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하게 생존하기
세상에는 헛소리가 넘쳐나고, 우리는 그 속에서 익사할 지경에 처했다.
정치인들은 사실에 얽매이지 않는다. 과학은 보도 자료가 수행한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은 헛소리를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았다. 대학들은 분석적 사고보다 헛소리에 보상을 안겨준다. 대부분의 행정 활동은 헛소리를 모아서 재조립하는 정교한 실행 과정일 뿐이다. 광고주들은 음모라도 꾸미는 듯 눈짓을 보내 자신들과 함께 모든 헛소리를 꿰뚫어 보자고 초대한다. 우리는 거기에 응했다가 잠시 방심한 사이 그들이 우리에게 퍼붓는 제2의 헛소리에 속아 넘어간다.
헛소리는 특정한 사안에 관해 사람들을 호도함으로써 우리 세계를 오염시키고 정보를 신뢰하는 우리의 능력을 전반적으로 약화한다.
-서론
우리는 얼마나 많은 헛소리 속에서 살고 있을까? 우리가 믿는 것들은 과연 진실일까? 살아가면서 이런 의문을 품어 본 적은 있었던가?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유래 없이 빠른 정보의 확산과 함께 비례하는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정답은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이쪽에선 이 얘기가 맞는가 싶다가도 저쪽에서 듣고 있노라면 저 얘기가 맞는 거 같다. 때로는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자극적인 기사 제목, 수많은 미디어에서 내보내는 정보성 광고들, 카더라 하는 통신들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그렇구나 하고 철썩 믿어버리기도 하지만 수학, 과학, 통계학의 언어를 사용한 ‘그럴싸’해 보이는 신식 헛소리들은 더더욱 헛소리를 알아차릴 수 없게 한다. 이렇게 양적인 형태로 제시된 정보는 기본적인 숫자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기에 더더욱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꼭 통계학, 수학, 과학 등 전문적인 지식을 가져야만 헛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저자는 말한다. 헛소리를 꿰뚫어 보기 위해 광범위한 데이터 수집이나 몇 주간의 노력이 필요하지도 않다고, 기본적인 논리적 추론을 문제에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며 필요한 경우 검색 엔진을 이용해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로 이를 보완하면 된다고. 즉 사실과 기술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닌, 비판적 사고 기술을 훈련하고 연습하는 거다. 그리고 알아야 한다. 결국 내가 아는 만큼 헛소리를 식별할 수 있고, 당하지 않을 수 있다.
헛소리는 왜 가능하며 왜 난무할까?
정교한 헛소리를 하려면 정신적인 이론이 필요하다. 자기가 한 말을 믿는 척할 수 있어야 한다. 주변 사람이 뭘 알고 뭘 모르는지 알아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헛소리가 상대에게 어떤 인상을 줄지 미리 상상해서 그에 따라 자기가 할 허튼소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에겐 풍부한 언어체계가 있다. 인간의 언어는 당양한 표현을 위해 수많은 방법으로 단어를 조합하여 광범위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우리는 의사소통 기술로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을 조정할 수 있다. 사람은 이 점을 잘 안다. 그리고 이 점을 이용한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이들은 당신에게 무언가를 팔려한다. 사실이 아닌 말을 해서 상대방이 잘못된 결론을 내리도록 의도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 이게 바로 ‘호도’이다. 그럴듯한 수준에서 진술을 거부하거나 진실을 얼버부린다. 가령 “나쁘지 않았어.”라는 말은 나쁘지 않지만, 별로 좋지도 않았다는 말도 포함된다. 문장이 문자 그대로의 뜻이 아니라 뭔가 다른 것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되는 상황을 설명하려고 함의한다. 이렇듯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은 함의와 호도의 능력을 키웠다. 함의를 이용하면 남을 호도할 수도 있다.
이런 애매모한 표현으로 헛소리는 자기의 말에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이런 기술은 많은 전문분야에서 중요한 기술이 된다. 뭐든 ‘팔 것’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만큼 매력적인 기술이다. 언론사, 광고주, 금융, 논문, 제약회사 등, 모든 상업적 가치가 있는 곳들, 하물며 변호사까지도 이 기술을 사용한다. 현대의 소셜미디어는 이런 상업성을 원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헛소리의 총축소판이다.
헛소리를 반박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양은 그런 헛소리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보다 몇십 배나 많다.”
- p34
헛소리를 반박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양은 그런 헛소리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보다 몇십 배나 많다. 예로 1998년 영국 의사인 앤드루 웨이크필드는 랜싯이라는 의학저널에 백신이 아이들 자폐증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에 공포를 느낀 사람들은 백신을 거부했고, 그 결과 전 세계에 홍역이 재유행하는데 기여했다. 후에 말도 안 되는 논문이라 판명이 났지만, 우리는 왜 이 이야기에 공포를 느끼며 백신 맞기를 거부했을까? 간단하다. 부모들에게 자폐증은 두려운 질환이고, 우리는 자폐증의 원인이 뭔지 아직 모른다. 게다가 ‘연약한 몸을 바늘을 뚫고 이물질을 주입한다.’ 이 문장의 서사도 완벽하다. 위생 및 오염에 관한 우리 마음의 깊은 두려움을 건드린다.
이렇듯 헛소리는 만들어 내기 쉬울 뿐 아니라 퍼지기도 쉽다. 헛소리 만들기는 헛소리를 없애는 것보다도 훨씬 쉬우며, 퍼지는 속도도 빠르다. 헛소리는 남을 속이면서 동시에 진실과 점점 멀어지게 한다.
거짓말은 날아가고, 진실은 절뚝거리며 그 뒤를 따라간다.
매체, 메시지, 잘못된 정보 대 인터넷 시대
인터넷은 정보 생산, 공유, 소비 방식을 바꿨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지만, 신뢰도가 떨어진다. 인터넷은 속도를 낳았고, 돈을 만들어 준다. 우리가 클릭하는 기사들은 제목으로 자극성을 잔뜩 올려놓은 질 낮은 기사인 편이 높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제목만 읽고 내용을 잘 읽지 않는다. 정직한 정보는 새로운 시장에서 경쟁이 불가능하다. 대규모 네트워크로 연결된 클릭 중심의 소셜미디어 세상에서는 기존의 어떤 사회적 환경보다 헛소리가 쉽게 퍼진다. 넘쳐나는 정보 시대에 이제는 좋은 정보, 양질의 정보를 골라낼 수 있는 것도 능력이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선택할 수 있다. 결국 헛소리를 걸러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교육’에 있을 것이다. 미디어 정보 해독력이나 비판적 사고를 잘 교육한다면 헛소리에 대한 분별력이 생길 것이다.
인과관계와 상관관계
데이터를 사용한 인과관계와 상관관계의 연관성은 상관관계만을 근거로 인과관계를 제시한다.
상관관계 확인만으로, 충반한 증거가 없는데도 인과관계를 제시하며 연구 결과를 설명한다.
진화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패턴을 찾는 능력이 탁월이 발달한 인간은 하나의 경험을 바탕 삼아 다른 경험을 일반화하는 특성이 있기에 먼저 일어난 일이 두 번째로 일어난 일을 유발할 것이라는 경험 법칙을 적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령 매년 9월 초 기러기가 도착하고 9월 말은 은연어가 돌아오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기러기가 물고기를 강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고기와 기러기는 연관이 없다.
숫자와 헛소리
숫자는 헛소리를 퍼뜨리는 데 이상적 수단이다. 숫자는 객관적인 것 같지만, 화자가 원하는 얘기를 하기 위해 쉽게 조작할 수 있다. 말은 느낌, 직감, 표현성을 나타내지만 숫자는 정밀성을 시사하며 과학적 접근법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로 사람들은 숫자가 최고라 확신하기에 진실을 알기 위해 숫자(데이터)를 요구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치나 측정이 정확하더라도 숫자 또한 헛소리에 이용될 수 있다. 문맥이 사라지면 숫자는 헛소리가 된다. 연구를 위해 표본을 모집할 때 표본 선택 방식의 편향성은 오차를 낳는다.
무언가를 팔아야 하는 사람들은 숫자를 이용하여 교묘한 속임수를 만들어 낸다. 99.9%의 카페인 프리 음료는 스타벅스 드립 커피에 든 약 0.075% 카페인과 다를 게 없고, 건강을 가장하여 이 초콜릿엔 1회분 30g당 지방 함량이 평균 7g보다 낮은 5g입니다!라고 외쳐도 그 비교대상이 어디 회사인지, 초콜릿 바인지 초콜릿을 입힌 것인지, 지방을 간과한 설탕량은 얼마나 더 들어갔는지 등 알 길이 없다. 맥락 속에 숫자는 얼마든지 그럴싸하게 사용될 수 있다. 믿음+확실성+신빙성은 신뢰를 만든다.
‘출처와 맥락을 모르는 특정한 통계는 별 가치가 없다.”
-p.172
선택 편향
어디를 보느냐에 다라 보는 내용이 달라진다. 가령 행복한 결혼생활의 지표를 알아보기 위해 ‘내 남편은’ 이란 단어를 검색했을 때의 자동완성을 살펴보면, 자신의 삶이 아름답게 보이길 원하는 소셜미디어에서는 왼쪽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구글에 똑같은 쿼리를 입력했을 땐 이와 같은 결과(오른쪽)가 나올 수 있다. 즉 우리가 찾는 건 어디를 살펴보냐에 다라 달라진다. 측정치가 목적이 되면 올바른 측정은 불가능하다.
데이터 시각화
컴퓨터는 대용량 데이터 세트를 처리하는 데 능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데이터가 원시적인 형태로 제시되거나 표로 요약돼 있으면 데이터 패턴과 구조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데이터가 정확하더라도 그걸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는 데이터가 주는 느낌을 조작할 수 있다. 상관관계의 환상을 만들 수도, 집단 사이의 작은 차이를 커 보이게 디자인할 수도 있다. 또 어떤 데이터를 다른 정보를 보여주기 위해 고안된 시각적 형태에 억지로 쑤셔 넣을 수도 있다. 그리곤 괜찮은 시각화의 권위를 이용해 자기들이 권위자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외에도 빅데이터의 쿼리 값에 대한 빈도, 학술지에 실려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한 과학자들의 논문 등 헛소리르 도처에 넘쳐나며 우리를 현혹시키고 우리는 그런 헛소리에 휘둘리기 쉽다. 이런 세상에서 올바른 정보를 취합하고 나에게 필요한 방향으로 활용하려면 앞서 말했듯 교육, 즉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아는 만큼 볼 수 있고, 아는 만큼 알 수 있다. 맥락에서 살펴볼 줄 알아야 하며 의식을 하며 경계하는 사고방식이 필요할 것이다. 인간이 5만 년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살은 인간은 ‘적응’이라는 놀라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데이터, 숫자, 표본 등이 나오면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나의 뇌는 그런 것들을 보는 것조차 거부를 하고, 생각만으로도 지끈 거리지만 이 또한 처음이기에 어려운 것이고 어려운 건 반복하면 숙달된다.
전공과목 중 증거를 기반으로 한 치료를 위해 좋은 논문 찾는 법을 배우는 수업이 있다. 객관적 임상기준을 찾기 위해 기재된 내용의 타당성, 비교 그룹 간의 테이블 결괏값 차이가 크진 않는지, 랜덤화 방식을 사용했는지, 치료사/환자/outcome에서 블라인딩 처리를 했는지, 후원 여부 등 여러 기준이 있는 가이드라인에 맞춰 객관적이고 치료에 쓸 만한 좋은 논문을 찾는 것인데 논문 자체도 생소하고 그 안에서 제시된 기준을 찾기도 쉽지 않다. 결괏값 테이블의 p값이며 기본적 통계를 볼 줄 알아야 식별할 수 있는데 전혀 접해보지 못해 어려운 나는 쳐다보는 것 만으로 놓아버리고 싶다. 그러나 그간의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해오면서 느낀 것들로 안다. 결국 뭐든 어려운 건 ‘처음’이라 어렵고, 반복으로 익숙해지면 쉬워진다는 걸. 교수님도 말했다. 결국 많이 해봐야 좋은 논문을 찾아낼 수 있다고. 논문 형식이며 통계 값에 지끈거리지만 별 수 있나? 반복으로 이 또한 뚫어보려 한다. 또한 객관적이고 좋은 논문을 찾아냄에 책에서 말하는 맥락을 적용하여 헛소리를 짚어내는 능률 또한 같이 쌓을 수 있을 거 같다.
헛소리 또한 반복 연습으로 숙달시킬 수 있다. 그래서 헛소리 간파 또한 헛소리를 만들어 내는 이러한 맥락들을 알고 그에 대응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누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어떻게 그걸 아는지, 내게 팔려는 것이 무엇인지 등 정보의 출처에 의문을 가지고, 애당초 시작점이 다른 불공 편한 비교를 조심하며, 너무 좋거나 너무 나쁜 것 또한 의심하라. 자신의 기존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에 주목해 그걸 믿거나 남과 공유하려는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확증편향을 조심하라. 언뜻 보기에 타당한 듯한 주장을 새로운 맥락에 비춰, 즉 청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그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례 사이의 유사점을 보여주어 믿게 하는 유사 비유를 조심하라. 그리고 이런 훈련이 반복 숙달로 잘 이루어졌다 해서 자만하지 말고, 정화성을 유지하며, 겸손을 미덕으로 삼고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단 걸 인정할 줄 아는 태도로 갈수록 급변하며 넘쳐 헛소리에서 스스로를 지켜 나가는 사람이 되자. 결국 나 자신을 지키는 건 나 자신이다.
“어떤 주장이 세계에 관한 우리의 믿음을 확인해주면 이를 진실로 받아들이기 쉽고, 거짓일지도 모른다며 이의를 제기하려는 경향은 줄어든다. 어느 때건 당신이 맞서 싸워야 하는 헛소리의 주요 원천은 당신 자신이다.”
-p403
넘쳐나는 정보 홍수의 시대에서 헛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나에게 필요한 객관적이고 좋은 정보를 찾는 것 또한 능력이다. 지금은 그런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