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츠로이 Jul 01. 2021

바닷가 앞 하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나의 생각 변화 


아프리카 남아공에는 믿기지 않지만 사계절이 존재한다. 겨울이 찾아와 온몸을 시리게 하는 시기가 있으며, 가을이 되면 초록잎이 붉게 물들다 바람에 날리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시간적 변화가 적나라히 드러난다. 나는 작년, 이 시간의 흐름을 온 몸으로 받아 들이며 살 수 있었다. 바쁘게 살며 잊고 지냈던 계절의 변화를 가장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서 눈으로 담아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작년 한 해였다.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의 시작. 역사책에서 읽어본 흑사병에 대해선 들어는 봤으나, 설마 그보다 더한 파급력의 지독한 바이러스가 세상을 요지경으로 만들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해 봤었다. 밖으로의 외출이 두려워 졌고, 애초에 강력한 남아공의 락다운 정책으로 인해 갈 수 있는 곳도 별로 없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는 생각과 동시에, 나 또한 걱정할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안전하게 잘 지내보자고 다짐을 했고 결국 무모한 외출을 감행하며 즐기기 보단 집 안에서 정을 붙여가며 이 삶에 하루라도 빨리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그 시기에 누군들 그랬지 않았나 싶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참 외향적인 삶을 지속해서 살았었다. 집 안에 있는 것보다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가까운 마트 혹은 카페라도 외출을 하는 것을 더 좋아라 했고, 집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후 집에 돌아왔을 때에야 비로소 내가 하루를 꽤나 보람차게 보낸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었다. 집안에 있으면 요리를 하거나 넷플릭스를 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잘 없었는데, 내가 요리 하는 걸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영화를 보며 흘러갈 나의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에 오히려 더욱 나를 집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던 것도 같다. 그게 잘 사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너무나 바쁘게 살지 않았던가. 당신도 나도 말이다.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었고, 꿈이 없었더라도 단지 매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집 안에서 잘 할 수 있는 일이 없던 나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저 집순이인지 밖순이인지 성향의 차이일 뿐이었는데, 내 성향의 삶이 더 옳은 것이라는 틀린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코로나가 참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 각국 정부에서 시행한 락다운으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강제 집순이의 길로 뛰어든 사람들이 많듯이, 나와 짝꿍 또한 강제 집순이가 되어 봤다. 출근도 하지 않고 집에서 재택 근무를 하며, 장을 볼 때만 겁에 질린 채 후다닥 마트를 다녀 오는 등 하루 중 하루를 꼬박 집 안에서 통째로 보내는 초유의 상황들이 벌어졌다. 


분명 일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적인 여유가 부쩍 많아졌고, 나는 남아도는 시간 동안 뭐라도 생산적인 일을 해보고자 하는 마음에 생전 관심에도 없던 요리를 처음으로 자진해서 배워보기 시작했다. 한번도 제대로 사용해 본 적이 없던 오븐을 베이킹때문에 처음으로 사용도 해봤고, 밖에서 마시던 커피를 주구장창 집안에서 만들어 마셔보며 홈카페의 매력에 빠져 보기도 했다. 집은 어느새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되었고, 다양한 활동과 목적을 얼마든지 성취해 낼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도 편안한 장소였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아늑함은 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안정감을 주며, 이 곳에서 나는 쉼이라는 휴식을 가져보며 한결 더 가벼운 마음으로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 가기 시작했다. 





요하네스버그 집 창 밖으로는 내가 살던 컴플렉스 내부의 정원길과 큼지막한 나무들이 풍경의 전부였지만, 주어진 것에 쉽게 만족하며 살던 우리였다. 창문 밖으로 변해가는 나뭇잎들의 색깔을 보며 또 한 계절이 흘러가고 있음을 즉각적으로 알아 차릴 수 있었고, 초록 잎들이 붉그스름해지더니만 바삭바삭한 소리를 내며 바람에 흩날려 바닥으로 떨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들을 발코니에 앉아 두 눈으로 담아볼 수도 있었다. 집 한켠에서 바라볼 수 있었던 풍경을 만끽하며, 어지럽지 않은 시야의 사물들을 눈에 담고 살았다. 






케이프 타운에서의 첫 보금자리 


케이프 타운으로의 이사가 확정된 후, 가장 먼저 생각이 났던 것은 바로 남아프리카의 광활한 바다였다. 내륙 지방에 위치해 바다를 가까이에서 보기가 힘들었던 요하네스버그와는 달리, 드넓고 푸른 남아프리카의 남대서양이 가까이에 마주해 있을 케이프 타운에서 살게 되었다고 하니 바다를 자주 볼 생각에 절로 신이 났었다. 바다를 좀 더 가까이 하고 있는 집에서 살아 보기로 뜻을 맞췄고, 케이프 타운에서는 더 자주 바다로 나들이 여행을 떠나자고 짝꿍과 설레게 약속을 했었다. 막연히 바닷가에서 뛰어놀며 파도 소리를 만끽하는 시원한 상상을 했고, 이왕이면 좀 더 자주 아름다운 노을을 마주 보며 둘만의 낭만적인 분위기에 취해 보고도 싶었다. 


케이프 타운에서 살 집을 구하기 위해 조금씩 부동산 사이트를 뒤져보던 중, 우연찮게도 바닷가 앞에 위치한 어느 하얗고 예쁜 집 한 채를 발견했다. 사진 속 하얀 발코니가 너무 마음에 들었던 나머지 위치가 어디인줄도 모르고 일단 클릭을 했다. 그리고는 하얗게 페인트 칠이 되어있는 깔끔한 내부 사진과 바로 집 앞에 바다가 위치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곤 집의 외관도 위치도 완벽하다면서 위시리스트에 포함시켰다. 그 후로도 여러 개의 집들을 랜선으로 구경했고, 실제 마음에 드는 집들이 여러 채 더 있었기 때문에 직접 보고 결정을 하고 싶다면서 어느 곳으로 이사를 갈지에 대해서는 바로 결정하지 않았지만 이왕이면 새로운 도시에서의 첫 보금자리나 다름이 없는 집일테니 조금은 더 특별하고, 아늑하며 내 마음에 쏙 들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바닷가 집이 참 마음에 들었다. 






부동산 에이전시와 집을 처음 보게 된 그 순간, "반드시 여기서 살래!"라고 외치게 만들었던 집이었다. 호텔 건물에 속해 있는 호텔 아파트먼트여서 치안이 보장된 곳이었으며, 때뭍지 않은 자연의 색감들을 그대로 전해주는 새하얀 외관과 내부가 참 깨끗하고 단정해 보였다. 무엇보다 집에서 바로 바다로 나갈 수 있는 호텔 거주민 전용의 산책로가 있다는 것, 그리고 언제든 창가를 바라보면 밖으로 펼쳐지는 남아프리카의 푸른 바다가 내 마음을 한번에 사로 잡았다. 하루종일 들려오는 바다의 파도 소리는 내 마음을 어지럽히긴 커녕 오히려 가슴을 뻥 뚫리게 만들어 주는 경쾌한 음악 소리와도 같았고, 바다 위의 동요하는 하얀 파도 거품은 라테 한 잔 위에 부어 놓은 우유 거품마냥 몽글몽글한 솜사탕같아 보였다. 집안에서부터 펼쳐지는 한 폭의 그림같은 자연 경관이 우리를 참 설레게 했다.  





바다를 마주보고 사는 지금, 우리는 하루의 시작을 바다와 함께 한다. 밤새도록 닫아 둔 커튼을 열어 젖히며 날마다 다른 모습을 한 바다를 본다. 오늘은 어떤 화물선이 케이프 타운에 도착하여 바다 위에 정착해 있는지, 오늘은 바다 위 하늘이 어떤 모습을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오늘은 바다가 어떤 색을 띠고 있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본다. 하늘 위의 구름 모양에 따라서, 그리고 그 날의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창 밖의 바다 풍경은 내게 매일 다른 풍경을 선사해 준다





태어나서 평생을 도시 안에서만 살아왔던 난, 바다를 마주보고 사는 지금의 일상이 아직도 새록새록하고 신기하다.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침침한 회색깔의 안개진 세상이 드리우지만, 그것 또한 내게는 흥미로운 볼거리이고 신비로운 바닷가 풍경이다. 해가 지는 노을빛이 하늘을 가득 물들일 때는 세상의 모든 고요가 이 곳에 모여 있는 것처럼 내 마음 속에 아름다운 적막이 감돈다. 남아프리카 바다를 우리집 정원 삼아 살아 보니, 이 바다 하나를 통째로 가져본 듯 새삼 기분이 풍족해 졌다. 그런 일상을 매일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더 욕심내지 않고 현재에 만족하고 감사해 하면서, 자연이 선물해 주는 귀한 풍경을 벗삼아 무릉도원에 사는 것과도 같이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진입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