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탄생(1)

1990년 3월 여의도 K사에서 온 DM

by 포레스임


뭔가를 찾으려 서랍을 뒤진다. 너무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은 서랍이 있었다. 심드렁하게 별 기대 없이 연다. 역시 내가 찾는 물건은 없다. 그런....... 데, 상당히 낯익은 그리고 아득한 시절의 얇은 수첩과 그 갈피에 내가 만든 DM 한 장이 있었다. DM(Direct Mail)은 세일즈맨 개인이 자신이 담당한 고객들에게 발송하는 안내 우편물이다. 그 당시 나는 절치부심의 시간을 DM문구에 새겨 넣고 있었다. 그 문구를 다시 보니 많이 팔기가 목적이었지만 여전히 나는 감수성에 호소하는 여린 감성의 풋내기 영업사원이었다. 어렴풋이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어떻게 이쪽 분야에 지원하게 되었나요?" 면접관이 묻는다.


"공고 자동차과를 졸업하고 군생활을 수송부 하사관으로 근무했으며.............,멋진 카세일즈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면접관 중 한 명은 박수까지 쳐주며, 어디서 근무하겠냐는 말까지 보탠다.


"기왕이면 여기 본사에서 근무하고 싶습니다!"


말 그대로 본사 판촉부에 배치받았다. 여의도 국회 바로 앞의 흰색의 빌딩인 본사는 고고한 자태가 그 당시 나를 매혹시켰다. 사실 영업사원에게 사무실이나 소속의 위치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얼마 후, 바로 깨닫게 되었다.


"여러분들은 우리 K자동차의 얼굴입니다! 자긍심을 가지고 영업에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


ROTC출신의 김 과장님은 유하면서도 강단이 있어 보였다. 장교로 직업군인 출신인 점도 나와 어느 정도 비슷했다. 하루의 활동지원비 오천 원을 지급받고, 빌딩가를 나섰다.


오후에 사무실로 복귀하기 전까지 명함 50여 장을 얻어와야 했다. 그러자면 그 50명과 안면을 트고 몇 마디의 말이라도 하자면 시간이 촉박했다. 입사동기들 10여 명은 서로들 귓속말을 주고받다, 나에게 말했다.


"임형도 우리하고 같이 움직입시다! 어차피 해야 하는 영업인데 급할게 뭐있수!"


나보다 서너 살은 위로 보이는 Y는 근처 커피숍으로 무리를 데려갔다. 서로 눈치만 봤지 수인사도 없었던 터라 그럴 필요성이 있었다.


차 한잔씩 시켜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학벌들이 참 대단했다. 웬만한 서울시내 대학들 이름이 다 나왔다. 괜히 주눅이 들었다. 한편으론 영업을 하는데 그렇게 지난 학력사항이 필요할까 싶은 생각도 든다. 벌써 한 시간째가 지나고 있어 마음이 급해졌다.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50명 이상은 만나봐야 할거 같아서요!"


분위기를 망친 거 같았으나, 다들 동감하는 눈치였다. 동기 중에 C는 자기와 같이 다니자고 제안한다. 내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무턱대고 아무 건물이나 들어갈 순 없었다. 보안이 철저한 방송국 건물은 일단 제외시키고, 꿈은 크게 가지라고 우린 63 빌딩을 호기롭게 선택했다.


보험사와 오퍼사무실이 들어찬 건물이고, 관광목적의 내방객이 많은 관계로 명함 50장 정도는 우습게 얻을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로 오르는 동안 기압차 때문에 귀가 먹먹해 왔다. 55층부터가 일반 사무실이었다. 고층건물은 약간의 흔들림을 감지할 정도로 몸이 마음과 같이 고정되지 않았다.


C와는 1층의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각층 반대편의 사무실만 공략하기로 했다.

심호흡을 하고 나는 S보험사 기획실로 들어갔다.

선배들에게 교육을 받은 대로 맨 안쪽의 높은 직급의 사람에게 인사부터 한다.


"K자동차의 임오구라고 합니다! 신모델 홍보차 인사 좀 드리고자 찾아뵈었습니다!"


마이카 붐이 전국을 휩쓸 정도로 드디어 차 한 대정도는 가질 만큼의 경제여건이 된다고 했다. 다른 영업과는 다르게 자동차 영업사원은 잡상인 취급은 안 했다. 카탈로그를 유심히 보던 부장님은 선선히 자기 명함을 내준다.


다음은 과장님......, 자리에 없었다. 결재라인처럼 안쪽부터 인사를 하고 나오니, 그 다음 직원들은 선선히 인사를 받아주고 카탈로그에 관심도 보인다.


첫 사무실에서 10명의 명함을 얻었다. 왠지 별거 아닌 것처럼 생각이 되었다. 나름 50장이 아닌 100여 장의 명함을 목표로 좀 더 어깨를 펴고 다른 사무실로 들어섰다. 또다시 겁 없이 맨 안쪽으로 들어섰다. 임원급의 사람으로 보였다. 전화기부터 든다.


"여기... 상인들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지!"


뭔가 틀어지고 있었다. 급하게 젊은 직원 둘이 내 팔을 하나씩 붙잡는다.

"하!...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요!"

"죄송합니다!" 주소를 잘못짚은 거 같았다.


오기 같은 게 발동을 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옆의 비상구로 내려갔다. 바로 아래층 비상구 문의 손잡이를 틀었는데 열리질 않는다. 그 다음 층도 다시 내려가 그 다음 층의 문도 잠겨있었다. 하릴없이 계속 걸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안 탄 걸 후회하고 있었다.


아직도 35층이나 남았다. 문득 내가 하는 일이 만만치 않음을 초장부터 느끼고 있었다. 어두운 비상계단길 만큼이나 앞 날도 순탄치 않겠다고 느꼈다.


누군가 계단에 앉아 있었다. 40대쯤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외모는 깔끔했고 사각진 가방이 무거워 보였다.


"무슨 영업을 하다가 이리 내려오는 거유?"

"아!.... 자동차요! 근데 어디까지 내려가야 비상구가 열릴까요?"

"20층부터 열린다고 합디다!"


큼직한 무선전화기를 흔들어 보이며 말한다. 우린 삐삐정도만 지급받았는데 괜찮은 매출의 회사라 생각되었다. 화장품 외판원 직원이었다.


나야 카탈로그 정도의 서류가방이니, 좀 들어주는 게 예의 같았다. 제법 묵직하다. 비상구가 열리고 휴게시설이 보였다. 급하게 물 한잔을 들이켜는 나에게 몇 마디 던진다.


"나도 길거리 영업하다가 처음 빌딩을 탔었는데, 까칠한 년 하나를 잘못 만나서 이모양이우!"

"다음부터는 미리 조사하고 와야겠어요!"

"조사한다고 누가 일러주겠수! 하루 일진이지!"


일진(日辰)? 내가 하는 일이 그날의 운세에 따를 만큼 불안한 일이란 생각을 해봤다. 1층 로비로 오니 C형이 기다리고 있다.


"임형! 일 많이 했나 봐? 난 바로 쫓겨나 이제껏 기다렸어!"

"저도 첫 사무실만 좀 했지, 나머진 영 꽝이었어요!"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근처 먹자 빌딩의 설렁탕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다음 행선지를 고민했다. C는 나에게 봐둔 곳이 있으니 그리 가자고 한다.


방송국 옆의 광복회관이라는 명칭으로 봐서 관변단체 빌딩 같았다. 둘이 들어가다 금테를 두른 팔에 제동이 걸렸다.


"어디들 가십니까?" 행선지를 경비가 묻는다.

"여기 10층에 약속이 있어서 갑니다!" C가 당당하게 답했다.

"여기를 좀 보고 말하시지! 8층짜리 건물에 10층이 어딨어!" 우리 둘은 서로 얼굴을 쳐다본다????


어느 선배가 이래서 같이 다니지 말라고 했었다. 자기 생각을 남에게 의존하면 꼭 우스운 일이 생기곤 했다. C는 나와는 조금 다른 부류의 사람 같았다. 엉뚱하기도 하고 저돌적인 건 좋은데, 아무튼 각자 활동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흔히 '초방'이라고 하는 이 활동은 아무런 연고 없이 가망고객을 만드는 작업이다.


처음부터 아는 사람을 찾아다니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사람도 비루해지고 연속되는 고객확보도 어렵다고 한다. 크고, 넓게 그물을 치라고 했다. 하긴, 갓 군대를 전역한 나에게 아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설사 있다고 해도 찾지는 않을 것 같다.


전역 후, 노량진을 기웃거리며 무엇인가 시험준비를 하고 싶었다. 집안형편이 그렇게 나를 여유 있게 놔두지 않았다. 부모님이 하던 식품점 건물이 차압을 당하고, 설상가상으로 아버진 중풍으로 거동이 힘들었다. 공부를 채 마치지 못한 동생이 둘이나 있었다.


누구에게나 삶은 반짝이는 유리구슬처럼 깨지기 쉬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제 시작이었다. 굳이 이길로 들어선 이상 나는 반짝이고 싶었다. 매 순간이 불안하지만 돈은 너무나 매혹적인 목적 그 자체였다.


지방에서 6개월여를 모기업의 수금사원으로 다니다 본격적인 영업의 길로 들어섰다. 이미 배수의 진을 치고 시작한 일이다. 나에게 퇴로나 선택의 길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사회의 첫발을 무한경쟁의 링부터 시작을 했다. 이곳은 밀림의 정글과 다르지 않았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다음 건물로 올라갔다.


※ 작중인물의 실명은 편의상 붙인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