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사서 걱정을 하는 사람이다. 없던 걱정도 만들어 내서, 시간을 낭비해가며 걱정을 해서, 끊임없이 불안해지는, 그런 사람이다. 이는 끊임없는 실패와 빗나간 예측에 의한 경험으로 결정된 성질이다. 별로 좋은 성질은 아니라, 그러지 말자고 다짐해도, 어쩔 수 없이 그러고 있었다. 생긴 대로 사는 게 나쁜 것을 알아차리고 나서도, 여전히 그대로인 나를, 또 걱정했다. 그래서 울상인 내 얼굴에 화도 나고 슬프고 그랬다.
그러나 내가 걱정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상처 받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 걱정의 크기만큼, 덜 슬퍼지도록, 더 덤덤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안도하고자 함이다. 큰 걱정은 생각보다 사건을 별 거 아니게 만들어준다. 지구가 내일 멸망하는데 고작 친구와의 말다툼에서 먼저 사과하는 일이, 그리 큰 일은 아닌 것처럼.
그러던 어느 순간 나는, 예견했던, 몰빵된 불안에 인생을 제대로 맡겼다.
임용고시였다.
2.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다. 사실 잘 보든 못 보든 그저 그랬다. 내 삶에서 큰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얻는 것도 없고 잃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시험이라는 게 얼마나 몸에 악(惡)한 지 느끼게 되었다.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즐거운 공부라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대게 고등학교의 공부는 하나의 수단이라, 버티고 이겨내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그랬다. 성적이란 것을 올려야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기회가 생겼다.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기 위해 배우고 싶지 않은 것들을 배워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아주 잘 배워야 했다. 내가 배우고 싶은 공부를 배우러 대학교를 가려면 배우고 싶지 않은 공부를 고등학교에서 잘 배워야 했다. 그 일은 기회를 줄 타인이 내가 얼마나 성실한지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쉽고 오래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매 시험마다 잠도 잘 못 자고 스트레스성 장염에 시달렸다. 다행히 공부는 한 만큼 늘었고 나는 모르는 만큼 틀렸다. 내가 잘 몰라도, 계획한 만큼 공부를 하지 못해도, 괴로워도 견딜 수 있을 만큼이라 괜찮았다. 나는 그 공부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3.
나는 내가 원하던 대학교에 들어왔고, 하고 싶은 공부를 했다. 교직 이수라는 큰 목표를 가지고 들어온 학과였다. 그래서 학기 내내 큰 맘을 놓을 수 없었고 지금껏 그래 왔듯 시험이란 것에 목맸다.
고등학교와 달리, 원하는 과목을 스스로 선택하고 계획해서 알아서 공부하는 것은 버거웠으나, 하고 싶은 공부라 할 만했다. 괴로워도 견딜 수 있을 만큼만 괴로웠다. 나는 내 노력에 납득할 만한 성적을 받았고 무사히, 고등학교 때 계획한 꿈이란 것을 이루었다. 문헌정보학과에서 교직이수를 했다.
내 꿈은 사서교사다. 그리고 그 마지막 단계는 임용고시 합격이었다. 나는 이제 그 꿈의 문턱에 다다랐고, 이상하게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 시험은, 내 꿈을 이룰 기회였으나, 기회로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잘 살아왔냐고 평가하는 일 같았다. 대답은 오직 '예, 아니오' 뿐인 그 시험에서 만약 "아니오"라는 대답이 들린다면, 내가 멀쩡할 수 있을까 싶었다. 6,7년을 바라보며 해내 온 나의 행위들이 부정당하면 내가 그대로일 수 있을까, 싶었다. 이건 먹고사는 문제가 달린 시험을 넘어, 내 노력을 수치화해서 생의 당락을 결정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붙어야만 했다. 내가 꿈꾸고 바라던 삶이었으니까. 그것을 위해 내가 쏟은 노력이 의미를 잃으면 안 되니까. 내가 잘 살아왔다고 느껴야만 하니까.
4.
매 학기 대학교에서 2번씩 치르던 시험의 양은 새발의 피였다. 나는 1년 간 방대한 분량을 공부해야 했다. 벼락치기로 일관했던 나의 삶에 어울리지 않는 행위를 부추기는 일이었다. 나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일들을 계획해야 했다.
그 시험의 합격과 불합격이라는 선에서 나는 너무나 많은 변화를 감당해야 했다. 나의 생활이 동전 뒤집듯 참 쉽고도 분명하게 바뀌는 일이었다. 꿈과 먹고사는 문제가 결정되는 그 시험을 위해, 나는 모든 것을 불확실 속으로 던져 넣었다. 대학교 근처 공부하려고 계약한, 난생처음으로 생긴 자취방도, 4년 간 일하던 알바 자리도, 친구들과의 만남도, 나의 일상도, 생각도. 모두 끝을 정할 수 없었고, 정하지 않았고, 정리를 하지 않았다. 내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내가 공부하던 평화로운 1년짜리 방은 끝이 정해져 있었고, 그 끝엔 무조건 합격만이 있었다. 있어야 했다. 끝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험에 붙으면 더할 나위 없지만, 떨어지면 나는 갈 곳이 없었다. 그 도시에서 돈을 벌 궁리도 없었다. 무조건 합격해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했다. 내 일상과 달리 그 결정은 변함이 없어서, 부족한 내가 늘 보기 싫었고, 고까웠고, 탐탁지 않았다. 너 이래서 붙을 수 있겠냐, 할 때마다 되겠지, 되겠지, 했다. 거짓말을 주문처럼 하고 다녔다.
막연해서 의지 넘쳤던 초반의 계획들은 예상했듯 막연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려움들은 구체화되었고, 나는 여전히 그냥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어느 기간에는 막연히 미뤄두고 회피했다. 그리고 매일 밤마다 자책했다. 하고 싶던 일이라더니 이게 무슨 짓이냐고. 너는 힘들면 안 되지, 뭐했다고 힘들어. 니가 선택했잖아. 질책했다. 나는 힘든 생각이 들어도 힘들다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내가 하고 싶어 했던 일이니까. 하기 싫어도 내색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5.
마음의 불안은 몸으로 나타났다. 먹은 건 같아도 체중은 빠지고 이유 없이 손이 계속 떨렸다. 시간은 너무 빨라서, 느리게 가라고 하루를 쪼개가며 불안해했다. 내가 미워 우는 시간도 아까웠다. 울어도 뭘 하면서 울었다. 양치하면서 울고 청소하면서 울었다. 시간을 절약하며 나를 자책하고 생활을 꾸려나갔어도, 늘, 못다 한 계획들이 목을 졸라 힘든 밤이었다.
나는 매일매일 실패를 했다. 늘 완벽한 계획은 하루 끝에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다. 뒤돌아서면 금방 보던 내용도 까먹었다. 사실 난 멍청인가, 생각했다. 이렇게 힘든 걸 내가 왜 한다고 했을까, 왜 호언장담을 했지, 차라리 경험이라 치고 가볍게 볼까, 그래서 이렇게 1년을 허비할까, 그럼 내년에 월세랑 생활비는 또 어떻게 하지, 이미 알바는 내년에 관둔다고 말했는데, 내가 또 다른 알바를 할 수 있을까, 거기서 내가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
정해진 일이 없어 나는 늘 불안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고,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자꾸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리고 그 방향을 결정하는 모든 몫이, 현재의 노력에 달려있다는 것이,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숨 쉬듯 공부만 하는데 자꾸만 모자랐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불안에 의해 멈춰버린 머리는 배웠던 것도 까먹어서 새로웠다. 모르는 것도 처음 봐서 새로웠다. 아는 건 됐고, 모르는 것을 알려하다보니 아는 것을 애매하게 모르게 되었다. 한 번 알았다고 영원히 아는 것이 아닌데, 나는 한 번 보았다고 왜 영원히 알지 못하냐고 나를 탓했다. 공부를 하는 만큼 멍청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시험이 더 많이 나오면, 그래서 내가 틀리면, 그래서 내가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알고 있다 증명되지 못해서 모르는 것이 될까봐, 나의 노력이 헛된 것이 될까봐, 내가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될까봐, 그동안 내가 해온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될까봐, 나는 자꾸 불안했다.
6.
지렁이는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적당한 불안은 정체된 나를 깨워주는 일이라고 어느 정도 합리화했다. 하지만 지렁이는 세게 밟으면 터져 죽는다. 나는 내가 곧 터져서 죽어버릴 것 같았다. 힘들면 그냥 힘든 거였다. 나는 힘들었다.
아무리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일이라도 힘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하고 또 해도 늘 못한 것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매일 불안해서 울었다. 해온 것을 생각하며 정신 차리자, 나를 다독이고,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공부를 했다. 떨어져도 최선을 다한 뒤 떨어져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충분하면 충분한 대로. 될 일이라면 언제고 될 거라 다독였다.
시험 전 날까지도 내가 배운 것보다 모르는 내용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어쩌면 공부했겠지만 여전히 새로워 보이는 것을 보며, 조급하게 나를 다독였다. 안될 거란 마음에 될 거라 강요하지 않았다. 거짓말로 주문을 외우지 않았다. 괜찮다고 했다. 안돼도 괜찮다. 떨어져도 괜찮다.
7.
시험을 보고 나와서는 머리를 치며 펑펑 울었다. 공부했는데, 그것도 시험 쉬는 시간에 보던 개념인데, 걱정하느라, 불안해하느라, 제대로 읽지 못해서, 집중 못하고 흘려 보아서, 그래서 기억이 나지 않아서, 틀렸기 때문이다. 바보같이. 그 시간에 떨지 말고 제대로 하지 그랬어. 하고 또 울었다. 걱정을 만들어서 하는 내가 싫었지만 더 싫었다. 시간 아깝게 왜 가만 앉아서 맘에 생채기나 내고 있었는지. 왜 떨리는 손이나 보면서 심호흡만 하고 있었는지. 걱정되면 그만큼 움직이고 행동해서 걱정할 일을 최소화시켜볼 생각을 하지. 미련하게.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걱정과 불안이 자리했던 마음에는,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할 걸, 이라는 후회와 미련이 자리했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후회가 많이 남았다. 사실 그게 최선이었나 의심까지 들었다. 떨어지면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싶었다.
8.
2019년의 마지막 날. 1차 합격을 확인했다. 소리 내서 펑펑 울었다. 내가 한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했고, 나의 불안과 걱정이 배신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드디어 정해진 방향에, 뚜렷해진 목표에, 그리고 2차 면접이라는 또 다른 불확실한 미래에. 나는 여러 가지 감정을 고작 펑펑 우는 것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2차 면접 준비는 1차 필기와 달리 확신이 있었다. 나를 바탕으로 만든 이론이 그 근거가 되고, 실전 연습의 횟수가 바탕이 되었다. 내 생각이 내 시험의 정답이 되었다. 나라는 사람이 직접 만들어가는 시험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 O, X의 이분법적인 시험이 아니었다.
'사람'이 함께 했다. 혼자서 고립되며 나를 갉아먹었던 1차의 시간들과는 달리, 누군가가 존재했다. 나의 생각을 들어주고 생각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음은 눈물이 아니라 대화로 표현되었다. 정해진 것을 외우는 게 아니라 내 기준에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분별하고 정리했다. 그 과정은 신기하게도, 재미있었다. 내가 되고 싶은 사서교사를 기억하고, 말하는 일은 즐거웠다. 그제서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구나, 했다.
1차와 달리, 2차 시험이 끝나고 나서는 개운했다. 내가 아는 것을 모두 쏟아내고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이라는 명목은 늘 나를 불안하게 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쭉 이어져 이내 최종 합격까지 왔다. 그리고 내 삶은 동전 뒤집듯 손쉽고 빠르고 분명하게 바뀌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그리던 삶을 실제로, 현실로, 이루어내고야 말았다.
9.
무언가를 간절하게 바라볼 일이 이처럼 또 있을까 두렵다. 그러나 그때도 그랬듯, 나는 걱정과 불안을 온몸으로, 정통으로 직면하며, 결국에는 해낼 것이다. 그런 믿음이 생겼다. 아무리 불안하더라도, 걱정되더라도,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한다면, 끝나고 나서는 적어도 후회와 미련이, 걱정과 불안의 자리를 대신하지는 않을 것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경험했기 때문이다. 걱정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할 걸, 불안해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볼 걸. 그 생각은 내가 하릴없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불안해하는 버릇을, 그거 잘못된 거라고 호통치며 단단히 일러주고 있다.
지나오니, 그렇게 될 일이었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될 일을, 그렇게 되게 만들어준 고마운 나는, 그때의 나는, 처절했고, 두 번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간절한 무언가가 생기면 또 나타나겠지. 그래서 조금 나아진 내가, 요령을 부려 더 단단하게 나를 잡고, 더 최선을 다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