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대한민국에 ‘깐부’ 열풍이 불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흥행으로부터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친한 단짝 친구나 짝꿍을 가리키는 말로 깜부, 깜보 등으로도 불린다’고 나와 있다. <오징어게임>에서는 ‘동네에서 구슬이나 딱지를 네 것 내 것 없이 같이 쓰는 친구’라는 뜻으로 쓰였다.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신스틸러로 등장한 1번 참여자 깐부 할아버지 덕분이다. 대한민국에 깐부 열풍이 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 소개할 웹툰 <빌드업>은 평범한 고등학생 강마루가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축구를 소재로 한 만화나 영화의 주인공은 잘 생기고 능력 있는 공격수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빌드업>의 주인공은 학원물의 단골 소재인 ‘빵셔틀’이다. 일진에게 수시로 얻어터지는 찐따이다. 축구는 좋아하지만 아무도 끼워주지 않아 혼자 오랫동안 기본기만 연습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하자고등학교 축구부에 입부한다.
축구 포지션은 크게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 골키퍼로 나뉜다. 주인공이 맡은 미드필더는 코트 중간에서 경기를 조율하는 중요한 포지션이지만, 마루는 실전 경험이 거의 없는 초짜이기 때문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독자는 예상치 못하게 마루의 플레이를 보며 ‘가슴이 웅장해지는’ 경험을 한다. 주인공이 플레이메이커(게임을 풀어가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마루는 코트 중앙에서 폭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스로 경기를 이끌어간다. 축구 경험이 거의 없는 초짜 주인공이 어떻게 이런 능력을 갖추게 되었을까? 마루가 일진의 ‘빵셔틀’인 이유에서 비롯된다. 일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항상 주위를 살피며 자신을 괴롭히는 주요 요인의 위치를 기민하게 파악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경기장을 폭넓게 보는 시야를 갖추었다. 거기에다가 기본기가 탄탄했기 때문에 동료에게 정확하게 공을 줄 수 있다. 학원물과 스포츠물의 절묘한 조합이 캐릭터에 매력을 부여했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선수들이 모인 팀은 원래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다. 서로 패스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동료에게 공을 주고 자신은 비어있는 공간으로 뛰어 들어가야 공격 찬스가 생긴다. 다른 동료에게 공을 주면 다시 공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 때문에 동료에게 패스하지 않는다. 패스를 하지 않고 무리하게 상대 진영을 돌파하다가 공을 빼앗기고, 실망한 동료들은 그에게 다시 패스하지 않는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묵묵하게 수행한다. 공을 받으면 욕심내지 않고 주위를 살펴서 가장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동료에게 다시 패스한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마루는 동료들에게 신뢰를 얻는다. 마루는 이제 동료들의 깐부가 되었다. 모든 공격은 마루를 거쳐 시작된다. 제목 그대로 빌드업(‘플레이를 만드는 방식’이라는 뜻으로 축구 경기에서 상대 진영으로 나아가는 전반적인 과정)을 한다. 다른 동료들도 마루를 통해 서로 간의 신뢰를 회복한다. 신뢰가 회복되니 공격 과정이 치밀해지고 축구가 재미있다. 깐부가 된 빵셔틀 찐따 마루는 경기를 지배하는 플레이메이커가 된다.
축구는 결코 혼자 할 수 없다. 다른 동료에게 공을 보내고, 받고, 다시 보내야 찬스가 생긴다. 동료를 믿지 않으면 패스를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다. 축구에서만 믿을만한 동료, 즉 깐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도 필요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에서 많은 사람이 신뢰의 부재를 외친다. 내가 믿음직한 주변 사람을 얻고 싶다면 먼저 내가 신뢰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불신이 팽배한 사회를 살아가는 지금,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깐부가 정말 그립다.
당신에게도 깐부가 필요한가? 질문을 바꿔보자. 당신은 먼저 다른 사람의 깐부가 되어 줄 수 있는가? 웹툰 <빌드업>은 이런 질문에 충분히 답을 던져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