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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화 Sep 09. 2024

슬퍼하며 보내기엔 삶은 너무 짧다.

끼이익. 퍽.. 우지끈.

밖에서 들려오는 심상치 않은 소리에 목을 쭉 빼고 밖을 내다본다.

사고가 났다.

작은 차 한 대가 맞은편 상가건물 벽을 들이받고 멈춰 섰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웅성대기 시작하는데, 차에선 사람이 내리지 않는다.

주차해 뒀던 차가 굴러와서 부딪혔나?... 어? 차 안에 사람이 움직이는 것 같은데...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 맞은편 사고 현장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관찰했다.

한참 후에야 젊은 아가씨 한 명이 전화통화를 하며 길을 건너온다.

"아니, 그게 아니고 아 진짜 씨..."

온갖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하던 여자는 길을 건너자 갑자기 내 앞에서 털썩 주저앉는다.

스피커 속의 남자 목소리도 들린다. 무척 당황했지만 여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듯 말했다.

"자기야. 괜찮아. 괜찮아. 괜찮으니까. 얼른 집으로 가"

남편인 듯하다.


"아.. 아니야. 아니라고. 누가 날 공격할 것 같애... 공격할 것 같다고!... 아아악!!!"

갑작스런 괴성에 모여든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길을 가던 사람들도 멈춰 선다.

의도치 않게 그녀 앞에 서 있던 나도 너무 당황스럽다.

'공황장애인가 봐..'

'에이 공황장애는 자기가 숨을 못 쉬고 죽을 것 같은데  저렇게 소리 못 질러요.'

'술 마신 것 같지는 않은데, 혹시 약 같은 거 먹은 거 아냐?'

'경찰은 왜 이렇게 안 와?'

저마다 수군대는 소릴 뒤로 하고 여자는 일어나 아파트 단지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너무 놀라 순간 얼어버렸던 나는 여자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계속 통화를 하면서 미친 듯 악을 쓰며 소릴 지르던 여자는 급기야 아파트 화단에 누워 버렸다.

경찰들이 오고 구급차가 와도 속수무책, 여자는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도 않고 구급차를 타는 것도 욕설을 하며 거부한다.

"악...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뭔데요? "

"저 범죄자 아니라구요. 엉엉엉"

"진심으로 사랑했었다고!"

맥락 없는 이야기를 하며 울다가 소리 지르다가 경찰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비는 것까지, 흔치 않은 이 소동은 남편이 도착하기 전까지 한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일을 하다 헐레벌떡 뛰어온 남편은 아내를 진정시키며 집으로 간다.

' 저렇게 가도 되는 거야? 검사해봐야 되는 거 아냐?'

'경찰들도 매뉴얼이 있겠죠. 일단 진정시키고 검사하는 거겠죠.'

'어머머. 무섭다. 애들 하원시간인데'

그렇게 각자의 이야기들을 하며 구경꾼들은 흩어졌다.


사무실에 돌아와 앉아 생각하니 소동을 계속 구경하고 있던 내가 참 한심하다.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을 텐데. 그녀도 그녀의 남편도.

그냥 모른 척, 궁금해하지 말걸...

뭐 재밌는 구경거리라고 자리를 못 뜨고 그렇게 서 있었나.

기분이 울적해진다.

내가 모르는 어떤 사람의 슬프고 아픈 모습을 내가 보게 되어서 미안했다.

그럼에도 쉽게 자릴 뜨지 못하고 지켜봤던 나는 참으로 천박했다.

너무나 젊고 예쁜 아가씨인데...

뭐가 그리 아프고 서러워서 저렇게 울까.

살아보니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은 너무나 빨리 흘러가서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인데,

저 아름답고 예쁜 시절을 아파하며 보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여자도 그녀의 남편도 너무 안쓰럽다.


괜찮다. 괜찮다.

사랑하는 사람 옆에 있으니 함께 좋은 것만 보고 예쁜 것만 보고.

밉고 싫고 너를 아프게 했던 것은 잊어버리고 때론 용서도 하고

서러웠던 기억도 갖고 싶었으나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심도 때론 내려놓고 평화를 찾으렴.

사랑하는 사람 손을 잡고 행복하고 밝고 따뜻하고 아름답고 귀한 것만 보고 느끼고 생각하렴.

울지 마렴...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좋은 것만, 아름다운 것만 생각하며 살기에도 삶은 짧다.

너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눈물 말고 미소와 용기로 가득 채우길...

오늘 하루만 실컷 울고  내일은 환하게 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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