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문화적 이질감에 대하여
"인간은 자신이 보는 시야의 한계를 세상의 한계로 생각한다." 작금의 세대 갈등을 이보다 명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이 있을까. 익숙한 경험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인지 방식은, 필연적으로 타 세대에 대한 오해와 단절을 낳는다. 특히 오랫동안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성장해 온 세대 간의 간극은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지금의 청년 세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때로는 안쓰럽고, 때로는 낯설다. 넓히려 아무리 애써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 방식 앞에서, 나는 오래된 연식을 실감하곤 한다.
사람은 자신의 성장 경험치 이상을 생각하지 못하는 존재로서 386세대인 나부터도, 지금의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의 깊이를 정확히 안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산업개발 시기의 폭발적인 인구증가 세대로서 특별한 시기의 혜택을 입은 세대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의 잣대로 그들을 쉽게 단정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그들이 억압과 순응에 익숙했던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들은 어려서부터 '나'를 존중받는 환경에서 자라왔다. 가정에서는 부모의 권위적인 모습보다는 수평적인 소통을 경험했을 것이고, 학교나 사회에서도 과거처럼 획일적인 규율보다는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당당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그들의 모습은, 윗세대의 눈에는 때로는 반항적으로, 때로는 미숙하게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태도는 단순히 '버릇없다'거나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치부하기에는 그 뿌리가 깊다.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존중받으며 성장한 그들에게, 세상이 요구하는 '눈치'와 '적당한 타협'은 어쩌면 당연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윗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부당한 지시에도 묵묵히 따르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던 과거의 방식은, 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낡은 관습일 뿐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들의 당당함과 주체성을 새로운 시대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과거의 낡은 틀에 갇혀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는, 그들의 신선한 시각과 과감한 도전을 통해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현실의 벽은 높다. 치솟는 집값, 불안정한 고용 환경, 좁아진 취업 문턱 등 청년 세대가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들의 좌절감은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일지도 모른다. 꿈을 펼치기도 전에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힘겨워하는 그들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에게 쉽게 "노력하라"거나 "견뎌라"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지금의 청년 세대가 겪는 어려움은,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경쟁만을 부추기고,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사회 구조를 만들어온 우리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청년 세대의 좌절에 경악하기보다는, 그들이 가진 잠재력을 믿고 지지해야 한다. 그들의 주체적인 태도는, 획일적인 사회에 다양성을 불어넣고, 새로운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이 마음껏 꿈을 펼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정한 토양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청년 세대는, 우리보다 훨씬 더 현명하고 강인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굴종보다는 당당함을, 순응보다는 주체적인 삶을 선택하는 그들의 용기에 우리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들의 새로운 시각과 도전 정신은, 정체된 우리 사회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동력이 될 것이다.
결국, 세대 갈등의 해법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의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그들을 이끌어주는 동시에, 그들의 새로운 생각과 방식에 귀 기울이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이 보는 시야의 한계를 세상의 한계로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청년 세대의 자립을 응원하며, 그들의 빛나는 미래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