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탄생(2)
첫 계약&....,그리고
입사하고 일을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째다. 하루 100여 장의 명함을 얻다 보니, 명함파일이 벌써 꽉 찼다. 1층 문구점으로 잠시 내려가 파일을 하나 더 사러 간다.
"임오구 씨! 차 한잔 할까?"
사무실로 돌아오는 오대리님이 나에게 말했다. 대리급 영업사원 중에서 내가 제일 본받고 싶은 선배다. 자기 주관이 확실하고, 판매실적도 수석과장을 앞설 정도로 굉장하다.
"잘하고 있는 거야! 동기들은 벌써 계약건수가 들어온다고 조급해하지 마!"
오대리님은 나를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동기들은 벌써 지인판매든, 무슨 판매든 계약서를 접수시키고 의기양양하게 사무실에 들어선다. 나는 아직 명함 얻기에도 급급한데 말이다.
"세일즈맨은 다시 태어나는 거야!"
차를 서둘러 마시고 한마디 하고는 총총히 사무실로 올라갔다. 세일즈맨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직업이라고 했다.
사무직이나 기술직 등은 주어진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적용이나 활용해 시간을 때우면 된다. 영업은 그럴 수 있는 직종이 아니란다. 수많은 경우의 사람을 파악해 수익과 연결시키는 고도의 작업이라고 오대리님은 말했다.
다시 한 달이 지나고 있다. 동기들은 오후에 사무실로 들어오면, 계약 접수부터 시키느라 바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명함만 챙기고 있었다. 급여일에 나는 기본급 오십만 원이 찍힌 통장을 바라봤다.
턱없이 낮은 금액이다. 한 달을 또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갈급한 쟁이의 심정이 이해된다. 그런 생각을 하며 복사기 앞으로 간다. DM이 완성되었다.
지점장님이 나를 부른다. 들어가니 음료수 한 잔과 하루의 일과를 묻는다. 초방으로 보내는 하루를 말했다.
"임오구 씨! 하여간 열심히 해봐요!"
왠지, 너는 왜 실적이 없느냐는 핀잔으로 들렸다.
다음날 복기하듯이 그동안 인사를 갔던 분들에게 다시금 재방을 하기로 했다. 대한○○협회, 코리아유리, ○○빌딩, ○○생명 어딘가에 가망고객이 있을 것이다. 명함의 회사들을 고민했다.
한편으론 여의도가 밀집된 레드오션이 아닌가 싶어, 다리 건너 전자상가, 공구상가도 한 번 돌았다. 오늘은 공구상가를 돌기로 했다. 오전 9시 반 사무실을 나섰다.
공구상가의 점포수는 오백여 개가 넘는다. 지난번에 절반쯤 인사를 한 곳도 찾고, 나머지 점포의 사장님들께 초방도 할 예정이었다. 하늘이 흐렸다.
기분도 상쾌하진 않았다. 상가의 오전은 무척 분주해 보인다. 1톤 트럭이 끊임없이 물건을 내리거나 싣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왜 귀찮게구냐는 표정들이다. 하릴없이 다음 동으로 이동을 하니 벌써 점심시간인 듯했다.
1층에 구멍가게가 있었다. 김밥과 라면도 파는 것 같았다. 들어가 김밥 한 줄과 라면을 시켰다.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면 시간이 깨진다. 동기들은 나보고 밥 한 끼 하자고 하지만, 세일즈맨은 가망고객이 아니면 같이 식사를 해선 안된다고 배웠다.
정장에 가방을 든 나를 힐끗 보곤, 라면그릇을 놓고 아주머닌 한마디 한다.
"아까도 건너편에서 왔다 갔다 하시더구먼, 뭘 파슈?"
"예!..... 자동차 팔러 다녀요!"
"그런 것 같아서 묻는 거유! 거...있잖우 하나 줘보슈!"
"뭘?..... 아!.. 카탈로그요?
"우리 아들놈이 하나 필요해서....., "
불현듯 내가 사람 가려가며 초방을 다니는 건가 하는 반성모드가 떠올랐다.
수십 개 회사를 거느린 그룹의 회장이나, 길거리 장사를 하는 개인 사업자나, 나에게 다를 건 없었다. 크게 하건, 작게 하든 결국 사고파는 일의 규모일 뿐이다.
승합차에 관심을 보이는 가게 주인께 열심히 설명을 한다. 이런저런 특장점을 얘기하던 중,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한다.
"그럼......, 단점은 뭐래?"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런 것은 따로 정보도 없고, 들은 적도 없었다. 난 나름의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내가 맘에 드는지, 다음에 아들이 있을 때 한 번 더 들르라고 연락을 준단다.
다른 회사 제품과 비교검토가 필요했다. 객관적 데이터가 없으면 내가 팔려는 자동차의 단점을 알아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3과의 동기인 M이 두대나 계약을 한 모양이다. 박수를 쳐대고 "으쌰!"소리가 경쾌하게 사무실을 맴돌았다.
M은 전직 ○○전자의 영업출신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누구보다 감이 빨랐다. 우리 김 과장님은 눈길을 나에게 돌린다. 얻어온 D사와 H사의 제품을 비교하느라 정신없는 나는, 곁에 온 과장님을 인지하지 못했다.
"비교해 봐야 고객한테 정확히 설명할 수 있지! 잘하고 있군!"
다른 과에 배속된 동기들보다 판매실적이 더딘 나를 은근히 답답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두 달이 다 돼가고 있다. 요즘은 재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 달 전에 봤던 가망고객 명단을 작성해 안부도 묻고 구매의사도 들어본다. 두 번째 봐서인지 낯가림도 줄었고 던지는 말에도 여유가 있었다.
○○빌딩의 10층에서 내렸다. 그룹 계열사로 보름 전에 초방을 했었다. 복사지를 캐리어에 싣고 옮기는 여직원이 힘에 부쳐 보였다. 얼른 내 가방을 올려놓고 밀어준다. 사무실 탕비실로 옮겨 놓으니 음료수 한 잔을 내민다.
"K자동차 영업하시죠?" "네!"
"저쪽 구대리님한테 좀 가보세요!"
역시 재방의 효과는 있었다. 구대리를 찾아 인사를 하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응접실로 데려간다.
"선수금 50% 상장어음 결제 조건이고요!..., 나머진 10개월 무이자로 15대 견적 좀 부탁해요!"
순간 머리를 뭔가에 얻어맞는 거 같았다. 무려 한 두대도 아닌 15대였다. 자세한 내역이 궁금해 구대리에게 물었다. 그룹에서 CVS 편의점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다. 속으로 이건은 굉장히 접근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견적을 미친 듯이 뽑았다. 드디어 나도 첫 계약을 한다는 생각과 그것도 홈런에 가까운 대박계약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상장사니까 어음 문제는 괜찮은데, 10개월 무이자는 내가 결정할 건이 아니었다. 근처에 사무실이 가까우니까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일단 나왔다.
사무실 지점장실로 들어가 상세한 얘기를 하고 결제조건을 말했다.
"드디어 늦은 만큼 큰 건으로 하시누만!......., 오케이!! 본사에 회신 넣어 그 조건으로 출고하게 할 테니 마무리 잘해!!"
다시 N사로 가서 마무리 계약을 했다. 첫 계약이었다. P모델의 VAN을 무려 15대나 한꺼번에 계약을 해낸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앞으로 추가 계약이 있을 것 같았다. 신규사업인 관계로 추가 매장이 오픈하면 계속 부탁한다고 했다. 지난 두 달 동안의 활동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사무실로 들어서니 회의시간인 듯했다. 지점장이 나의 손을 잡아 가운데로 인도했다. 이미 계약완료를 전화로 보고 한 상황이었다.
"오늘 임오구 씨가 M그룹 계열사 신규사업의 차량 15대를 계약했습니다!
앞으로도 50여 대를 추가로 구매한다고 신규사업팀에서 확인했습니다!"
"임오구 씨! 그동안의 활동내역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교육차원에서 좀 해봐요!!"
얼떨떨할 뿐이었다. 갑자기 나보고 교육차원의 말을 하라니....., 여기는 말 그대로 실적이 모든 것의 달란트인 마당이었다.
"아직 부족한 저를 선배님들이 끌어준 덕분에 오늘 같은 계약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더 열심히 배워 좋은 실적을 내겠습니다!!"
박수소리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동기들도 진심으로 축하해 준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담당 김 과장님이 빙그레 웃으며 악수를 청하신다.
"임오구 씨! 지금부터 정신 바짝 차려야 해!......, 나중에 일러줄게!"
김 과장님은 무언가 해줄 말씀이 있다고 했다. 분위기에 들뜨지 말고 차분하라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뜻을 알아채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