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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디 Feb 26. 2020

반도체 장비 엔지니어

일반 직장인과 뭐가 다를까?

 2020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핫한 산업이 뭐냐고 하면 바로 반도체라고 말할 것이다.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고 올라가는 반도체주가와 초록 창의 뉴스만 틀면 나오는 갈빗집(S사)/쌀집(H사)의 소식들로 그를 반증할 수 있다.

반도체 회사에서 일한다고 말하면 나오는 반응은 두 가지다.


"와! 신기해요! 하나도 모르겠어요!"

혹은,

"와! 돈 많이 버시겠네요~"  [필자의 경험담이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의 최전방인 Fab [*반도체 공장]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24시간 밤낮을 막론하고 열심히 갈려나가고(...) 있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할 것이다. 물론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애환이 있고, 힘든 점이 있다. 하지만 내 주변의 지인들과 나의 직장생활은 확연히 달랐으며, 그로 인해서 나는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나는 이 글을 통해서 장비/설비 엔지니어라는 직업이 일반 사무직과 다른 점, 그로 인해서 힘들었던 점들을 서술해보려고 한다.

 우선 반도체 장비 엔지니어는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장비를 새로운 장소에 설치[*셋업이라고 부른다.]하거나, 고장 난 장비를 고치는 일을 한다. 우리 모두 밤새고 문득 TV를 틀었을 때 새벽 5시~6시쯤 나오는 애국가에서 나오는 우주복 입은 아저씨를 보았을 것이다. 그들이 장비 엔지니어다. 반도체 생산의 관점에서는 우리가 가장 더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온몸을 방진복으로 가려주는 것이다. 그냥 봐도 환경부터 다르지만, 왜 이 사람들이 힘들어하는지 좀 더 상세히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야행성 인간이라면 한번쯤은 봤을 장면.


첫째. 공장이 24시간 가동된다.

 일이 24시간 진행된다는 점은 일이 생길 가능성이 항상 있다는 이야기다. 약간의 부가설명을 하자면, 반도체는 Wafer라는 원판같이 생긴 넓은 물체 위에 수많은 과정을 거쳐서 화학물질들이 쌓이고 깎이는 과정을 통해 생산된다. 하나의 Step이라도 빠지면 안 되고, 조금이라도 Wafer가 정체되거나, 온도가 달라지거나, 화학가스가 적거나 한다면 불량품이 생산되거나 심지어는 아예 못쓰게 돼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24시간 교대 근무는 필수이다. 고객사의 경우라면 책임을 맡고 있는 공정에서 언제 문제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긴장을 늦추고 있을 수 없다. 금요일 밤, 주말, 명절을 막론하고 일이 터진다면 항상 대응을 해야 한다.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졌다면 교대로 쉬는 날을 정하면 되겠지만, 현실적인 인원 문제로 그렇지 못하고 주먹구구식으로 막내가 가던지, 가까운 사람이 가던지, 연락받은 사람이 가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데이트하러 갔다가 긴급한 전화를 받고 Fab으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고, 갑작스러운 이슈 발생으로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해 여자 친구에게 실망을 안겨준 사례, 그리고 "꼭 가야 해?", "일할 사람이 오빠밖에 없어?"를 시전 하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일반적이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다.] 여자 친구와의 다툼으로 헤어지는 사례도 많이 보았다.


 이 점은 불금 로망을 접게 하고, 퇴근 시간이 정해진 다른 직종의 친구들과의 비교로 인해 열등감과 부러움을 들게 하여 많은 신입사원들이 여기서 많이 포기하고 빠르게 다른 직업을 알아본다. 단순히 이 정도라면 "야근 많이 하는 직업은 새고 샜는데 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 이제 두 번째 이유를 적어보겠다.


둘째. Fab 안에서는 작업 외에 어떤 일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 점은 많은 반도체 현장직인의 불만일 것이다. 일반적인 직장이라면 업무시간에 집에서 온 급한 전화도 못 받고, 여자 친구와의 연락도 단절된다는 게 말이 되냐고 하겠지만, 실제로 이 곳은 보안이 굉장히 철저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장소에 휴대폰을 가져갈 수 없다. 그 외 간식, 담배, 물 이런 것들은 당연히 안되고, 또한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중간에 대소변을 보려면 방진복을 벗고->원래 옷을 입고->나가서 대소변을 보고->원래 옷을 벗고->방진복을 입고 들어와야 한다.


 Fab은 엄청 넓다. 정말 거짓말 안치고 학교 운동장 3개는 합쳐놓은 크기이다. 탈의실[*수막 룸이라고 부른다]과 작업장소와의 거리가 그 정도가 되면 급한 작업일 경우에는 가는 게 불가능할 때도 있기 때문에, 대부분 장비 엔지니어들의 방광의 수용능력은 일반인의 두 배는 될 것이다. 신입사원 때는 일하다가 커피 한 잔 하는 게 소원이 었을 정도로 잔인했던 환경이었다.


셋째. 서비스업과 몸을 쓰는 직업의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물론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중압감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이런 점들은 아마 간호사와 비슷하다고 본다.

 우슷개소리로 장비 엔지니어를 첨단 노가다라고 부르는데, 나는 직업에 귀천을 두지는 않지만, 대학교에서 4년간 수학한 학생들이 어떤 직업을 꿈꾸고 있는지는 알 수 있다.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많은 경쟁자들을 재끼고 괜찮다는 회사에 들어왔는데 나사를 조이고, 부품을 교체하는 게 80% 이상인 직업을 하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물론 지금 와서는 그게 사람 대응하는 것보다 100 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일이지만, 20킬로가 넘는 무거운 물건을 옮기고, 가스가 새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작업을 하는 것은 상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습도가 항상 조절되기 때문에 항상 수분 부족한 얼굴, 방진모[*머리에 쓰는 방진복] 장시간 착용으로 인한 머리 눌림, 오랜 시간 끼고 있는 장갑 때문에 생기는 주부습진 등은 상상했던 직장인의 모습과 점점 멀어지게 만들고, 적어도 나와 내 주위의 사람들은 그런 것 때문에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했다.


 또한 서비스직+남초라는 특성이 이들을 힘들게 한다. 장비 엔지니어들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장비가 고장 났기 때문이다. 이해한다. 나 같아도 한 여름에 에어컨이 고장 나면 다 엎어버리고 싶을 것 같은데, 고객사 직원들의 치열한 고과 싸움은 더 했으면 더 할 것이다. 문제는 그 화가 모두 장비 엔지니어들에게 간다는 것이다. 엔지니어들이 고장을 낸 것이 아니지만 그 화를 모두 받아야 하고, 덕분에 성질이 선비 같던 사람도 대부분 다혈질로 변해버린다. 게다가 여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남자들이 군대에서나 하던 일을 시키기 때문에 대부분 못 버티고 나가서 회사에서 선호하지 않는다] 분위기가 상당히 거칠다. 험한 말이 오고 갈 때도 있고, 다들 척박한 환경 안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기분이 안 좋다. 화를 잘 낼 줄 모르던 나 또한 회사에 들어와서 화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서 말을 세게 하는 습관까지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한 회사에서 4년간 일하면서 느낀 장비 엔지니어의 단점들을 주저리주저리 적어봤는데, 나의 미약한 경험으로 적은 것이기 때문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말이 있다. "아기는 걸음마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 누구나 본인의 상황이 가장 힘들게 느껴지고, 경험해보지 않은 것은 공감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지 많이는 알려지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기록을 해두고싶어서 글을 쓰는 것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게 되었다면 '아, 신기한 업계네. 하지만 우리 업계도 만만치 않지' 정도로 넘겨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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