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도롱이>, 사이사, 네이버웹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정확히는 몰라도 어디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시, <꽃>의 한 구절이다. 어떤 대상이든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나와 상관없는 존재이다. 내가 이름을 불러주고 의미를 부여한 이후에 비로소 나와 의미 있는 관계가 형성된다. 사실 이 과정에 숨겨진 단계가 하나 더 있다. 먼저 그 대상을 ‘인식’하는 일이다. 대상을 인식하지 않으면 그 이후의 관계 형성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웹툰 작가에게 악플(또는 악성 댓글)은 아프다. 하지만 악플은 대중의 관심이 있을 때 만들어진다. 악플보다 더 아픈 것은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아 생기는 무플일지도 모른다.
‘2021 오늘의 우리만화’에 선정된 <도롱이>(사이사, 네이버웹툰)는 승천하고 싶어하는 이무기 ‘도롱이’와 인간의 만남을 그렸다. 권삼복은 우연히 만난 990살 이무기 ‘도롱이’를 용으로 승천시키고 싶어한다.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서는 1,000살을 채워야 한다. 흔히 신화나 이야기에서 용은 인간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영험한 존재이지만, <도롱이>에서 용은 결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권삼복네 백정 가문은 아직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들이 승천하기 위해 모여드는 산을 터전으로 삼았다. 덫을 놓아 이무기를 사로잡아 목소리를 제거하고 사육한다. 필요에 따라 이무기를 도축한 후 만병통치약의 재료로 판매하면서 살아간다.
승천하려는 이무기를 모조리 잡은 결과, 세상에는 승천하는 이무기가 없어졌고 용이 사라졌다. 용이 비를 내려줘야 사람들이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데, 비가 내리지 않으니 가뭄의 연속이다. 농사가 안되니 사람들의 삶은 가난하고 고달파진다. 용이 되어 인간의 삶에 도움을 주려고 하는 이무기의 선한 목적은 이무기를 가축으로 여기고 재화의 도구로 삼는 인간의 욕심과 대비된다.
인간은 이무기를 사육하면서 이무기가 말을 하지 못하도록 성대를 제거하여 일말의 죄책감도 덜어낸다. 만약 우리가 소나 돼지가 말하는 목소리를 듣거나 직접 도축해서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는다면 죄책감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마트에 가서 돈을 주고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사 먹는다. 소나 돼지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기 때문에, 도축 현장을 직접 마주하지 않기 때문에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을 때 그리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도롱이를 만나기 전 권삼복에게 이무기는 단순히 가축일 뿐이다. 이무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관계를 맺는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사육을 하거나 도축해도 별 죄책감이 없다. 사육하는 이무기는 나와 아무 상관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권삼복이 도롱이를 ‘인식’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도롱이는 단순한 가축이 아닌 권삼복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권삼복의 오빠이자 백정 가문의 가주(家主) 권삼오는 이무기를 도축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은 하지만, 동시에 이무기를 도축해야 자신의 가문이 유지된다는 생각 때문에 도의적인 책임을 외면한다. 인간을 살리기 위해 이무기를 도축해서 약으로 쓴다는 권삼복의 아버지 역시 문제의식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변화는 어떤 문제를 인식하고 바꾸려고 하는 생각에서 시작한다. 권삼복은 도롱이를 관계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이무기를 도축하지 않는 상황으로 개선하고자 노력한다. 여기에서 ‘인식’은 ‘행동’으로 연결된다.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길들인다’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길들인다는 것은 누군가와 인연을 맺는 것이다. 그 관계는 한 번에 형성되지 않는다. 시간을 들여 한 번 두 번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익숙해지면서 길들여진다. 결국 나중에는 없으면 안 될 관계로 발전한다. 그 시작은 상대를 관계의 상대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디지털만화규장각, 2021.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