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탄생(3)
영업으로 그렇게 깨닫는 것들
N기업으로 출고하기로 한, 약속일자가 다가오자 좀 불안해졌다. VAN차량의 생산량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점장님도 공장으로 연락을 하지만 거시적 계획의 품목별 생산량을 어쩌진 못한다. N사의 구대리는 나에게 확인에 또 확인을 하니 초조함이 다른 일을 못하게 하였다.
"지금부터가 문제야! 초연하게 하던 일을 해! 다 겪어봐야 깨닫게 돼!"
김 과장님은 나에게 평소 하던 일을 하라고 조언했다. 계약건은 잊고 다시 재방에 나선다. 출고가 자꾸 발목을 잡지만,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근처 빌딩, 무도(舞蹈) 협회 사무실 앞에서 잠시 주춤거렸다. 들어가 봐야 춤추기들 바쁘기도 할 테고, 전문 강사로 이루어진 인원구성이 숫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왔으면 들어오시지, 왜 서 계세요?"
여자 원장님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나에게 한마디 한다.
"예! 혹시 연습 방해하는 건 아닐까 해서요."
"호호호! 차 영업하시면서 가리는 것도 많네!..., 마침 잘됐네요! 들어가 차 한잔 하세요!"
홍차 한 잔을 내주며, L그룹의 사람들하고도 거래를 해봤냐고 묻는다. 아직 거기까지는 못해봤다고 솔직히 말했다. 나에게 명함을 하나 준다. 살피니 L그룹 부회장 비서실장의 명함이었다.
나에겐 엄청난 명함이었기에 영문을 몰랐다.
"우리가 왈츠강습 출장을 나가요! 그룹회사의 사모님들과 정치가 사모님들이 우리 강습 회원분들이 꽤 있어요!..., 그 명함의 비서실장이 부회장 사모님 차량을 알아보더라고요!!"
속으로 이게 뭔 소린가 했다. 그러니까 상류층들의 사교모임에서 왈츠를 주로 추는데, 이 학원장이 서로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듯했다. 전화로 약속까지 잡아주니 궁금증이 커져간다.
"원장님! 제가 이제 겨우 두 번째 뵙는데....., 제가....., 무슨....."
"말 어렵게 하시네! 왜 이런 소개까지 해주느냐...., 그 말하고 싶으신 거죠?"
"네.....?"
"그냥 동생 같아서......, 호호호!"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원장은 교양 있어 보이면서도 농염해 보였다. 개운하진 않았지만 가보기로 했다.
L그룹 현관 앞에 서니, 바로 경비원들의 절차에 따라 질문과 응답을 하고서 방문처의 내락을 받고서야 안내를 해준다. 맨 위층 비서실로 들어섰다.
실장인 듯한 분이 우리 회사와 협업관계인 미국 F사의 머큐리와 타운카를 계약하자고 한다. 부회장 사모님들의 세컨드 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하루 이틀사이에 내 영업활동이 화려해지고 있다.
사실 F사의 외제차는 영업 과장급들도 일 년이면, 겨우 한 대정도 계약을 할까 말까 하는 희귀한 경우에 속했다.
그런데 얼마 전 다량계약을 한, 내가 대행판매 차량인 외제차를 두대나 계약을 한 것이다. 무도학원 사무실로가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미스터 임! 그걸로 끝이 아녜요!...., 여하튼 수고했어요!"
나는 90도 각도로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도 의문점은 가시지 않는다. 왜???........, 나한테 바라는 게 있을 텐데?......, 일단은 좋았다. 다른 생각으로 나의 획득물을 폄하하고 싶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삐삐가 온다. 전화를 해보니 공구상가 구멍가게 아주머님이다. 아들이 왔으니 좀 들러달란다. 먼 곳이 아니니 핸들을 돌려 다리를 건너갔다. 일전의 승합차 계약을 마쳤다. 주문진에서 건어물을 띠어다 파는 용도로 쓴다고 한다.
대기업 사주(社主)의 부인들 외제차 두대와 길거리 장사를 한다는 승합차까지 3대의 계약을 했다. 기분이 묘했다.
나의 고객들은 어디에 있을지 모른다. 오징어 장사나 전자제품 사업이나 이익을 위한 인간의 활동이다. 나 또한 그런 이들의 기대를 기동력으로 충족시키는 장사를 하는 셈이다.
자본사회의 가장 정점의 사람들부터 이제 시작하는 길거리 사람들까지 이 일은 은근히 매력이 있었다. 사회를 보는 눈이 새로워졌다. 사무실에 도착해 계약접수를 시키니, 미스 추가 한마디 한다.
"오홋! 이건....., 축하합니다! 굉장하네요!"
N기업에서 연락을 달라는 말도 덧붙인다. 구대리에게 전화를 하니, 퇴근 후 저녁이나 하잔다. 드디어 고객과의 식사라는 생각에 조금 흥분되기도 했다. 과장님께 말하니 무표정한 얼굴로 읊조리듯 말한다.
"지금부터 계산을 잘해야... 할 거야!.. 물론 오늘 저녁식사는 임오구 씨가 계산하고...., 너무 요란한 데는.. 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영업의 3원칙이 있다고 했다.
시간, 돈, 건강........,
시간은 배정을 잘해 자기 주도적으로 활동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고객이라도 스케줄의 객체일 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끌려다닌다고 했다.
돈문제는 세일즈맨은 순수 급여생활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자신의 판단이 손해로 이어지기도 하고 이익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어쩌면 제일 중요한....
건강 문제가 중요하다고, 오래 한 선배들이 말했다. 규칙적인 식사가 불가능하고, 스트레스와 술 등이 건강을 갉아먹는 주범이라고 한다. 나는 아직 젊었다. 군 생활을 갓 마친 26세의 청춘은 아직 두려울 게 없었다.
N기업의 구대리와 경양식 집 '스페인 하우스'로 갔다. 맥주와 스테이크류의 식사가 나왔다. 구대리는 출고에 이상은 없겠냐고 물어본다. 조금 걸리는 게 있었지만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맥주를 따랐다. 몇 잔의 맥주가 오가자 구대리는 희한한 말을 한다.
"임오구 씨가 왜 우리와 계약을 한 줄 아슈?"
"글쎄요?...., 아무튼 감사한 일이죠."
"두 번 본거!...., 후!... 아니우!..... 임 씨라서 간택당한 거우......, 뭐든지 결국은...... 그놈의 간택이거든!!"
N기업은 임 씨가 아니면 과장진급도 힘들다고 했다. 모든 영업상 구매도 임 씨로 채우라는 불문율이 있다고 한다. 설마 하면서도 짐작은 갔다. 그런 기업이 한둘이 아니었다. 대기업이면서도 그런 식의 인사 시스템을 갖는다는 게 참 우스웠다.
"사실.... 공정성은 없는 거유! 선택의 문제에 따른 간택이 있을 뿐이지....., 사회생활 철칙이우!!"
"그럼 나 같은 놈은...., 뭘...., 챙겨야겠수?"
취한 구대리가 말을 이어갔다. 드디어 본론이 나오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들어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다음 날, 과장님과 논의를 했다.
"서비스 품목은 모두 제외하고, 판매수당 절반은 봉투로 줘버려! 그래야 후속타를 기대할 수 있어!"
법인판매는 되도록이면 피하는 이유를 김 과장님은 말하고 있었다. 속 빈 강정일 확률이 많다는 말도 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동반해 커진다고 했다. 나는 시작이었고, 결과는 아무래도 좋았다. 아직 쓴맛을 보기엔 세상이 만만해 보일 나이였다.
N기업의 P모델 차량 15대가 제날짜에 출고되었다. 후속 작업이 바빠졌다. 정비기사와 같이 가 점검작업을 하는데, 구대리가 나를 부른다. 사무실에서 그는 10대의 차량을 추가주문 하였다. 그동안 신규매장이 늘어난 탓이다. 그리고......, 나는 봉투를 준비했다.
과장님 말대로 판매수당 절반이 담긴 봉투였다. 흠칫 놀라는 구대리에게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싫지 않은 표정의 그를 보면서,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공생의 법칙이 좀 씁쓸했다.
며칠 후, L그룹 비서실로 인계될 미제차 두대가 나왔다. 본사로 기사를 데리고 오겠다고 한다. 광택작업까지 마친 두대의 차량은 으리번쩍했다.
사실 이것도 남는 게 없었다. 바닥 매트도 최고급으로 요구했고, 이런저런 서비스 품목과 왁싱광택작업 비용까지 결국 내 호주머니에서 나간다. 비서실장은 기고만장을 해서 오자마자 차량상태는 건성으로 보며 말한다.
"K사 이거 안 되겠네!.. 전사적으로 회장도 나와서 인사해야 하는 거 아냐!!"
뭔가 배배 꼬인 듯 한 말투다! 내가 또 뭔가를 헤아리지 못한 것이 있나 생각했다. 하지만 더 이상 생각하기가 싫었다. 기사들에게 상투적인 인계절차를 마치고 키를 건넸다. 첫 거래부터 기죽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주차장 모서리에 세워진 승합차만 인계하면 되었다. 전화상으로 차주는 예상보다 차가 빨리나 왔다고 좋아한다. 이런저런 요구사항도 없었다. 인계를 하고 출고된 차량의 개인적인 계산을 뽑아봤다. 결국 승합차 한대의 계산이 가장 좋았다.
앞으로 남고 뒤로는 손해를 본, 법인판매나 외제차 판매도 계산만 복잡할 뿐, 나에게 실질적인 이득은 없었다. 결국 어렵게 차를 사는 서민에게서 이득이 나온다. 뭔가 불합리했다.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사회에서 좀 나간다 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철두철미 빈틈이 없었다. 오히려 없는 사람일수록 허술한 면이 많았다. 그렇게 그 틈새 속에서 영업을 해야 한다. 무도(舞蹈) 협회 여성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