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또 다른 삶을 위하여(5)

은퇴 후 취업 도전기

by 포레스임


실직 후 흔히 취업 사이트를 들여다본다. 수많은 업체의 정보가 있으니 당연히 내 일자리 정도는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란 착각을 하게 된다. 이용도 쉬워 내가 가진 이력과 자기소개서, 붙임파일로 자격증이나 면허증을 게시하여 한 장의 이력서를 완성보관 후, 적당한 업체의 채용공고를 보면 '즉시지원'을 누르면 지원이 완료된다. 처음엔 나도 이렇게 지원이 쉬운가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인터넷과 AI가 세상의 중심이 되었으니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몇 달 동안 내가 가진 자격과 이력을 생각해 수십 군데 지원을 했었다. 하지만 연락이 오는 곳은 없었다. 나이도 나이려니와 경쟁률도 어마어마했다. 쉽고 편하게 지원을 할 수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눈을 돌려 어렵게 지원을 해야 하는 원래의 자세로 돌아왔다.



사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쉽고 편한 지원보다는 나에게 맞는 업종과 직종을 고려해 성심성의껏 지원서를 작성하는 것, 요구사항도 많다. 자술서인지, 진술서인지도 헷갈리는 역량기술서도 써야 하고 글자수도 몇 자 이상은 되어야 했다. 나이 육십에 성장과정을 써보기도 하고, 사례중심으로 기술도 요하고, 마음가짐에 대한 소회도 요구한다. 그냥 꾸역꾸역 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갖고 있는 자격이나 면허도 반드시 PDF 붙임파일로 올려야 한다. 그렇게 다 갖추어 보내기를 하면 묘한 기대심리가 생긴다.



취업 사이트를 통해 즉시지원을 하면서 느낄 수 없었던 아련한 기대감이 생긴다고나 할까......, 그렇게 서너 군데를 골라 성의껏 지원서를 작성하고, 진인사 했으니 대천명의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어느 날 저녁 식사 중에 문자가 왔다. '지원자님께서는 서류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차기전형 대상여부 및 전형일정·장소를 다음과 같이 안내드립니다.' 갑자기 주변이 환해짐을 느꼈다. 식사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었고, 괜히 배가 부르다는 느낌이 왔다. 뭔가 감사한 느낌에 자꾸 메시지와 메일을 들여다본다. 드디어 내 인생의 진정한 1막 2장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괜한 말은 아니었다. 나는 다시 이삼십대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준비할 일이 많았다. 인성검사에 체력측정, 면접까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 있었다. 먼저 인성검사는 예전에 겪어보지 못한 것이라 자세히 살펴보았다. 나름의 내린 결론은 '솔직함'이었다. 거짓반응과 과민반응, 의도반응을 심사하는 인성검사는 잘하려는 생각은 버리고, 내가 누군지를 보여주는 검사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일관성 있게 솔직해야 한다. 먼저 테스트를 하려니 유료버전이 대부분이었다. 결제를 하고 맛보기 인성검사를 해봤다. 과연 결제를 한만큼의 느낌을 받는다. 절대 의도하지 말고 보자마자 이해하고 누르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 이찌보면 문해력 테스트 같기도 하다.



실제 인성검사는 링크를 보내줘 시험 보는 식이었다. 온라인 시험이라 방문을 걸어 잠그고, 집중해서 노트북의 창을 연다. 모의 테스트보다 선택시간이 짧았다. 문항도 삼백건이 넘는다. 눈을 부릅뜨고 화면에 집중해 80여 분 만에 검사를 끝냈다. 나름 솔직히 검사를 끝냈으니 뒤돌아 볼 것도 없었다. 드디어 내일은 체력검증을 하는 날이다. '국민체력 100 3등급 이상'이니 일반적인 생활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체력이 양호한 수준이면 되는데 체중이 걱정된다. 스텝밟기 과정은 유튭 화면으로 보니 중심을 잘 잡고, 오르락내리락 무릎관절을 펴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에 밖으로 나갔다. 마침 비도 오고, 집 근처 체육공원엔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오르락내리락하기에 좋은 기구가 있어 우산을 쓰고 연습을 해봤다. 아직 관절에 무리는 없기에, 별로 힘도 안 들고 그런대로 할 수 있겠다 싶었다. 65세까지 정년을 보장하는 정규직이기에 나름 욕심이 생긴다. 돈은 일단 문제가 안된다. 내 또래의 남자들은 인정하겠지만, 직장 없이 하루하루의 루틴은 망가지기 쉽다. 그동안 나름의 각성으로 운동과 학습을 위해 아침 8시면 자동으로 몸을 일으켜 도서관 자료실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유난히 더운 여름날 해가지면, 집까지 4킬로를 걸어서 갔다. 집에 와 샤워 후 느끼는 감정은 무언가 해냈다는 뿌듯함이 한동안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활의 결과물이 잡히지 않으면 종종 자괴감이 들곤 했다.



체력측정은 의외로 별것 없었다. 혈압과 악력을 측정하고, 스텝밟기라고 일정 패턴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수준의 검사를 한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테스트장까지 가서 오는 길은 나름 상쾌했다. 다음은 최종 면접을 준비해야 한다. 지원회사에 대해 너무 아는 것이 없었다. 최소한 나의 지원분야에 대한 상식은 갖추어야 했다.

지원한 데는 기업형 공기업이었다. 일단은 홈페이지를 통해 기본적인 사항을 숙지해 나간다. AI를 통해 자료를 통합하고, 추스르며 예상질문과 압박면접에 대한 준비도 할 수 있었다. 30년 전에 취업을 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방식은 달라졌고, 시대도 변했지만 사람의 마음가짐은 달라지지 않는다. 조바심도 감출 수 없었다. 이 삼일 후 드디어 면접이 내일로 다가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또 다른 삶을 위하여(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