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임대차 계약서를(을) 획득하였다!
어느 때처럼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멍하게 넘기는 중이었다.
작업실을 구하던 친구의 스토리에 너무 이쁜 공간이 올라왔다. 가격 등으로 고민하고 있는 멘트와 함께 올린 그 사진에 나는 그만... 홀라당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내 나이 29
먹고 마시고 보는 것으로 20대를 다 보냈는데 '뭐 하나 해봐야 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회사 외에 개인 사업을 해보고 싶던 차에 친구가 올린 스토리는 정말 나의 구미를 당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홀라당 넘어갔다는 뜻이다.) 결국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아지트, 작업실, 카페 등등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그 공간을 더 살릴 수 있을까 생각했다.
늦은 밤 대화가 끝날 때 즈음 우리는 이미 위스키 바를 운영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되어있었다.
하루키는 말했다.
"좋은 술은 여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철학과 달리 21세기에는 수많은 좋은 술이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프랑스 보르도 산 정통 와인은 물론 저~~ 기 어디 칠레 산골짜기에서 나오는 와인까지. 이왕 여행을 시작한 거 더 재밌게 더 즐겁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도록 해보자! 이런 사명감마저 드는 밤이었다.
그렇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이 브런치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시작된 와인바 창업기이다.
2021년 7월부터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9월 현재 공간 입주 및 시설 공사를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의 과정과 앞으로의 진행들을 조금씩 기록해보려고 한다.
혹시 아는가 오픈 1주년 기념으로 가게 일기를 책으로 만들지!
그래서 다시 이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면, 가게 공간에 대한 사진을 잔뜩 받아본 뒤 나도 직접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주말에 바로 업장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이미 나는 폰사장이 되었지만 그래도 실제로 가봤을 때는 다를 수 있으니까 방문 동선, 주변 입지, 업장 체크리스트 등등을 알아보고 주중에 열심히 공부를 했다.
월급의 달콤함에 빠져있던 내가 자영업이라는 거친 세상에 그것도 부동산이라니! 이건 100% 혼자 가면 당한다(?). 그래서 먼저 자영업을 시작한 친구에게 SOS를 쳤다. 다행히 주말 오픈 전 함께 해준다고 해서 바로 방문 일정을 잡았다. (신당동 헤이웨이브 사장님이 이렇게 친절합니다. 신당 최고의 펍입니다. 두 번 세 번 가세요 여러분!)
그냥 가면 또 밀릴 수 있으니까 일단 식사부터 했다.
(이제는 계약이 끝난) 우리 가게 옆에 위치한 일본 라멘집. 맛도 좋고 사장님도 친절하신 것이 기분이 좋았다. 어쩐지 잘 될 것 같은 기분이다. 혹시 모르니까 시원하게 맥주도 한잔 같이 했다. 맥주 마실 핑계도 참 많다.
실제로 방문해보니 7평치고는 공간이 잘 빠진 건지, 통창 때문인지 생각보다 넓어 보였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아 보였다. 사진은 좀 더 정리가 되면 공유해보겠다.
카페에 앉아 당장 계약하겠다고 설레발치는 나에게 같이 간 친구는 정신 차리라면서 이런저런 피드백을 남겨줬고 나는 열심히 숙제를 받아 적었다. 화장실, 영업할 때 동선, 에어컨, 전기 설비 등 확실히 혼자서는 오픈 전까지 절대 알 수 없었을 부분들을 챙겨줘서 라멘과 커피를 대접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선배 사장님은 주말 영업 준비하러 신당동으로 떠났고 (맥주는 헤이웨이브!) 나는 동업을 하기로 한 친구를 만나 다시 한번 업장을 방문하고 주변 상권 분석(산책)을 했다.
첫 방문한 날 덕수궁의 사진. 이날은 7월이지만 엄청 덥지도 않고 날씨가 정말 좋았다.
덕분에 '아 이건 된다. 여기는 된다.'라는 환상에 찰 수 있었다. 2호선 시청역 근처에 위치한 덕분에 근처 덕수궁 돌담길과 서울시립미술관 방문 후 좋은 코스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나는 의미부여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인데 20대의 끝에 나의 공간을 새롭게 시작해 볼 수 있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 근처 위치, 조금만 손봐도 충분한 인테리어, 보러 간 날 마침 좋은 날씨,, 이 모든 것이 이 공간을 계약하라고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약 일주일 동안 내가 모아둔 돈, 와인바 운영에 필요한 시간, 초기 비용과 손익분기점, 준비해야 할 것, 콘셉트 등을 정말 열심히 조사했다. 친구와 동업 형태로 갈지 브랜딩만 부탁할지 등등도 충분한 대화를 통해 논의했다. 또한 거의 3일에 한 번씩 방문해서 실제 유동인구와 같은 건물에 입주한 다른 가게의 컨디션도 확인했다. 이 와중에 이전 세입자와 권리금 협상으로 약 50% 정도 저렴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그래도 비싸 ㅠㅠ)
회사는 그대로 다니고 있었으니 조금 정신없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인지 정말 재밌었다. 이걸로 힘들면 체력이 안돼서 오픈을 못할 거라는 생각도 있어서 더 이 악물고 했다. 사실 기존 회사도 있고, 힘들면 안 하면 그만인데 그건 또 지는 거 같아서 싫고 해보고 싶은 건 해야 하는 성격이 이렇게 빛을 발하나 보다.
그렇게 첫 방문 후 2주가 흘렀을 즈음 계약을 결정하게 되었고 건물 관리인, 기존 세입자, 친구와 함께 스케줄 조정 후 내 인생 첫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부동산하는 지인에게 전화하며 이것저것 물어보던 시간, 건물 관리인선생님께 잘 보이겠다고 사간 수박 주스, 좁지만 층고가 높았던 임시 관리실(공실을 관리실로 사용하신다), 달달 돌아가던 스탠드 선풍기, 인테리어 기간 좀 달라며 눈치 보던 그 시간, 사인한 서류를 들고 나온 뒤 긴장 풀린 첫 한숨까지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3~4주의 시간 동안 충분한 고민과 충분한 조사를 통해 결정을 했다. 그 사이 많은 말림과 응원들이 있었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모든 것들이 답정너였달까? ㅎㅎ 어차피 하기로 한 거 잘해보자는 마음뿐이다. 고사 느낌으로 케이크에 초도 한번 불어봤다. 많은 조언과 응원해주신 신당 헤이웨이브 사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 (앞으로도 많이 도와주세요..) 그러고 보니 고사 날짜도 정해야 하는구나..
조사하는 과정도 복잡했지만 앞으로 할 일이 더 산더미라 두려우면서도 기대된다.
친구와 시장조사 겸 논의할 겸 방문했던 공덕의 미스터리브루잉.
앞으로 메모할 일이 많을 것 같아 부랴부랴 CU편의점에서 1,500원짜리 노트를 구매했다. 앞뒤가 똑같은 회색 두꺼운 종이라서 급하게 'le front(앞)'이라고 적었다. 보다 못한 친구가 우리 공간을 모티브로 뚝딱뚝딱 그림을 그려줬다. 너무 귀여워...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은 순간이었다.
앞으로 분명 이런저런 일이 많이 있겠지만 처음 시작할 때의 이 긍정적인 기운을 항상 생각하면서 현명하게 잘 헤쳐나갔으면 좋겠다. 어쨌든 너무 기대되는 10월이다!
다음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게를 알아봤고, 계약을 했는지 남겨볼게요.
지금은 상호명도 정하고 인스타그램도 만들고 오픈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어요!
인스타그램에서는 더 빨리 소식을 접할 수 있으니 구경 오시고 팔로우도 많이 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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