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진 것들과 작별하기
일상이 많이 달라졌다. 일단 생각할 시간이 무한대로 생겼다. 하루 24시간을 구분해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지도 않는다. 너무 오랫동안 방치했던 나를 만나는 것이 낯설기는 하지만 이런 시간을 보내는 나날이 내생에 언제였던가 싶다. 한동안은 여행이니, 뭐니 해서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기도 했지만, 결국은 나를 찾는 것이 가장 화두였다. 일생동안 나는 누군가 정해놓은 시간표를 내 삶의 좌표로 여기고 살아왔다. 거기에는 오롯이 나는 빠져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특장점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순응하는 일상을 채워 넣어 목표치가 만족스러운지 누군가의 검증을 받으면 그것이 나의 일인 양 만족하는 삶이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젠 나를 좀 이해하고 싶다. 그저 목표만이 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만한 나이도 되었다. 기회의 중심에 도달하려면 시간을 건너뛰어야 한다. 그동안은 침잠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나를 이해하기도, 사려 깊게 봐주는 것도 이젠 지쳐갈 나이가 되어간다. 늘 나는 이차원의 시간대를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고는 했다.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시간의 선로를 살아가는 것이 결국 우리가 인지를 하든, 못하든 남는 것은 사진뿐인 인생이 삶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도 무던히도 흘러간다. 문득 뒤돌아 서서 화들짝 놀라기도 하지만 그런 나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줄기차게 영겁의 스케줄대로 직선화 경향으로 흐를 뿐이다. 누구든 어느 날 갑자기 거울 속 자기의 모습에 놀라곤 한다. 서서히 늙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모습에 놀랄 뿐이다. 그렇게 수없는 시간이 지나고 하염없는 물줄기가 지난 후에 잔잔해진 냇가에 다다라서야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깨닫게 될까? 지금도 이미 나는 좀 늦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앞으로 나는 지금과는 다르게 분명히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생각을 할 것이며 또 다른 세계를 접하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어떤 동사의 멸종』-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이 책은 직접 체험을 위주로 지어진 한승태 작가님의 책으로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브런치 작가이신 최문섭 작가님의 『경비지도사의 경력수첩』을 구입해 읽던 중, 많은 글귀 중에서 추천사가 있기에 새로운 직업으로 나가려는 나에게 많은 감화를 주었다. 사실 사회복지사로서의 직업적 선택은 나에게 많은 망설임으로 다가왔다. 알면 알수록 과연 그 일을 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나를 엄습하곤 했다. 또한 나이로 인한 한계가 있기에 원하는 기관도 한정적 일 수밖에 없었다.
경비지도사는 한마디로 아웃소싱업체의 관리직원으로 일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무엇보다 밖으로 다니며, 사람들과 접촉한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공무원을 하기 전에 젊은 시절, 나는 영업직에 종사한 적이 있었다. 모든 직업이 장단점이 있지만, 나는 비좁은 사무실에 갇혀있기보다는 밖으로 나다니는 점이 좋았다. 물론 영업이란 실적 압박이 매월 나를 짓누르지만 숨을 쉴 수 있어 좋았다. 경비지도사란 직업도 경비, 청소, 시설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메신저 역할을 해야 함에 그리 쉬운 직업은 아니다.
그들을 대하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을 두루 꿰고 있어야 하고, 채용안내문 작성과 전화인터뷰, 면접방법, 근로계약서 작성법 등을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점은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아직 일을 해야 한다. 급여 때문이 아니라 생활의 루틴을 되찾고 싶다는 욕구가 무엇보다 앞섰다.
일주일 중에서 화, 수, 목요일은 저녁 3시간을 사회복지실무교육에 여념이 없었고, 한편으론 실제적인 구인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도서관 자료실에서는 아웃소싱업계 관련 자료를 찾느라 나름 바빴다. 한 가지 일이 더 있었는데 '뇌강사' 활동을 위한 프레젠테이션 준비였다. 초, 중, 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치매예방과 뇌건강을 주제로 한 강의 봉사활동의 일환인데, 취업 후 업무에서도 써야 하는 일이고, 면접 시 유리하게 작용할까 싶어 자원을 한 것이다.
이런저런 준비의 과정이 녹록하지는 않지만 하루가 어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다. 결과가 있어야겠지만 아직은 만족하고 있다. 이런 준비가 결국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고조되고 있다. 인생은 여정이 계속되는 노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나는 다른 길을 선택하고 그 길 위에서 고뇌하고 노력 중이다. 나의 또 다른 2막을 준비하는 여정이 있어 기꺼운 마음으로 내일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