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가 없던데?” 생일에 남편에게 엎드려 절받기로 장미를 사달라고 했다. 집 근처 농협마트에는 꽃을 싸게 팔고 있었다. 농협에 꽃은 싼 가격에 비해 풍성하고 좋았다. 농협 안으로 들어가 보니, 화사한 연분홍 장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아휴! 니 아빠가 이런다. 장미는 빨간건만 장미인줄 알아.” 딸아이에게 남편 핀잔을 대신 주었다.
장미는 사랑의 매개체이다. 특히, 붉은 장미는 한창 사랑을 하는 사람이 연인에게 주고 싶은 연정이다. 장미가 붉은 것은 그의 마음이 붉기 때문이다. 붉디 붉은 그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것에 붉은 장미만 한 것이 없다.
생전에 “장미 하나만 잘 그려도 대가가 될 수 있다.”라고 이야기 한 이가 있다. 바로 원계홍(1923-1980)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장미는 좀 다른 느낌이 든다. 대개 장미를 그리는 사람은 장미의 싱그러움에 중점을 둔다. 잘 생기고도 풍성한 장미. 원계홍의 장미는 화사하다고 표현되기에는 묘한 느낌이 있다. 원계홍의 골목그림은 어딘지 고독감이 묻어나지만, 장미는 약간의 포근함을 안고 있다. 원계홍의 주황장미는 좋은 회화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느낌이 있다. 그것은, 고요함 속에서도 반짝이는 것이다. 원계홍의 골목에는 사람이 없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주로 새벽에 나가 풍경을 그렸다. 그는 평소에 예술에 대한 성찰이 탁월한 것에 반해, 사람과 교류를 활발히 맺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를 기인이라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세(勢)를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은자적 풍모를 지닌 것이라 말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가의 세계란 쟁투와 질투, 야망과 절망, 책모와 불성실 등이 소용돌이치는 절망적인 곳이며 거기서 살아남는 자는 선인에 한한다고 할 수는 없다. 끈질기지 않으면 안 되고 또한 겸허하고 탈속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최대의 위험은 성공이라는 것이다. ” - 원계홍의 작가 노트 중-
원계홍의 이러한 생각은 꽃을 보되, 만개한 꽃은 절대 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 소강절의 다짐과 유사한 측면을 지닌다. 예술가의 초심을 흔드는 것은 세속의 성공이라는 것을 원계홍은 생전에 깨닫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세속과 타협하지 않는 그의 성정이 가파른 성장기의 대한민국을 견디지 못했던 듯하다. 그는 1980년, 미국으로 건너갔고, 도착한 지 한달도 되지 않아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의 57세였다. 올해로 그의 탄생 100주년이다. 문득 궁금해 진다. 그가 장수를 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여전히, 골목과 장미를 그리고 있었을까? 그의 골목을 황량함과 고독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언뜻 보면, 에드워드 호퍼의 황량함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의 골목이 마냥 고독해 보이지는 않는다. 특히, <용산우체국>의 경우는 약간의 장식성도 엿보인다. 그의 그림에는 다소의 온기가 포착된다. 건조한 현실 속에 조금의 오아시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매일이 쳇바퀴를 돌고 있고, 누가 떠미는지 모르게 떠밀려 가고 있지만, 잠시 잠깐, 풍경이나 소소한 사물들(레몬, 튤립, 장미, 사과, 꽃바구니)과 함께 하는 기념일 등이 있을 뿐이다. 원계홍은 꽃바구니, 꽃, 정물, 글라디올러스, 튤립 등을 그렸다. 그의 삶에 시간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소재들이다. 아마도, 원계홍에게 신이 특별히 준 선물은 세속의 성공도 부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시간! 은자에게만 허락된 시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