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또 다른 삶을 위하여(7)

어떤 깨달음

by 포레스임


한동안은 이런저런 검색을 되풀이하였다. 며칠 동안은 내가 실수한 것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시 생각은 생각일 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감도 점점 떨어져 가고, 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 직종을 눈여겨보기도 한다. 그럴수록 나 자신에 대한 회의만 깊어갈 뿐이었다. 자료실 밖은 비가 오고 있었다. 머리도 식힐 겸 걷고 싶었다. 우산을 들고 한참을 서성이다 밖으로 나갔다. 빗줄기는 가늘었고 식어진 바람도 그럭저럭 불어오고 있었다. 생각은 생각을 바꿀 수없다.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미치자 다음 스케줄이 생각났다. '뇌건강 지키기' 강의를 초등학생 대상으로 봉사 활동을 하기로 한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광역치매센터에서 연금공단과 협업하여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뇌건강에 관한 중요성을 일깨우는 교육인데 재취업도 중요하지만, 뭔가 의미 있는 봉사를 하자 싶어 도전하는 활동이었다. 그동안은 몇 번의 집체 회의와 교육을 받았지만, 실교육은 두어 달이 지난 후 연락이 왔다. "선생님! OO구의 학교 두 곳을 좀 해주실 수 있을까 해서 어렵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내가 사는 곳의 학교를 지원했는데 1시간 거리의 OO구를 해달라니..., 어렵게 전화를 한다는 그 목소리에 흔들려 수락하고 말았다. 준비를 해야 한다. 다시 자료실에 돌아가 PPT를 열어 보았다. 말투부터 아이들이 알아듣고, 다정하게 설명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감이 급증했다. 슬라이드를 넘기면서 아이들에게 해줄 멘트를 삽입해 보았다.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다 쓰고 막상 되뇌려니 낯간지러웠다. 그냥 나는 나답게 아이들에게 성의껏 말하기로 했다. 누구나 사회적 페르소나를 지니고 있지만, 다른 이의 가면은 나에겐 부담일 뿐이다. 강의용 카드를 만들기도 하고, 첨언해 줄 말도 챙겨 보았다. 뒤늦은 나이에 방송대를 입학하고, 두 개 학과를 졸업하는 동안 나는 내내 스터디팀장을 맡았었다. 온라인 대학의 특성상 혼자 공부를 한다지만, 사실 그렇게 해서는 졸업이 가망 없다는 말을 듣고서 시작한 일이었다. 실제로도 스터디에 참여한 분들은 거의 졸업을 하였다. 그 외의 분들은 존재감 없이 흩어져 버렸다. 지역대학 국어국문학과 입학생 96명 중에서 4년 만에 졸업생은 10명뿐이라고 한탄하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인을 상대로 하는 학습은 익숙했으나, 아이들은 생경했다. 그러니 더럭 겁이 났다. 밀어붙여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대로 준비는 그럭저럭 해봤다. 사실 강의는 현장의 분위기, 청강생들의 숫자나 이런저런 요소가 복합적으로 좌우하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이 하는 일은 아무리 철저한 준비가 되어 있어도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뇌강의 수업이 있는 당일 학교를 향해 방향을 잡았다. 아침의 1, 2, 3교시를 맡았으니 일찍 서둘러야 했다. 길은 막히고, 넉넉잡고 두어 시간 전에 출발을 했어도 30분 전에 겨우 도착을 했다. 수업은 나 때와는 달랐다. 40분 수업에 10분 휴식, 시간표가 익숙하지 않았다. 4학년 수업이 있는 4학년 연구실에서 교실로 자리를 옮겼다. 아이들은 오늘 첫 수업이고, 나에겐 첫 강의니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몰려들었다.



교실문을 열어젖히니 아이들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얼굴에 최대한 미소를 장착하고, 실제로 아이들을 보니 미소가 피어올랐다. 담임 선생님의 소개로 단상에 서니, 약간의 흥분과 미묘한 감정이 올라온다.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오늘 수업의 내용을 소개했다. 절반은 뇌발달에 관한 내용이라 아이들은 흥미진진하게 집중을 한다. 13살(중학교 1학년)이 되기 전에 독서습관을 기르고, 창의적인 놀이와 체험학습 그리고 의미 있는 대화를 통해서 지능지수(IQ)가 확정된다는 말에 아이들은 심각해졌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나의 이야기에 아이들은 눈빛으로 수긍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맨 앞줄의 한 여자아이는 질문을 한다. "선생님! 공부나 책 읽기가 싫증이 나고, 잘 안 돼도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죠?" 아이는 자신의 확신을 나와 여럿에게 공인받으려는듯한 질문을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적으로 맞는 말이라고 추켜세워 주었다. 그 아이의 질문 아닌 질문은 나의 가슴에도 화두로 꽂혔다.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나의 감정은 나만의 것일 뿐,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 나는 오히려 교실문을 나서며 배우고 있었다. 11살 아이의 말이 수업을 끝내고 학교를 나갈 때까지 내내 잊히질 않았다. 나를 일깨우는 스승은 어디에나 있었다. 모든 것을 새롭게 다시 시도해 보기로 했다.



자존감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 나는 나다워야 했다. 다른 이들이 모르는 나만의 특장점은 나의 고유한 특성이기 때문이다. 나는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이도 숫자에 불과하다. 나는 여전히 리듬을 타고 싶었다.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영화 '인턴'에서 그는 이력 영상을 만들며 말한다. "뮤지션은 가슴에 음악이 흐를 때까지 일한다고 합니다. 제 마음에도 음악이 흐른다고 느낍니다! 그건 확실해요!", '경험은 결코 늙지 않고,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주로 했다. 그것은 AI도 할 수 없는 나만의 본성을 가진 일이다. 나는 아직 일할 수 있고, 현역으로 뛸 수 있다. 아이들에게 한, 내 말이 귓전을 때린다. 생각은 모든 것을 바꾼다. 나는 좀 더 긍정적이고, 열정적으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또 다른 삶을 위하여(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