과 동시에 정책 실패에 대한 핑계를 댈 수 없게 되었다. 선거에서 국민의 투표로 정당 간의 균형이 깨졌다.
‘균형’의 사전적 정의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고른 상태’이다. 많은 사람이 균형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상황이 불균형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불균형은 대부분 올바르지 않다. 출신 배경의 불균형은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의 용어를 만들어 내고, 힘의 불균형은 학원물 웹툰에서 자주 볼 수 있듯이 학교폭력으로 나타난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프리츠 하이더(F. Heider)는 ‘불균형 상태는 긴장을 유발하고 그것이 균형으로 복귀하려는 힘을 가져온다’는 ‘균형이론’을 주장했다. 불균형은 불합리하지만, 하이더가 말한 대로 균형을 추구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여의주> 운, 김한석
불균형, 사건 전개의 동력
<여의주>는 흙수저 출신 해직 노동자 장유진이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하는 이야기로, 주인공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고향으로 내려온다. 엄마에게 취업․결혼 스트레스를 받고 술김에 대성시 국회의원 출마를 선언한다. 그렇지 않아도 인지도가 바닥인데 선거 상대는 재벌 2세이자 전직 아나운서이며 심지어 미모까지 갖춘 중학교 동창 배춘금, 천만 관객 영화배우 출신 현역의원 차필웅이다. 주인공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우여곡절 끝에 천또(천재또라이) ‘한태환’을 참모로 영입하여 선거에 나선다.
배춘금과 차필웅 사이에 장유진이 끼어들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스펙, 재력, 인지도, 조직력에서 모두 열세이다. 당선이 전혀 불가능한 상황, 즉 불균형한 상황에서 균형을 향해 나아가는 장치는 바로 ‘한태환’이다. 한태환의 등장으로 스토리는 급속도로 전개된다.
웹툰<여의주>가 설정한 세계관에서 한태환의 능력은 일종의 ‘치트키’다. 한번 보기만 해도 뭐든지 기억하는 능력, 수능 전국 1등, 카지노에서 보여주는 게임 능력, 지지율 열세의 대선후보 ‘김석’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주인공 장유진은 자신이 직접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나서지만 능력 부족이다. 독자 역시 고구마를 100개나 먹은 듯 답답하다. 그러나 현실과 목표의 격차가 클수록 반전은 커진다. 이 상황을 돌파할 비장의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불균형은 변화와 사건 전개의 동력이며 희열을 경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한태환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연출 기법
‘드러난 이야기 뒤에 숨겨진 이야기’라는 이중적인 전개 구조는 정치물에서 많이 사용하는 서사 전개 방식이다. <삼국지>에서 제갈량의, <랑야방>에서 매장소의 책략이 그렇듯이, 드러난 이야기에서 갈등이 최고점에 이르는 순간 숨겨진 이야기(책략)가 밝혀지며 반전을 일으킨다. <여의주>는 국회의원 당선이라는 큰 서사 안에서 여러 개의 작은 에피소드가 진행되는데 ‘어려움에 직면→장유진과 한태환의 가치관 충돌→가치관의 합의(대체로 장유진이 한태환을 따르지만, 한태환도 장유진의 선택을 존중한다)→한태환의 전략 성취→지지율 상승’의 구조가 반복된다. 독자에게는 숨겨진 이야기를 추측할 만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전략이 성취되는 순간 극적인 반전을 느낄 수 있다.
거기에 더해 몰입할 수 있는 장치로 ‘효과음’과 ‘가로컷’을 사용했다. 거의 매화에 등장하는 ‘두둥!, 고오오…, 쿠웅!!’ 같은 효과음은 극도의 긴장감, 극적인 반전, 날카로운 공격 등의 장면에서 사용되었다. <여의주>에서는 종종 가로컷(대부분 롱쇼트)이 세로로 길게 세워져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기대하지 않았던 만선마을 어르신들 덕분에 300명의 지지자가 기적적으로 모이는 장면이라든지, 후보자 간의 긴장감 넘치는 심리 대결과 같은 장면에 효과음이 함께 쓰였다.
세로스크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컷 아래 공간을 확장한 연출은 한태환의 능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장유진과 배춘금의 후보 단일화 협의(시즌2 64화)에서 배춘금의 대리인 여일여는 자신의 종이컵 안의 빨간색 물을 바닥에 따르고 바닥은 배춘금을 상징하는 빨간색으로 덮이면서 장유진을 압도하는 듯 보인다. 한태환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도 컵에 있는 노란색 물을 바닥에 따른다. 빨간색이 전체를 덮은 바닥에서 노란색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세로스크롤 아래의 무한한 공간을 가득 채운 노란색이 빨간색을 압도하며 장유진의 승리를 암시한다.
불균형한 이분법적 설정
한태환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 중 불균형한 이분법적 설정은 다소 아쉽다. 구조주의 측면에서 양자 대립의 구도는 갈등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흥미를 일으키지만 동시에 독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한계를 갖는다. 장유진은 ‘선(善)’, 상대 후보 배춘금과 차필웅은 ‘악(惡)’으로 구분되었다. 선거운동을 시작하면서 기존 정치인들에게 홀대받았던 낙후된 만선마을 주민들을 찾아가거나, 선거운동원 회식 제공과 같이 기존 정치인들이 선거법을 넘나들며 해왔던 관례를 따르지 않는 등 장유진은 자신의 정의로운 가치관에 충실하다. 지브리스튜디오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어떤 상황을 만났을 때 자신의 가치관을 뚜렷하게 표현하는 것과 비슷하다.
반면 배춘금은 TV나 드라마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소위 ‘재수 없는’ 재벌 2세의 특징을 모두 갖추었다. 저항할 수 없는 약한 상대를 향한 갑질, 자신이 서민과는 다르다는 귀족 의식으로 그녀는 ‘악’이 되기에 충분하다. 차필웅은 협잡꾼으로서의 음흉한 눈빛과 웃음, 겉과 속이 다른 대화 등을 통해 또 다른 ‘악’으로 그려졌다. 배춘금, 차필웅 모두 뾰족한 얼굴과 날카로운 눈매를 지녔으며, 둥그런 얼굴과 순박한 눈빛의 장유진과 대비된다. 제공된 정보와 이미지를 통해 이미 세 사람은 ‘선과 악’으로 결정되었다.
서원주(2019)는 ‘선한 인물이 선한 정치로 이어지는 환상’에 대해서 지적했다. 덕 있고 선한 주인공과 천재 참모의 결합은 정치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를 반영하지만, 장유진이 선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것이 정치인으로서 좋은 사람이라는 것까지 담보할 수는 없다. 선과 악이라는 캐릭터에 충실한 사건 전개는 주인공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를 요청하며, 의도치 않게 독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한계를 갖는다.
불균형에서 균형 만들기
1988년 주완수 작가의 <보통고릴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정치만화는 이데올로기, 사회 부조리 고발 등 정치세계와 정치인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며 발전해왔다. 시사만화를 포함한 정치만화의 발전은 사회적 불균형에 대한 인식과 자각이었다. <여의주>는 선거를 소재로 선거 이면의 책략과 권모술수를 세밀하게 그렸다. 불균형은 균형을 갈망하기에 그 속에는 변화가 잠재되어있다. 장유진과 한태환은 불균형한 조건을 극복하고 이제 선거 유세 마지막 날 TV토론회까지 왔다. 국회의원 당선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독자에게 시원한 승리를 선사할 장유진과 한태환의 선전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